[김선영의 드라마토피아] 진일보한 의학 윤리
국내 최초의 정신건강 의학드라마는 2014년 SBS에서 방영된 <괜찮아, 사랑이야>다. ‘위로의 대가’ 노희경 작가가 극본을 쓴 <괜찮아, 사랑이야>는 의학드라마로서 차별화된 소재를 내세우는 데 그치지 않고, 정신질환을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는 “마음의 감기”로 그려내며 질환에 대한 사회적 인식 전환에 기여했다. 주인공인 정신건강의학전문의 지해수(공효진)부터가 불안증세와 관계기피증을 지닌 인물이다. 드라마는 해수가 근무하는 병원뿐 아니라 그가 거주하는 셰어하우스에도 여러 정신질환을 지닌 인물들을 배치해 병과 일상이 분리되지 않은 세계를 담아냈다. 소위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가 해체된 다양성의 세계다.
이로부터 10년 뒤, <괜찮아, 사랑이야>의 주제의식을 이어가는 수작 의학드라마가 또 한 편 등장했다. 지난 3일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사진) 이야기다. 정신병동 간호사 출신 이라하 작가의 동명 웹툰을 극화한 이 작품은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처음 근무하게 된 3년 차 간호사 정다은(박보영)의 시점을 통해 마음의 병을 진지하게 들여다본다. 특히 첫 회에서, “정신과는 마음의 면역력이 떨어지면 오는 데야. 감기 걸리면 내과 가는 거랑 똑같아. 누구나 언제든 약해질 수 있는 거”라고 강조한 장면은, 이 작품이 <괜찮아, 사랑이야>와 마찬가지로 정신질환에 대한 편견을 깨는 데 주력함을 말해준다.
10년의 시차가 존재하는 만큼 진일보한 지점도 있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정신질환의 극적인 발병도, 치유도 그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정신질환을 다룬 기존의 작품들은 대부분 발병의 계기에 충격적인 사건을 놓고, 이를 상세하게 묘사하면서 드라마틱한 극복과 치유의 서사를 향해 나아간다. 이와 달리,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는 정신질환을 좀 더 현실적이고 일상적인 차원의 이야기로 풀어내고자 한다. 이 같은 의도가 잘 드러나는 것이 드라마의 도입부다.
시청자들은 정신과로 처음 출근한 정다은이 업무를 파악해가는 도입부를 통해 정신질환에 대한 사실적 정보를 차례로 접하게 된다. 정신질환은 어떠한 특정 사건보다 “사회적, 생물학적, 심리적, 이 세 가지 요인”에서 발생하고 진료와 적절한 처방을 통해 증세를 완화할 수 있는 “관리의 병”이라는 의학적 설명은 이후로도 작품 안에서 꾸준히 반복된다. 환자의 사연을 극적 장치로 소비하는 대신 의료진 회의, 세미나, 콘퍼런스 같은 장면을 통해 정신질환에 대한 왜곡된 정보를 수정하는 것이다. 이처럼 직설적이고 딱딱할 수 있는 메시지가 이야기 안에 자연스럽게 섞이는 것은 이 작품이 기본적으로 성실한 직업드라마로서의 태도를 견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에는 의학드라마에 흔히 등장하는 명의와 같은 영웅적 의료진이 없다. 다은이 뛰어난 공감력을 지닌 인물로 묘사되지만, 환자를 극적으로 치유할 수 있는 영웅적 주인공과는 거리가 멀다. 다은의 멘토 격인 수간호사 효신(이정은)도, 병동의 에이스로 불리는 보호사 윤만천(전배수)도 ‘슬기로운 병원 생활’에 대한 해답이 아니라 노련한 대처법을 알고 있을 뿐이다. 이들 모두는 그저 자신의 자리에서 주어진 임무를 책임감 있게 수행하는 성실하고 평범한 인물들이다.
이 같은 태도가 중요한 것은, 의학드라마에 기본적으로 존재해온 의료진과 환자 간의 위계가 사라지고 좀 더 평등한 치유공동체 이야기가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의료진은 환자들과 마찬가지로 최선을 다해 하루를 버티는 동등한 생활인으로서, 환자들을 극적으로 구원해주기보다 다만 그들이 빛을 향해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도록 힘을 불어넣어주는 존재로 그려진다. 드라마에서 환자와 의료진의 경계가 자주 희미해지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육아 병행으로 힘겨워하는 간호사 수연(이상희)이 같은 고민으로 마음의 병을 얻은 환자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는 에피소드나, 후반부 비중 있게 그려지는 다은의 우울증과 보호병동 생활 에피소드가 대표적이다. 그렇게 정신질환은 공포와 불안의 대상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는, 삶의 여러 고민 중 하나로 관리해야 할 대상이 된다.
김선영 TV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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