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의 미래] 한식이 더 사랑받으려면
지난해 이탈리아 북부 토리노에 갔을 때였다. 토리노에 사는 이탈리아인 친구가 시내에 괜찮은 한식당이 생겼다며 가보자고 제안했다. 가보니 재미있게도 주인은 이탈리아 사람, 셰프는 필리핀 사람이었다.
이탈리아 사람이 한국 교포가 많지 않은 토리노에서 한식당을 연 것은 한식이 그만큼 인기가 있다는 뜻이다. 실제 한국기업이 해외에서 운영하는 한식당 통계(출처: 농림축산식품부)를 보면, 2009년 28개 기업 116개에서 2022년에는 63개 기업, 783개로 늘었다. 또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에 따르면, 열성적인 한류 소비자의 한식 소비 비율이 2019년 24.3%에서 2021년 38.4%로 늘었다.
최근 한식의 인기는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외국인들은 한식을 한류 콘텐츠의 하나로 보는 것 같다. 토리노 한식당을 나와 함께 방문했던 이탈리아인 프란체스카가 한식에 빠지게 된 계기는 K팝이었다. 처음에는 엑소, BTS를 좋아하다 지금은 산울림, 최백호를 즐긴다. 오징어젓을 가장 좋아하는 그는 내년 한국 유학을 준비하고 있다.
프란체스카와 비슷한 한류 예찬론자는 이탈리아 어디서든 만날 수 있었다. 한번은 볼로냐의 한 가정집에서 민박을 했는데, 그 집 주인 아주머니와 고등학생 딸이 나를 맞아줬다. 에어비앤비를 많이 이용했지만 10대 여학생의 응대는 처음이었다. 그런데 이름이 엘레나인 이 학생은 나를 처음 보자마자 “한국어를 가르쳐 달라”고 요청했다. 자막 없이 K팝을 듣고 싶다는 게 이유였다.
그런 인연으로 나는 모녀에게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한식을 만들어주었다. 모녀는 특히 내가 서툴게 만 김밥의 맛에 놀라곤 했다. 볼로냐는 ‘이탈리아 미식의 수도’로 불릴 정도로 음식이 유명하다. 이런 볼로냐 사람에게도 한식은 통했다.
한편, 넘어야 할 벽도 느꼈다. 프란체스카는 비빔밥을 좋아하지 않았다. 진 느낌의 샐러드 같다고 했다. 비빔밥이 외국인 최선호 음식이라는 점에서 의외였다. 엘레나 모녀는 내가 만든 미역국을 먹지 않았다. ‘세계에서 가장 건강한 해초 수프’라고 설명해도 소용없었다.
산울림이 좋고 BTS가 좋고 한류가 좋아도 한식이 외국인에게 통하지 않는 지점이 있다. 일본과 태국·베트남 음식이 전 세계에 널리 수용됐던 것은 나름의 전략으로 이 벽을 무너뜨려서다. 일본은 독특한 미학과 철학으로, 태국·베트남은 열대의 이국적 풍미와 대중화 전략을 구사했다. 한식도 이런 전략이 필요하다.
쌈장이 실마리를 보여준다. 공장에서 나온 음식보다 장인이 손으로 만든 음식을 높게 치는 이탈리아 사람들이 의외의 반응을 보이는 우리 음식이 시판 쌈장이었다. 적은 양으로도 채소와 고기를 효율적으로 매개하는 것을 매우 신기해했다. 시판 쌈장은 만주가 원산지인 콩을 발효한 수천년 역사의 전통 음식을 산업화한 것이다. 그저 삼겹살을 구워서 쌈을 싸먹는다는 초간단 레시피인데도 심오한 맛이 나는 것은 이런 스토리를 지닌 쌈장의 공이다. 분식인 떡볶이가 평범하지 않은 것도 마찬가지로 콩과 발효의 역사 덕이다. 정성 가득한 장인의 밥상은 물론 평범한 분식·냉동식품이라도 한식에서 저력이 느껴지는 까닭은 한식의 토대가 켜켜이 응축된 역사이기 때문이다.
권은중 음식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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