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난기 가득한 풍자·아이디어로 ‘보편화된 인식’ 깨부수다

김신성 2023. 11. 9. 2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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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스트 그룹 ‘MSCHF’ 전시회
車 1대 걸고 5000개 열쇠 19弗씩 팔아
“공동소유권·공유경제 허상 대한 실험”
앤디워홀 작품 산 뒤 복제해 같이 판매
구별 불가 상황 속 진품 가치 의문 제기
‘미스치프: 신성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10일부터 대림미술관서 작품 선보여

성역은 없다. 논란은 오히려 각 작품이 전하는 메시지를 강화하고, 더 많은 관심을 끄는 수단이 될 뿐이다.

단돈 19달러(약 2만4000원)에 자동차를 가질 수 있다면? 자동차 1대를 걸고 5000개의 열쇠를 개당 19달러에 팔았다. 특정 전화번호를 통해 힌트를 얻는 등 차량을 발견한 열쇠 소지자는 누구나 자동차의 주인이 될 수 있다. 차는 뺏고 빼앗기며 파손, 도난, 회수, 수리를 반복해 미국 전역을 돌아다녔으나 어느 누구도 완전히 소유할 수는 없었다. 아티스트 그룹 MSCHF(미스치프·장난짓)의 ‘키 포 올(Key 4 All)’ 프로젝트다. 공동소유권과 공유경제의 허상에 대한 실험작이라고 밝힌다.
어린이 글씨체로 편지를 써주는 로봇 ‘어린이 십자군’
의료비 청구서를 확대해 그린 대형 유화 3점이 벽면 가득 걸려있다. 미국 의료 부채 시스템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의료 부채로 어려움을 겪는 이들의 실제 청구서를 그린 그림을 판매해 번 1억원의 돈으로 이들의 부채를 갚아준 ‘의료비 청구서 회화(Medical Bill Art)’ 프로젝트다.

소통이 쉽지 않은 정치인이나 공무원에게 어린이 글씨체로 쓴 편지를 보낸다. “제가 1학년이던 2019년 텍사스주에서는 3683명이나 총기에 의해 죽었어요. 그들 중 32명은 나 같은 어린이들이었죠.” 의견이 효율적으로 전달된다. 어린이들이 보내는 건의나 제보는 정치 선전용으로 활용되기 쉬워서다. 그렇다면 아예 어린이 글씨체로 편지를 써주는 로봇을 만들어 낸 ‘어린이 십자군(Children’s Crusade)’ 프로젝트는 공익을 가져다준다는 명분으로 정당화될 수 있는 걸까.

MSCHF는 유쾌하지만, 도발적인 시비를 거는 작품들을 선보인다. 익숙한 일상과 제품에 상식을 뛰어넘는 아이디어를 접목한다. 예상치 못한 방법으로 사회 현상의 일부분을 꼬집어낸다. 이러한 작품들은 관객의 참여를 통해 비로소 완성된 뒤 작가의 예술비전을 실현시킨다.
MSCHF는 방탄소년단(BTS)의 군입대를 소재로 게임 프로그램(‘BTS IN BATTLE’)을 출시한 바 있다.
예술계의 판도를 바꾼 게임체인저, 동시대 가장 주목받는 작가그룹 MSCHF의 전시회가 서울 종로구 자하문로 4길 대림미술관에서 ‘MSCHF: NOTHING IS SACRED’(미스치프: 신성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라는 주제를 내걸고 10일부터 내년 3월 31일까지 열린다. MSCHF의 장난기 가득한 풍자의 시선을 따라 세상을 남다른 관점으로 탐색하면서 문제를 발견하고 영감을 얻는 시간을 누릴 수 있다. MSCHF는 자신들의 세계 최초 미술관 전시회를 한국에서 갖기로 결정했다. 이들은 한국 아티스트 방탄소년단(BTS)의 군입대를 소재로 게임 프로그램(‘BTS IN BATTLE’)을 출시한 바 있다.
MSCHF는 2019년 가브리엘 웨일리, 케빈 위즈너, 루카스 벤텔, 스테픈 테트롤트가 설립한 30여명의 아티스트 그룹이다. 미국 뉴욕 브루클린에서 주로 활동한다. 스스로를 ‘무엇이다’ 정의 내리지 않고, 다양한 범주의 한정판 작품을 2주마다 홈페이지에 게시한다. 작품마다 화제와 논란을 일으키며 세계의 이목을 끌고 있다. 래퍼 릴 웨인, 프로듀서 디플로 등 유명 셀럽들이 앞다투어 인증샷을 올렸던 작품 ‘빅 레드 부트(BIG RED BOOT)’로 대중 사이에 널리 알려졌다.
현미경으로 보는 루이비통 가방. 오른쪽 사진은 손가락에 올려놓은 크기.
현미경으로 들여다보아야만 보이는 크기의 루이비통 가방을 제작, 원래 가격보다 4배나 비싼 6만3000달러(약 8400만원)에 판매한 일도 유명하다. 명품 자체를 원자재로 쓰기도 한다. 에르메스 버킨백의 가죽을 해체 가공해 일반인들이 신는 샌들 ‘버킨스톡(Birkinstock)’으로 만들어 9000만원대에 판 적도 있다. 현대인의 물질 소유와 소비 심리에 대해 한 번 더 되돌아보게 한다.
에르메스 버킨백의 가죽을 해체 가공해 일반인들이 신는 샌들 ‘버킨스톡(Birkinstock)’으로 만들었다. 현대인의 물질 소유와 소비 심리를 되돌아보기 위해서다.
‘예수 신발’(JESUS SHOES)과 ‘사탄 신발’(SATAN SHOES)도 이들의 대표작 중 하나다. 브랜드의 무분별한 컬래버레이션(협업)을 꼬집으며 “그렇다면 우리는 예수님과 컬래버레이션한다”고 선언한 뒤 운동화의 에어솔 부분에 성수를 넣은 ‘예수 신발’을 내놓았다. 이는 2019년 구글에서 가장 많이 검색된 신발로 등극했다. 한 발 더 나아가 래퍼 릴 나스 엑스와 협업, 나이키 운동화의 에어솔에 진짜 사람 피 한 방울을 넣어 만든 ‘사탄 신발’ 666켤레를 선보였다. 이로 인해 나이키와 법정 분쟁에 휘말리기도 했다.
‘사탄 신발’과 ‘예수 신발’
세계적 작가 데미안 허스트의 ‘스폿 페인팅 시리즈’ 중 하나인 ‘L-Isoleucine T-Butyl Ester’를 사들인 뒤 작품 속 88개의 점을 하나씩 오려내 각각 88점의 작품으로 재탄생시키고, 원작의 틀까지 함께 되팔며 7배 이상 수익을 낸 적도 있다.
2021년에는 앤디 워홀의 1964년 작품 ‘페어리스’(Fairies)를 2만달러에 구입한 뒤 자신들이 똑같이 만든 복제품 999점과 함께 팔았다. 1000점 가운데 단 1점은 워홀의 진품이었지만 보증서까지 정교하게 복제해 진품과 복제품을 구별할 수 없는 상황을 연출했다. 미술 시장에서 진품의 가치에 의문을 제기하는 작업이다.
앤디 워홀의 ‘페어리스’ 복제품을 999점 만들었다. 1000점 가운데 단 1점은 진품. 미술 시장에서 진품의 가치에 의문을 제기하는 작업이다.
이처럼 MSCHF는 예술, 종교 등 보편화된 사회 분야의 인식을 타파하며 도발 작업을 지속하는데, 이를 통해 이 세상에 건드리지 못할 성역, 신성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모든 작품들을 미술관 2, 3, 4층에서 볼 수 있다. 포진한 100여 점의 작품들은 5가지 섹션으로 나뉘어 관객들을 반긴다.

김신성 선임기자 sskim65@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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