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병천의 21세기 진보] ‘위성정당’ 막는다면, 권역별-병립형이 더 낫다
최근 이탄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의원직을 걸고서라도, 선거제 개악을 막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한국 정치인 중에 ‘직을 걸고서라도’ 무언가를 해내려는 사람은 얼마나 있을까? 많은 사람이 이탄희 의원에게 박수와 응원을 보내는 이유다.
이탄희 의원의 주장의 핵심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①‘위성정당을 막는, 준연동형 비례대표제’가 가장 바람직한 대안이다. ②병립형으로 돌아가는 것은 가장 안 좋은 개악이다. ③차선은 현행 제도인 ‘위성정당이 가능한,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낫다. ④민주당은 의석을 손해 보는 한이 있어도, 소수정당에 의석을 나눠줘서 ‘연합정치’를 해야 한다.
이탄희 의원 선거제 개혁안에 이의
낯선 용어를 설명하고 넘어가자. 연동형과 병립형은 ‘정당을 찍는, 비례대표’ 배정 방식이다. 현재 국회의원은 총 300석, 지역구 253석, 비례대표 47석이다. 연동형의 기본 문제의식은 정당 득표율이 10%인 경우, (지역구 당선자를 포함해) 30석이 되도록 하는 것이다. 여기서, 지역구 당선자는 빼고 연동률을 50%만 적용한다.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자. ‘병립형’ 방식에서는 47석 중 10%가 적용되어 4.7석이 된다.
연동형 제도의 본질을 직관적으로 정리해보면, ‘지역구 당선자가 많은’ 정당은 비례대표 배정에서 손해 보도록 설계됐다. 문제는, 국민의힘은 찬성한 적이 없다는 점이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선거제 개혁은 양당의 합의하에 추진되는 게 관행이다. ‘연동형 선거제’의 경우, 국민의힘(당시 자유한국당)이 반대했지만 나머지 4개 정당이 통과시켰다.
토론의 논점을 분명하게 하기 위해, 나의 입장을 밝히는 게 좋겠다. 나는 이탄희 의원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나 역시 선거제 개혁에 관심이 많고,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탄희 의원과 나의 주장의 차이점은 다음과 같다.
이탄희 의원은 ①위성정당이 가능하더라도, ②전국 기준, ③연동형 선거제도가 낫다고 본다. 나는 ①위성정당을 법적으로 원천 차단하는 게 가장 중요하고 ②권역별, ③병립형 선거제도가 된다면, 진일보한 정치개혁이라고 생각한다.
이탄희 의원 주장의 문제점은 세 가지다. 첫째, 국민의힘은 ‘지역구 당선자가 많은 정당’이 비례대표에서 불이익을 받는, ‘연동형 비례제’를 찬성한 적이 없다. 당시 야4당의 합의로 국민의힘을 배제하고 통과시킨 법안이다. 국민의힘은 연동형을 찬성한 적이 없기에, 연동형을 내실화하는 법안을 찬성하지 않는다. 현행 제도가 유지된다면, 위성정당도 만들 것이다. 국민의힘 지지층도 비난할 이유가 전혀 없다. 애초에 찬성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국민의힘이 위성정당을 만들면 ‘국민적 지탄’을 받을 것이라는 이탄희 의원 주장은 무리한 가정이다.
현행법은 ‘국민의힘 과반 촉진법’
둘째, 이탄희 의원의 주장이 실제로 실현되면, ‘국민의힘 과반 촉진법’으로 작동할 것이다. 간단한 시뮬레이션을 돌려보면 명확하다. 민주당과 국민의힘 모두 지역구에서 120석, 정당 득표율은 둘 다 40%로 가정하자. 민주당은 위성정당을 만들지 않고, 국민의힘은 위성정당을 만들었다고 가정하자. 의석수를 계산해보면 민주당 127석, 국민의힘 147석이 나온다. 지역구 당선자도, 정당 득표율도 똑같은데 20석 차이가 난다.
이탄희 의원은 2020년 총선에서 민주당이 지역구만 163석이었음을 강조한다. 그러나 2020년 총선은 매우 예외적인 선거였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의 여진, 보수의 분열, K방역에 대한 외신들의 찬사가 겹쳤던 선거다. 1987년 이후 9번의 총선에서 민주당은 3승6패를 했다. 패배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는 2004년 총선 때 처음 도입됐다. 2004~2016년 4번의 총선 평균을 보면, 지역구에서 민주당 103석, 국민의힘 116석이다. 정당 득표율 평균은 민주당 31.4%, 국민의힘 37.4%다. 민주당은 지역구에서 13석 뒤지고, 정당 득표율에서 6%포인트 뒤졌다.
바둑 용어로 ‘접바둑’이 있다. 미리 몇수 깔아주고 두는 경우다. 이탄희 의원의 주장은 국민의힘에 ‘20석’을 깔아주자는 것과 같다. 민주당은 도대체 얼마나 ‘의석 부자’이길래, 20석 정도는 경쟁 정당들에 인심을 써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의아하다. 민주당의 접바둑 20석은 ‘국민의힘 과반 촉진법’으로 작동하게 될 것이다.
셋째, 이탄희 의원은 다당제와 연합정치에 대해 과도한 환상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 내각제와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결합은 ‘여대야소’에 해당한다. 세계적으로 대통령제와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결합된 경우는 흔치 않다. 남미 일부 국가가 대표적이다. ‘여소야대’가 구조화되는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 예컨대 브라질의 경우, 2018년 총선에서 의석을 배출한 정당은 25개였다. 연립정부에 참여한 정당만 11개였다(위키피디아). 이 나라들은 다당제와 연합정치가 과도해서 문제이다. 이해관계에 의한 이합집산, 각종 이권 배분 등 정당정치는 퇴행한다. 선진국 중 대통령제+100% 연동형 비례제의 결합 사례가 없는 이유다.
그럼, 바람직한 선거제 개혁은 무엇인가? 첫째, ‘위성정당의 법적 차단’이 가장 중요하다. 현실적으로 연동형과 위성정당 방지는 양립 불가하다. 법 개정 자체가 국민의힘을 배제하고 일방적이었기 때문이다. 둘째, ‘권역별+병립형’은 진일보한 대안이다. 민주당은 대구·경북에서 당선되고, 국민의힘은 호남에서 당선되면, 그 자체로 한국정치의 진일보다. 오랜 세월 고 노무현 대통령의 꿈이기도 했다.
비례대표제 확대를 통해, 양당제 폐해를 줄이는 것은 좋은 일이다. 설령 민주당이 위성정당은 안 만들어도 ‘1인 정치 유튜버들’의 정당이 난립하게 될 것이다. 비례대표제에 대한 국민적 불신을 키우고, 기반을 침식할 것이다. 불을 보듯 뻔하다. 현행과 같은 ‘위성정당이 가능한, 연동형 제도’가 최악인 이유다.
‘남미형 연합정치’가 한국정치의 해법인 것도 아니다. 민주당의 부족함과 무능함은 경쟁 정당에 ‘인심을 베푼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다. 오직 ‘좋은 민주당 만들기’를 통해서만 해결 가능한 문제다.
최병천 <좋은 불평등> 저자·신성장경제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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