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버스터 할듯 ‘연막’치다 전격 철회…국힘, 계획된 작전?

서영지 2023. 11. 9.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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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버스터]이동관 탄핵안 자동폐기 유도 성공
‘노란봉투법’은 거부권으로 무력화 가능
9일 오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국민의힘 윤재옥 원내대표를 비롯한 의원들이 퇴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민의힘이 9일 국회 본회의에서 ‘노란봉투법’과 ‘방송3법’ 처리에 반대하는 필리버스터(합법적 의사 진행 방해를 위한 무제한 토론) 계획을 전격 철회한 것은, 더불어민주당이 추진한 이동관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 위원장 탄핵을 막는 게 법안 처리 반대보다 더 중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공영방송 지배구조 변화 등에 영향력을 미치는 방통위를 마비시킬 수 없다고 보고, 노란봉투법 등 반대 여론전보다 ‘이동관 지키기’를 선택한 것이다.

국민의힘은 이날 오후 2시20분께 국회 본회의에 이동관 방통위원장 탄핵소추안이 보고되고,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안)과 방송3법(방송법·방송문화진흥회법·한국교육방송공사법 개정안)이 상정되자 즉시 비공개 의원총회를 열어 애초 계획했던 필리버스터를 철회하기로 결정했다.

국민의힘 의원들이 9일 국회 본청 앞 계단에서 더불어민주당의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 탄핵 추진과 관련해 \

윤재옥 원내대표는 의총에서 “노란봉투법과 방송3법은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면 되는데, 방통위원장 탄핵소추안은 국회에서 의결되면 방통위가 마비되기 때문에 필리버스터를 포기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고 복수의 참석자들이 전했다. 이 위원장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가결되면 그 순간 이 위원장의 직무는 헌법재판소의 최종 결정이 이뤄질 때까지 정지되는데, 이를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방통위는 5인의 상임위원 체제가 정상이지만, 현재 이동관 위원장과 이상인 부위원장 등 ‘2인 체제’다. 윤 원내대표는 이를 ‘이상인 1인 체제’로까지 만들 수는 없다고 의원들에게 설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회법에 따라 탄핵소추안은 본회의에 보고되면 24시간 이후 72시간 이내 본회의에서 무기명 투표로 표결해야 한다. 국민의힘은 그동안 노란봉투법과 방송3법 등 4개 법안에 60명의 의원을 투입해 오는 13일까지 닷새 동안 필리버스터에 나설 계획이라고 밝혀왔다. 1개 법안마다 24시간의 필리버스터가 진행되고 나면 재적 의원 5분의 3(179명) 찬성으로 필리버스터를 강제 종결할 수 있다. 민주당은 이러한 규정을 활용해, 이 위원장 탄핵소추안의 국회 보고 24시간이 경과하는 10일 오후 본회의에서 노란봉투법과 더불어 이 위원장 탄핵소추안을 표결 처리할 계획이었다. 탄핵소추안은 재적 의원 과반수(150명) 찬성으로 의결되므로, 민주당 단독 처리가 가능하다. 그러나 국민의힘이 9일 필리버스터를 전격 철회함으로써 본회의는 이날로 종료돼, 이 위원장 탄핵소추안 표결을 할 수 있는 본회의 기회 자체가 사라졌다. 국민의힘 한 초선 의원은 “민주당 입장에서는 허를 찔린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의힘의 필리버스터 전격 철회 방안은 최근 며칠 사이 민주당이 이동관 위원장 탄핵소추안 발의를 당론으로 채택한다는 얘기가 들리면서 본격 검토됐다고 한다. 윤 원내대표는 이날 본회의 산회 직후 기자들과 만나 “필리버스터를 안 하기로 제가 오늘 아침에 결정했다”며 “점심시간 직전까지 민주당과 김진표 국회의장에게 ‘탄핵안은 상정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정말 읍소에 가까운 사정을 했는데 안 받아들여졌다. 정확하게 오후 1시40분이 넘어 (탄핵소추안이 국회 의안과에) 접수됐다는 얘기를 듣고 ‘정말 너무 심하구나’ 하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윤 원내대표는 의총 뒤 기자들과 만나 “국민의힘은 악법에 대해 국민에게 소상히 알리고 호소드리고 싶었지만, 방송통신위원장을 탄핵해 방통위의 기능을 장기간 무력화시키겠다는 나쁜 정치적 의도를 막기 위해 필리버스터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며 “국민이 정말 이해해주시고 응원해주시길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거대 야당의 독주’로 소수 여당이 필리버스터마저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고 부각한 것이다. 국민의힘은 윤석열 대통령에게 노란봉투법과 방송3법에 대한 거부권 행사를 건의할 계획이다. 결국 법안들도 무력화하고, ‘이동관 지키기’에도 성공해 실리를 모두 챙기는 셈이다.

서영지 기자 yj@hani.co.kr 신민정 기자 sh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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