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사람 죽인 로봇
체코어로 노동을 뜻하는 단어 ‘로보타’(robota)가 로봇의 어원이다. 1920년 체코슬로바키아 극작가 카렐 차페크가 쓴 희곡 <로숨의 유니버설 로봇>에서 로봇이라는 용어가 처음 등장했다. 작업장에서 사람만큼이나 그 이상으로 일을 하지만 생각이나 감정은 없는, ‘사람 닮은 기계’를 지칭했다. 인간의 노동을 대신 수행하는 존재로 상정한 것이다. 로봇은 1960년대 들어 공상에서 현실로 넘어왔다. 미국·일본에서 산업용 로봇이 본격 개발돼 조립·제작·운반·검사 작업에 두루 쓰였다. 이후 청소·서빙·안내 등 서비스용 로봇이 다양하게 나왔다.
1979년 미국 포드자동차 공장에서 25세 노동자 로버트 윌리엄스가 적재 선반의 부품을 운반하도록 설계된 산업용 로봇 팔에 머리를 맞아 숨졌다. 로봇에 의한 최초 사망자였다. 로봇 산업이 발전하면서 로봇 안전사고·인명피해가 잦아졌다. 독일·일본·중국·인도 공장에서도 로봇 오작동 사고로 사상자가 나왔다. 2015년 영국에선 수술 로봇 ‘다빈치’가 간호사를 때려눕히고, 지난해 러시아에선 체스 로봇이 7세 소년의 손가락을 붙잡아 부러뜨리는 일도 벌어졌다. 2018년 3월 미국에서 보행자와 운전자가 숨진 자율주행차 교통사고 2건도 로봇이 빚은 참사였다.
지난 7일 경남 고성군 농산물 선별장에서 상자 운반용 로봇의 센서를 점검하던 설비업체 직원이 로봇 팔에 끼여 숨졌다. 경찰은 로봇이 사람을 상자로 인식해 사고가 난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 3월 군산, 지난해 4월 평택 공장에서 로봇 점검 중 오작동으로 작업자가 기계에 눌려 숨진 것과 유사한 사고가 이어진 것이다. 이번 사고는 로봇이 스스로 사람을 오인해 일으킨 것이라 이례적이다.
로봇 사고는 문명의 이기가 초래한 비극이다. 이제는 로봇을 인간의 노동을 대신하는 단순한 기계로만 여겨서는 안 되겠다. 요즘 로봇은 인공지능과 결합해 겉모습에 상관없이 점점 더 사람 같은 존재로 발전하고 있다. 편리함과 유용함이 커질수록 더 탁월한 능력을 갖춘 로봇이 계속 새로 나올 것이다. 이런 로봇으로부터 사람의 안전이 위협받지 않도록 대비책을 세우는 게 급선무가 됐다. 로봇의 위험을 사람이 통제하지 못한다면, 상상 못할 비극을 겪을 것이다.
차준철 논설위원 cheo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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