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K] 4·3 평화재단 조례 전부개정안 충돌…Q&A
[KBS 제주] [앵커]
4·3 평화재단 조례 개정안 논란이 강 대 강 국면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관련한 뉴스를 어제 이 시간에 전해드렸습니다만, 오늘은 한걸음 더 들어가보겠습니다.
김익태 기자 나와 있습니다.
조례 개정안의 내용부터 살펴보죠.
어떤 내용이 담겼길래 이렇게 논란이 커지고 있는 건가요?
[기자]
핵심적인 건 인사권입니다.
4·3평화재단은 현재 법적으로는 제주도의 출자출연기관으로 지정돼 있습니다.
때문에 오영훈 도정은 다른 출자출연기관처럼 평화재단의 이사장은 물론 이사도 제주도지사가 임명하겠다는 입장입니다.
이에 대해 재단 측은 국가 업무를 대신 수행하는 성격과 4·3의 역사성이라는 측면에서 독립성을 훼손한다며 반발하고 있습니다.
[앵커]
4·3평화재단이 법적으로 지방자치단체의 산하 기관이라는게 잘 이해가 가지 않네요?
[기자]
이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선 평화재단의 역사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4·3특별법은 2000년에 조문 11개의 법률로 제정됐죠.
단출했지만, 그간의 4.3 역사를 감안하면 제정 자체가 기적적이었죠.
법 제정 이후 후속 요구가 쏟아졌고, 4·3평화공원 관리와 추가 진상조사 등을 위해 국가에서 지원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았습니다.
이 요구가 반영돼 특별법을 7년만에 처음 개정하면서 4·3재단에 정부가 출연할 수 있도록 하는 규정을 담았습니다.
이를 근거로 2008년 10월 4·3평화재단이 행정안전부의 허가를 받아 설립됐습니다.
정부나 지방자치단체 소속이 아니라 독립 법인으로 시작한 겁니다.
특별법에 지방자치단체에 대한 언급은 없었지만, 제주도 역시 설립 직후부터 재단에 출연금을 지원했습니다.
하지만 2014년 '지방자치단체 출자·출연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면서 분수령을 맞습니다.
제주도의 지원을 계속 받으려면 평화재단도 출자출연기관으로 지정받아야 하는 상황이 된 겁니다.
결국 2015년 평화재단 이사회는 독립성 훼손 논란 속에 출자출연기관 지정을 받아들였습니다.
다음 해인 2016년 4·3특별법 개정으로 국가와 함께 지방자치단체도 평화재단에 자금을 출연할 수 있는 규정이 만들어졌죠.
이를 근거로 출자출연기관 지정을 해제했어야 하는데, 이를 손대지 못한 채 지금까지 이어져 온 겁니다.
[앵커]
2015년 출자출연기관 지정 이후 평화재단 이사장을 뽑는 방법에도 변화가 생겼겠네요?
[기자]
그렇습니다.
평화재단은 2008년 출범 이후 이사장을 이사회에서 사실상 옹립하는 방식으로 선출했습니다.
2015년 출자출연기관 지정 이후엔 임원추천위원회의 추천을 거쳐 이사장을 이사회에서 선출하되 제주도지사의 승인을 받도록 했죠.
지금 오영훈 도정은 여기서 한걸음 더 나가 이사장은 물론 선임직 이사 모두를 임원추천위원회의 추천을 거쳐 제주도지사가 임명하도록 하는 방향으로 조례 개정을 추진하고 있는 겁니다.
[앵커]
그렇게되면 다른 출자출연기관처럼 제주도지사가 기관운영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지 않나요?
[기자]
네, 바로 그 점 때문에 평화재단을 비롯한 일부 시민단체와 정치권에서 "4·3의 정치화를 초래한다"는 이유로 반대하고 있는 겁니다.
직접 들어보시죠.
[고희범/4·3평화재단 8대 이사장/10월 31일 : "4·3이 정치화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재단이 정쟁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런 우려를 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도지사가 바뀔 때마다 재단이 흔들리게 되는 거죠."]
정치적 독립성 훼손 문제는 평화재단 초기부터 꾸준히 제기됐습니다.
김태환 도정 당시 출범 준비 때부터 내홍을 겪다 제주도 부지사가 초대 이사장을 맡으며 오점을 남겼죠.
장정언 제2대 이사장 임기 중에도 도지사 측근 인사의 재단 채용을 놓고 갈등을 빚었습니다.
장 이사장은 퇴임하는 날 제주도정을 향해 이런 쓴소리까지 했습니다.
[장정언/4·3평화재단 2대 이사장/2011년 10월 : "아쉬운 점이 하나 있다면, 4.3을 이용하지 마라. 4·3은 피다. 선혈이고, 생명이다."]
[앵커]
제주도정이 평화재단에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건 초기부터 지속돼온 일이군요.
오영훈 지사는 어떤 입장인가요?
[기자]
오 지사가 지난 6일에 직접 입장을 밝혔습니다.
출자출연기관으로 지정된 이상 다른 기관과 똑같이 평화재단도 제주도의 지도감독을 받아야 한다는 겁니다.
임원추천위원회의 추천을 받는 과정에서 지사 개입 여지는 적고 오히려 재단을 더 투명하게 운영할 수 있다고 반박했습니다.
직접 들어보시죠.
[오영훈/제주도지사/11월 6일 : "어느 누구도 이 부분에 대해서 예외가 있을 순 없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좋은 일을 한다고 하더라도 국민적 동의와 법 앞에서의 평등은 (같이 적용해야 합니다.)"]
[앵커]
그런데도 선거공신 등 특정 인사를 임명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있습니다.
이미 차기 이사장 내정자가 있다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지 않습니까?
[기자]
급작스럽게 느껴질 정도로 오영훈 지사가 조례 개정안을 밀어붙이면서 차기 이사장을 염두에 둔 것 아니냐는 의문이 나오고 있습니다.
일부 언론에서 익명으로 보도까지 했고, 이를 근거로 시민단체도 그 내용을 성명에 담기도 했는데요.
해당 언론사는 현재 관련 내용을 삭제했습니다.
그만큼 근거는 부족하다는 뜻입니다.
거론된 모 교수는 이사장 연배에도 맞지 않거니와 이미 다른 직책을 맡고 있어 이사장 직을 수행할 수 없는 상탭니다.
제가 취재한 바로는 차기 이사장 내정설은 '막연한 추측'에 가까워 보입니다.
[앵커]
특정인을 미는 것도 아니라면 왜 이렇게 오 지사가 강경하게 밀어붙이는 걸까요?
[기자]
평화재단은 설립당시부터 정부와 제주도로부터 지원을 받았다고 말씀드렸죠.
2008년 출범 당시 출연 금액은 행정안전부에서 연 20억, 제주도에서 연 3억 원이었습니다.
이 출연금은 매년 증가하면서 올해는 국비 53억, 지방비 42억 등 출연금만 95억 원에 이르고, 연간 백 억 원 이상을 집행하고 있습니다.
오영훈 지사는 이렇게 큰 돈을 쓰는 재단의 운영에 문제가 많은데도, 재단 내부에서는 문제의식도 느끼지 않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4·3에 대해 역할을 해온 자신이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자신하는 것 같습니다.
[앵커]
그 정도로 재단 운영에 문제가 있나요?
[기자]
이 문제가 이렇게 갈등상황으로 치달은 데에는 재단의 책임도 큽니다.
지난 8월 제주도감사위원회가 평화재단 종합감사 결과를 공개했죠.
이 감사에서 평화재단은 재단 사상 처음으로 기관경고를 받았는데요.
4·3유족에게 장학금을 주는 기금 중에 16억 원을 이사회 의결도 거치지 않은 채 정기예금에서 생명보험으로 변경 가입했고, 이 내용을 허위로 제주도에 제출한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앵커]
그럼 허위공문서 작성 아닌가요?
[기자]
감사위원회는 허위공문서 작성이라고까지는 판단하지 않았습니다.
이전에 보고했던 내용을 주의의무를 다하지 못한채 수정하지 못한 것으로 판단했는데요.
어찌됐든 어떻게 이런 일이 의사회 의결도 없이 가능했는지 재단 측의 깊은 반성이 필요합니다.
고질적인 문제인데 빙산의 일각만 드러난 것일 수도 있거든요.
이 뿐만 아니라 직원 채용이나, 행사 사업비 지원, 연구 사업 등에 대해 전반적으로 점검할 필요성이 커 보입니다.
[앵커]
그렇네요.
평화재단에 이런 문제가 있었는데, 그동안 언론에서도 조명은 없었던 것 같아요.
[기자]
그런 측면이 있습니다.
그동안 4·3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이라는 대의에 집중하다보니, 내부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눈감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았던게 사실입니다.
4·3이 정치적으로 오염될 수 있다는 재단 측의 핵심적 주장도 검증해볼까요?
4대, 5대 이문교 이사장은 이사장직 사퇴라는 배수진을 치며 출자출연기관 지정 동의를 받아내 연임까지 성공했지만, 지정 해제 약속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6대, 7대 양조훈 이사장은 초대 상임이사 임기 중에 김태환 지사의 부름을 받아 환경부지사로 자리를 옮겼다가 원희룡 지사 시절에 이사장으로 돌아와 연임까지 했습니다.
8대 고희범 이사장 역시 원희룡 지사 시절 행정시장을 역임하고도 이사장에 취임했습니다.
8대 4·3 유족회장 임기 중에 원희룡 지사의 행정시장에 임명된 양윤경 서귀포시장 역시 4·3의 정치적 중립을 훼손한 사례로 꼽을 수 있습니다.
평화재단 이사장과 이사를 도지사가 임명하는 제도가 4·3을 정쟁으로 끌고 갈 것이라는 평화재단 측의 주장이 궁색해지는 대목입니다.
[앵커]
그런 관점에서 보면 도지사의 명시적인 임명권만 없었을 뿐이지, 영향력에서 벗어난 것은 아니라고 볼 수도 있겠네요.
[기자]
그렇습니다.
이번 사태의 씨앗이라고 할 수 있는 2015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볼까요?
원희룡 지사 시절 평화재단 이사회는 제주도의 출자출연기관 지정 요구를 일사부재의, 즉 일단 부결된 의안은 동일회기중에 다시 심의하지 못한다는 원칙까지 깨가며 받아들였는데요.
정말로 정치적 독립성이 중요했다면 이 당시에 출자출연기관 지정 요구를 거부해야 했죠.
출자출연기관 지정에 동의해놓고 이제와서 원칙대로 하자는 오 지사의 주장에 반대하는 건 논리적으로도 모순입니다.
2015년 평화재단 이사회에서 출자출연기관 지정에 찬성했던 이사장과 일부 이사들은 4·3특별법 개정만 하면 출자출연기관 지정 해제는 어렵지 않다며 책임지고 해결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습니다.
다음해 4·3특별법이 개정되서 지방자치단체에서도 평화재단에 자금을 출연할 수 있는 규정이 만들어졌다고 말씀드렸죠.
이를 근거로 출자출연기관 지정을 해제했어야 하지만 아무도 책임지지 않고 지금까지 이어져 온 겁니다.
[앵커]
그렇다면 평화재단이 제주도 출자출연기관으로 지정된 이상 제주도의 통제를 받는게 맞는 것이고, 특히 오영훈 지사야 4·3특별법과 뗄레야 뗄수 없기에 진정성을 믿어도 되는 것 아닐까요?
[기자]
결론이 그리 간단하지 않습니다.
다시 2015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보죠.
당시 평화재단 이사회에는 오영훈 지사도 이사로 활동하고 있었습니다.
평화재단을 제주도의 통제 아래 두는 것이 당연하다는 지금의 오 지사 주장이 맞다면 당시 평화재단 이사였던 오 지사는 찬성표를 던져야 했겠죠?
그러나 오 지사는 1차 표결에서는 기권했다가 2차 표결에 가서야 마지못해 찬성 표를 던졌습니다.
"어느 한 사람의 선택에 의해서 찬성되고 부결되고 한다는 것은 감당하기 힘들다"는 발언을 하면서 말이죠.
2015년 당시에도 원희룡 지사는 출자·출연기관 지정과는 별개로 재단 독립성을 보장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하지만 당시 오영훈 이사는 도지사의 의지가 아니라 제도적으로 독립성을 보장받아야 한다는 입장이었습니다.
당시 두 사람의 발언을 들어보겠습니다.
[원희룡/당시 제주도지사/2015년 6월 10일 : "현재 법을 뛰어 넘는 그런 주장에 대해서 도가 동조할 수는 없는 겁니다. 출연 기관이 안 되면 예를 들어서 거기에 대해서 재정이 간다든지 이런 부분들이 근거가 없습니다."]
[오영훈/당시 4·3평화재단 이사/2015년 6월 : "지금 현재의 지방재정법이나 이러한 한계를 극복할 수 있도록 어떻게 또 제도적 접근을 할 것인지 이러한 고민들이 (있어야 겠죠.)"]
[앵커]
2015년 오영훈 이사와 2023년 오영훈 지사의 입장이 정반대였군요?
[기자]
출자출연기관 지정의 여파가 독립성을 훼손할 수 있다는 점을 2015년 당시엔 오 지사 스스로 인식하고 있는 것 아니냐고 해석할 수 있는 발언입니다.
이와 관련해 오 지사에게 질문을 해봤는데요.
당시 도의원을 그만두고 국회의원 당선도 전이어서 평화재단의 문제점에 대한 정보를 속속들이 알기 힘든 상황이었다는 점을 고려해달라고 입장을 밝혀왔습니다.
[앵커]
문제점을 깊게 이해하다보니 결론이 달라졌는다는 해명이네요.
이 문제에 대한 해법은 있을까요?
[기자]
출자출연기관 지정을 해제하는 방안부터 고민해봐야 할 텐데요.
제주도는 지정을 해제할 경우 청산 절차에 따라 이미 출연했던 기본재산을 전부 회수하고, 이후엔 국비, 도비 출연금이나 운영비를 지원할 수 없다고 법령을 해석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특별법 우선 원칙 등 얼마든지 다른 해석도 가능합니다.
이번 조례안의 핵심인 인사권 문제를 살펴보면, 민주주의 원칙에 따라 도민의 대표가 통제하는 것이 원론적으로 옳습니다.
감시받지 않는 권력은 반드시 부패하고, 평화재단이라고 예외는 아니죠.
그렇다고 당선되면 모든 권한이 집중되는 제왕적 도지사의 현실에서 그 대안이 제주도지사의 임면권 행사일까요?
오 지사 역시 권력을 잡기 전과 후의 논리가 달라지고 있지 않습니까!
4·3 정신을 발전시키려고 한다면 도지사가 나설 것이 아니라 시민사회에 힘을 실어주는 방향으로 대안을 모색해야 합니다.
평화재단 측 역시 그동안 일부 4·3 운동의 주류 세력에 의해 독점운영되고 있다는 도민들의 비판적 시선이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았으면 합니다.
[앵커]
네. 도지사 맘대로, 평화재단 맘대로가 아니라 시민의 참여와 감시 속에 4·3 정신을 계승하고 발전할 수 있는 대안이 나오기를 기대해봅니다.
친절한K 여기서 마무리하죠.
김익태 기자 (kit@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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