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원목 칼럼] 이-팔 전쟁, 중동외교 더 실용적이어야

2023. 11. 9.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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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목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간의 전쟁(이-팔 전쟁)은 사실 예정된 것이었다. 미국이 세계 각지에서 슈퍼파워 외교를 펼치던 시대는 지나갔다. 오바마와 트럼프 정부 하에서 미국은 아시아에 주력할 수밖에 없어 탈중동 외교를 추진했다. 중동지역에서 미국이 빠지는 힘의 공백을 러시아와 중국이 채웠다.

러시아는 2015년 이래 시리아 내전에 끝까지 개입했고, 아제르바이젠과 아르메니아간의 갈등도 중재하면서 중동지역 질서 재편을 이끌었다. 중국은 경제 실용주의를 내세워 중동의 지역경제에 대한 영향력을 증대해왔다.

이러한 중동지역을 둘러싼 서방 진영과 반미 진영간의 탐색전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간의 전쟁을 계기로 맞대결 양상으로 발전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에서 고전 중인 러시아는 미국의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지원을 줄일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이 필요했다. 이-팔 전쟁이라는 또 하나의 전쟁에 미국이 개입하게 만드는 것이 그것이다.

미국의 전방위 경제보복에 시달려온 중국은 미국의 힘을 중동에 또다시 쏟아 붓게 만드는 계기가 필요했다. 아울러 이-팔 전쟁으로 인해 중동 지역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은 크게 증대될 수밖에 없다. 이란은 미국이 나서서 이스라엘과 사우디아라비아간의 관계 정상화를 추구하는 것에 위협을 느껴왔다. 반이스라엘 진영의 단결의 기치를 내세워 사우디아라비아를 압박하는 계기가 필요했다. 이-팔 전쟁은 이러한 계기들을 러시아, 중국, 이란에게 한꺼번에 제공했다.

슈퍼파워 외교가 더 이상 먹혀들지 않는 시대에 미국의 힘이 빠져나가는 권력 공백은 이를 채우기 위한 치열한 경쟁을 촉발한다. 냉전 직후 소련의 영향력 약화는 동구권에서의 민족 간 분규와 내전으로 이어졌다. 이제 미국의 이라크전쟁과 아프가니스탄 철군에서부터 비롯된 탈중동 분위기가 이스라엘-아랍권간의 민족전쟁으로 확산되고 있는 셈이다. 위험한 점은 미국 주도의 세계질서에 대한 도전의 배후에 러시아, 중국, 이란 등 전체주의 체제들 간의 암묵적인 연대가 자리잡고 있다는 점이다.

이-팔 전쟁이 세계 경제에 미칠 영향도 심각하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을 넘어, 하마스를 지원하는 이란까지 공격할 위험성이 높지는 않다고 하더라도, 중동전쟁 발발 자체가 유가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자재비, 운송비, 국내외 공사비 등도 상승하게 된다. 다극화 질서가 초래하는 불확실성은 각국이 필수자원의 자체 공급망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을 가속화하게 된다. 그럴수록 필수자원을 공급받는 비용은 증가하게 된다.

고유가·고환율에 따른 경기둔화 문제를 겪고 있는 우리 경제는 경기 둔화가 장기적으로 고착화될 위험 속에 놓여있다. 이스라엘은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이 진출해있는 지역 거점이다. 특히 인텔의 CPU 생산기지가 전쟁 지역에 인접해 있기 때문에 만약 인텔 CPU제품들의 생산에 차질이 발생하게 되면 이들 제품과 생태계를 같이하는 한국산 최신 D램에 대한 수요도 동반침체를 겪게 된다.

우리의 대중동 정책에는 미국의 역내 영향력이 줄어드는 시기 전체주의 세력의 확산에 어떻게 대처해나가야 할 것인지에 대한 역사적 고민까지 깃들어야 한다. 민주주의와 인권, 자유 시장경제, 핵확산 금지를 지지하는 중견국 외교정책은 다자외교의 기본이다. 인도적 지원, 평화유지군 활동, 대테러 임무 등을 통한 대중동 중견국 외교자산을 꾸준히 쌓아올려야 다자무대에서 우방국들과 가치외교 협력을 할 수 있다.

양자외교는 달라야 한다. 가치 연대의 압박을 받는 중동 개별국가와의 관계에서는 적극적 실용주의적 자세를 견지해야 한다. 이들이 역점을 두는 개혁과 개방의 가치를 적극 지지하고, 석유자원에의 의존과 보수 이슬람 체제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구조개혁의 노력에 적극 참여해야 한다. 여성 인재 육성, 디지털 경제 전환, 인프라 및 첨단산업 개발 등에 대한 산업협력 역시 심화시켜 나가야 한다. 이집트 등 식량안보 위기를 겪고 있는 국가들과의 공적개발원조(ODA) 협력까지 결합한 종합적 실용외교가 추진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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