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이스라엘의 폭격 예고 전화, 가자 의사 요구에 깡통폭탄 먼저 쐈다
가자 치과 의사에게 “주민 대피시켜라”
의사가 “경고 폭격해 달라” 요구하자
탄두 없는 폭탄 두 발 2발 투하
지난달 19일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의 작은 타운인 알-자흐라(al-Zahra)에 이스라엘 공군의 폭격이 시작됐다. 테러집단 하마스의 거점인 가자 북부의 가자 시티에서 남쪽으로 약 10㎞ 떨어진 곳에 위치한 이 작은 타운의 인구는 5000~6000명. 면적(4.6 ㎢)은 서울의 작은 행정동 3,4개를 합친 크기다.
알-자흐라는 지금까지 한 번도 이스라엘 폭격이 없어 상대적으로 ‘평화스러운’ 곳이었지만, 이는 10월19일 아침에 바뀌었다. 수백 가구가 살던 아파트 단지 25곳이 파괴됐다.
하지만, BBC 방송은 “수 시간 이어진 이스라엘 정보당국의 대피 지시 전화와, 처음 이 전화를 받은 한 팔레스타인 치과의사의 노력으로 주민의 인명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이스라엘 공군은 폭격에 앞서 종종 민간인들에게 전화나 전단(傳單)을 통해 대피 메시지를 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BBC 방송은 알-자흐라에 사는 이 치과의사와 많은 주민을 인터뷰해, 그 날 이스라엘군 정보당국과 이 의사 간에 오고 간 통화 내용을 상세히 소개했다.
◇ 아침에 걸려온 모르는 번호의 전화
알-자흐라에서 15년째 치과를 운영하는 마무드 샤힌(40)는 10월19일 오전 6시30분쯤 밖에서 들려오는 “대피하라”는 고함에 잠이 깨, 가족과 함께 무작정 거리로 나갔다. 그리고 그의 전화기가 울렸다. 모르는 번호였다. “이스라엘 정보당국에서 전화합니다”로 시작한 그 전화는 그의 인생에서 가장 공포스러웠던 하루를 열었다.
자신을 ‘아부 칼레드’라고 소개한 전화 속 인물은 흠잡을 데 없는 아랍어로 치과의사 마무드의 풀네임(full name)을 부르며 “아파트 세 동을 폭격할 것이니, 빨리 주민들을 대피시켜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그의 동네는 지금까지 한 번도 이스라엘군 공습을 받은 적이 없었다. 마무드는 또 ‘가짜’ 대피 전화들에 대해서도 들은 적이 있었다. 이웃들을 설득하려면, 이 전화의 신빙성을 확인해야 했다.
마무드는 ‘사람들이 자느라고 내 외침은 못 들어도, 굉음에는 깨겠지’라고 생각했고, 전화 속의 ‘아부 칼레드’에게 ‘경고 폭탄을 떨어뜨려 보라’고 했다. 이스라엘군은 폭격에 앞서, 탄두가 없어 지붕만 뚫는 미사일ㆍ폭탄을 떨어뜨리기도 한다. 곧 강력한 굉음이 들렸다.
마무드는 그러나 한 번 더 ‘표증(表證)’을 원했다. “한 번 더 경고 폭탄을 떨어뜨려 주시오.” 또다시 굉음이 울렸다. 전화는 ‘진짜’였다. 마무드는 “약속을 어기고, 우리가 피하는 동안에 폭탄을 떨어뜨리지 말라”고 상대방에게 간청했다.
‘칼레드’는 “시간을 주겠다. 민간인이 죽는 것은 원치 않는다”고 답했다. 마무드는 바쁘게 아파트 단지를 돌며 고함을 지르기 시작했고, 수백 명이 잠옷이나 아침 기도복 차림으로 거리로 나왔다.
◇”우리는 당신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본다”
마무드는 하지만 왜 이곳을 폭격하려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는 전화 속 ‘칼레드’에게 “여긴 낯선 이들도 없고, 전혀 충돌도 없던 곳이다. 이스라엘 폭격권 밖에 있던 지역”이라고 설득하려고 했다. 그러나 ‘칼레드’는 “우리는 당신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며, 당신이나 나보다 높은 사람으로부터 ‘폭격하라’는 명령을 받았다”고 했다.
주민들이 다 피하자, ‘칼레드’는 “곧 폭격이 시작된다”고 알렸다. 마무드는 공포에 빠져 “실수로, 당신들이 엉뚱한 건물을 폭격하면 어떡하느냐”고 물었다.
‘칼레드’는 “기다려 보라”고 했고, 곧 이스라엘 전투기 한 대가 마무드의 머리 위를 선회했다. 이어 마무드의 아파트에 접해 있는 아파트 한 동을 파괴했다. “이게 우리가 파괴하려고 했던 아파트요. 멀리 물러나 있으시오.”
그날 아침, ‘칼레드’의 경고대로 모두 아파트 세 동이 마무드 눈 앞에서 파괴됐다. 알-자흐라 주민들이 페이스북에 올린 영상에서도 오전 8시28분 세 동의 아파트가 무너지고 있었다. 폭격이 끝나자, 전화 속 남성이 다시 말했다. “우리 폭격은 끝났으니, 집으로 돌아가도 좋소.”
◇저녁 기도 후에 다시 울린 전화
‘이제 더 이상 폭격은 없겠지…’ 그날 밤 하루 다섯 번의 기도 중 마지막 기도[이샤]를 마친 치과의사 마무드는 전화 한 통을 못 받은 것을 확인했다. ‘이번엔 내가 사는 아파트일까, 바로 옆일까’ 가슴이 쿵쾅거리는 순간, 다시 전화기가 울렸다. 이번에도 이스라엘 정보당국이었지만, ‘다우드’라는 이름의 다른 사람이었다.
‘다우드’도 아들 이름을 포함해, 마무드에 대해 자세히 알고 있었다. 다우드는 “하마스가 아이들을 칼로 살해하는 걸 봤죠”라고 물었지만, 마무드는 “그건 우리 이슬람에선 금지하는 것”이라고 부인했다. 마무드는 “민간인들에게 대량 보복하지 말라”고 호소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다우드’는 “오늘 밤 또 폭격이 있고 더 많은 건물이 무너질 것이다. 이번엔 아침에 파괴된 아파트 세 동의 옆 단지 두 동과 그 옆 단지가 목표”라며, 치과의사 마무드에게 다시 사람들을 대피시키라고 지시했다.
마무드는 다시 목이 쉬도록 대피하라고 외쳤고, 전화 속 인물 ‘다우드’에게 모든 주민이 대피하고 차가 있는 사람은 타운을 빠져나갈 때까지 폭격을 늦춰달라고 호소했다.
처음에는 전화 내용대로 아파트 세 동만 파괴됐다. ‘다우드’는 세 동이 더 파괴될 것이라고 했고, 이후 주민들이 대피할 시간을 주겠다고 했다.
하지만 폭격 명령은 수시로 바뀌었고, 결국 마무드가 사는 아파트 길 건너편의 20동이 넘는 아파트 단지가 모두 파괴됐다. 마무드는 “이 밤중에 어디로 가란 말이냐. 아침까지만 폭격을 늦춰달라”고 호소했지만, 다우드는 “폭격 명령은 이미 떨어졌고, 2시간 내 모든 아파트 동을 파괴할 것”이라고 답했다고 한다.
전화 속 상대방은 감정 노출이 전혀 없었고, 심지어 “차근차근 하시오. 당신이 허락하지 않으면 폭격하지 않겠다”고 했다.
마무드는 항변했다. “아뇨, 당신네 폭격에 내 허락이 필요한 것처럼 말하지 말라. 나는 폭격을 원치 않는다. 사람들을 대피시키라고 하면 따르겠지만, 알-자흐라를 폭격하는 것은 나 마무드 샤힌이 아니오.”
◇전화 배터리가 얼마 안 남자, 이웃 통해 지시
사람들은 거리로 나와도, 갈 곳을 몰랐다. 마무드는 ‘다우드’에게 물었다. “사람들을 어디로 대피시키란 말이요?” “서쪽의 팔레스타인 스트리트로 가라고 하시오.” “팔레스타인 대학교 캠퍼스 말이오?” “그렇소.”
대학으로 대피한 뒤, 통화 상태를 유지하고 있던 ‘다우드’가 물었다. “배터리가 얼마나 남았소?” 마무드가 “15%”라고 하자, ‘다우드’는 “이제 전화를 끊고, 기다리라”고 했다. 그 뒤에도 간헐적으로 마무드의 전화기는 울렸다. “지금 한 건물을 파괴했고, 이제 다른 건물을 파괴할 것이오. 우리 일이 끝날 때까지 계속 전화할 것이오.”
19일 밤 9시11분 페이스북에는 “알-자흐라의 아파트들이 지금 파괴되고 있다. 신이여, 긍휼을 베푸소서”라는 메시지가 떴다.
한번은 그의 이웃 전화기가 울렸고, 통화 속 상대방은 마무드를 찾았다. 이제 사람들은 마무드에게 묻기 시작했다. “그 사람들, 우리 돌아가도 된다고 합디까. 또 어디를 친다고 연락 왔소?” 그날 밤 시작한 공습은 이튿날 오전 8시53분까지 이어졌다.
‘다우드’는 이튿날 오전 폭격이 끝날 때까지 계속 전화했지만, 폭격이 멈춘 뒤에는 연락이 없었다. ’귀가해도 좋다’는 지시도 없었다. 사람들은 정오까지 대피했다가, 하나둘 집으로 돌아갔다.
자신의 집이 온전하게 남았더라도, 주변이 온통 돌무더기로 변해 어떠한 서비스도 기대할 수 없었다. 마무드의 아파트는 파괴되지 않았지만, 그의 치과 병원이 있던 알-자흐라의 비즈니스 지역은 완전히 사라졌다. 그날 이스라엘군은 알-자흐라의 25 곳 이상의 아파트 단지와 거주 지역을 폭격했다.
BBC 방송은 그날 마무드의 주민 대피 노력으로, 그의 이웃 중에는 숨진 이가 없었다고 보도했다. 이 방송은 이스라엘 정보당국과 팔레스타인 주민 간에, 대피를 놓고 오고 간 전화 내용이 이렇게 소상하게 알려지기는 처음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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