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업이익 고스란히 전기요금 내야할 판”…선별 인상에 시름 잠긴 기업
고압 전력 쓰는 대기업, 비용 부담 커질 듯
(시사저널=허인회 기자)
정부가 결국 전기요금 선별 인상을 택했다. 산업용 요금만 킬로와트시(㎾h)당 평균 10.6원(6.9%) 인상하기로 한 것이다. 대상은 주로 쓰는 산업용 고압 전력을 쓰는 대기업이다. 정부가 산업용 요금만 올린 것은 2008년 이후 15년 만이다. 고물가에 여론을 의식한 조치라는 평가가 나오는 가운데 기업들은 울상이다. 전기요금 인상 부담을 떠안았기 때문이다. 일각에선 원가 상승으로 인해 물가에도 악영향을 끼칠 가능성도 제기하고 있다.
한국전력공사는 전날 주택용과 소상공인용 전기요금은 그대로 둔 채, 대기업이 쓰는 산업용 전기요금만 올리는 4분기 전기요금 조정안을 발표했다. 고물가·고금리 상황이 장기화되고 있는 가운데 서민 부담을 고려한 조치다. 사실상 정부가 '표심'을 의식한 것으로 풀이된다.
산업부와 한전은 "고물가·고금리 장기화와 경기 침체로 인해 일반 가구, 자영업자 등 서민 경제의 부담이 특히 큰 상황"이라며 "향후 국제 연료 가격과 환율 추이 등을 살펴가며 요금 조정을 검토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결국 인상 부담은 기업들이 지게 됐다. 그중에서도 중소기업들이 주로 쓰는 산업용(갑) 요금은 동결하고, 산업용(을) 요금도 전압별로 1㎾h당 6.7~13.5원으로 차등 인상한다. 주로 대기업이 그 대상이다.
기업들은 고심에 빠졌다. 경기 침체로 실적 악화에 시달리고 있는 와중에 추가 비용 부담까지 더해진 탓이다. 특히 24시간 공장을 가동하는 반도체 업계의 부담은 한층 가중될 것으로 보인다.
국내 기업 중 가장 많은 전력을 소비하는 삼성전자는 상당한 비용을 전기요금으로 납부해야 하는 상황이다. 지난해 삼성전자 국내 사업장의 전력사용량은 2만8316GWh이다. 이 가운데 90%는 반도체 부문에 쓰였다. 반도체 제조 공간은 온도 제어가 필수적이고 오염 물질이 없어야 하는 사업장 특성상 끊임없이 공기를 순환하는 데 상당한 전기가 필요하다.
지난해 삼성전자는 한전에 약 2조5000억원 규모의 전기요금을 납부했을 것으로 추산된다. 지난해 ㎾h당 118.7원이었던 산업용 전기 판매 평균단가를 단순 적용한 수치다. 올해도 비슷한 규모의 전력을 사용한다고 가정했을 때 이번 인상분(㎾h당 13.5원)을 적용하면 3000억원이 넘는 요금이 추가로 발생한다. 올해 삼성전자의 3분기 영업이익이 2조4300억원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3분기 영업이익을 넘어서는 금액을 전기요금 납부에 써야할 상황이다.
삼성전자 다음으로 전력을 많이 사용하는 SK하이닉스 역시 인상분을 더하면 약 1조4000억원 가량의 전기요금을 내야할 것으로 보인다. SK하이닉스의 올해 3분기 누적 영업손실은 8조원을 넘어섰다. 수요 부진에 저조한 실적을 거두고 있는 가운데 전기요금마저 적잖은 부담으로 다가올 것으로 보인다.
한전 부채만 200조원…표심 고려한 조정에 재무구조 개선 요원
대규모 공장을 운영하는 철강, 시멘트, 자동차, 전자 업계 역시 비용 부담에 직면했다. 이에 일각에서 고정비 상승으로 인한 가격 경쟁력 확보를 위해 기업들이 제품 단가를 올리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내놓고 있다. 이는 곧 물가 상승을 자극할 수도 있는 상황이다.
최규종 대한상의 그린에너지지원센터장은 논평을 통해 "올해만 두 차례의 전기료 인상으로 기업 원가에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며 "전기료가 기업원가에 부담으로 작용하는 상황에서 산업용 전기요금만 추가로 올린 것은 산업경쟁력의 약화를 초래할 것으로 우려된다"고 밝히기도 했다.
산업부의 발언도 논란의 여지가 있다는 지적이다. 산업부는 지난달 미국 정부가 한국 철강사에 상계관세를 부과한 데 대해 국제무역법원(CIT) 제소하겠다고 발표했다. 미국이 저렴한 전기요금을 보조금을 간주했지만 국내 산업용 전기요금이 싸지 않다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날 강경성 산업부 2차관은 산업용 전기요금 인상 배경을 설명하며 "고압 전력을 많이 쓰는 대기업들이 그동안 값싼 전기를 대량으로 사용하는 혜택을 누려왔다"고 말했다. 이 발언이 향후 통상 분쟁 과정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고육지책과 같은 선별 인상에도 한전의 적자 해소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번 인상으로 한전은 올해 4000억원, 내년 2조8000억원의 추가 수익을 얻을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하지만 한전의 재무구조 개선에는 턱없이 부족한 조정이다. 한전은 현재 대규모 차입금으로 인한 하루 이자비용만 118억원이 나간다. 한달로 치면 3500억원이 넘는다. 누적 부채는 200조원이 넘어선 상황이다. 결국 표를 의식한 이번 조정안이 '언 발에 오줌누기'란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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