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생각] 정확하고 유려한 번역으로 만나는 서사시 ‘오디세이아’
오뒷세이아
호메로스 지음, 이준석 옮김 l 아카넷 l 3만2000원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는 고대 그리스인이 남긴 최고의 서사시이자 인류의 위대한 문화유산이다. 스위스 바젤대학에서 호메로스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이준석 방송대 교수가 20년 연구의 공력을 다해 두 작품을 완역했다. 지난 6월 먼저 ‘일리아스’가 출간된 데 이어 이번에 ‘오디세이아’가 한국어로 나왔다. 이로써 지난 40년 동안 통용돼 오던 ‘천병희 번역본’에 맞설 또 다른 호메로스 번역본이 완전한 위용을 갖추었다. 고전 번역의 새 국면이 열렸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성과다.
두 번역본의 차이는 뚜렷하다. 천병희 번역본이 한국어 독자를 염두에 두고 그리스어 원문을 과감하게 우리말로 끌어당겨 옮겼다면, 이준석 번역본은 호메로스 텍스트를 치밀하게 연구한 전공자답게 원문의 표현과 의미에 최대한 밀착해 문장을 옮겼다. 천병희 번역본이 가독성에 힘을 주었다면, 이준석 번역본은 정확성에 심혈을 기울였다. 동시에 이준석 번역본은 원문의 아름다움을 유려한 우리말 문장에 담아내려 공을 들인 흔적이 역력하다. 우리말 문장을 연마했기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앞서 나온 ‘일리아스’와 마찬가지로 이번에 나온 ‘오디세이아’에도 옮긴이의 상세한 해설이 수록돼 있는데, 통상의 해설과 달리 호메로스를 깊이 연구한 학자만이 할 수 있는 치밀한 텍스트 분석이 돋보인다. 호메로스의 작품이 서양 문화사에 끼친 영향이 워낙 크다 보니, 이 작품의 저자와 내용을 둘러싸고 그동안 수많은 논쟁이 벌어졌다. 먼저 이 서사시를 쓴 호메로스라는 사람이 한 사람인지 여러 사람인지를 두고 논란이 그치지 않았다. 옮긴이는 ‘오디세이아’ 전체를 호메로스라는 시인 한 사람이 썼다는 단일 저자 학설을 지지한다. 그 한 사람의 시인이 빼어난 구성력으로 시를 직조했기에 지금 우리가 보는 웅장한 건축물과도 같은 문학 작품이 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오디세이아’는 크게 보아 세 부분, 곧 ‘오디세우스의 아들 텔레마코스의 이야기’(1~4권), ‘오디세우스의 방랑과 귀향’(5~12권), ‘귀향 뒤 오디세우스의 복수’(13~24권)로 이루어져 있다. 이 세 부분 가운데 특히 첫 번째 ‘텔레마코스 이야기’를 두고, 왜 이 이야기가 서사시의 처음에 놓여야 하는지 의문을 품는 연구자들이 많았다. 이 이야기에서 텔레마코스는 ‘아버지 오디세우스의 귀향에 대해 알아보고 고귀한 명성을 얻는다’는 목표를 안고 필로스와 스파르타를 다녀온다. 하지만 텔레마코스의 여행은 언뜻 보기에 아버지의 귀향과도, 자신의 명성과도 상관이 없어 보인다. 아버지의 옛 전우 네스토르와 메넬라오스, 그리고 트로이전쟁에서 되찾아 다시 메넬라오스와 결합한 헬레네를 만나고 올 뿐이다.
옮긴이는 이 텍스트의 비현실적인 묘사를 실마리로 삼아 텔레마코스의 여행을 현실 세계가 아닌 신들의 세계를 다녀오는 여행으로 해석한다. 그렇다면 이 여행이 왜 텔레마코스에게 ‘고귀한 명성’을 안겨주는 여행이 되는가? 그 여행에서 만난 네스토르와 함께, 바다의 신 포세이돈에게 검은 소 100마리를 바치는 제사(헤카톰베)를 집전하여 아버지가 고향에 돌아올 수 있도록 해주기 때문이다.
오디세우스는 귀향 초기에 외눈박이 거인 폴리페모스의 눈을 찌르고 도망한 탓에 폴리페모스 아버지 포세이돈의 저주를 받아 10년이나 바다를 헤매게 됐던 것인데, 바로 이 저주를 거두어 달라고 포세이돈에게 희생 제물을 올리는 것이다. 이 헤카톰베 집전 직후 오디세우스는 고향 이타카에 돌아온다. 그렇다면 텔레마코스의 모험은 오디세우스 귀환을 막는 결정적인 장애물을 치워낸 영웅적인 활동이 된다. 호메로스는 오디세우스의 방랑과 무관해 보이는 텔레마코스의 모험을 앞에 놓아 포석을 깔고, 포세이돈이 노여움을 풀고 오디세우스의 귀향을 허락하는 대목을 뒤에 배치해 이 서사시를 정교한 문학적 건축물로 축조한 것이다.
고명섭 선임기자 micha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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