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동정담] 대통령이 뒤진 산자부 창고
윤석열 대통령이 며칠 전 대구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을 만나 '수출진흥회의' 얘기를 꺼냈다. 우리나라가 개도국 시절이던 1960~1970년대, 박정희 당시 대통령이 주도했던 바로 그 회의다. 윤 대통령은 "산자부 창고에서 자료들을 찾았다"고 말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어떻게 그걸 다 읽으셨냐"며 놀라워했다고 한다.
1965년 박정희 대통령은 "수출만이 살길"이라며 이 회의를 만들었고, 1979년까지 무려 180차례나 진행했다. 당시 1억달러도 안 됐던 수출 규모는 1977년 100억달러를 돌파하며 '한강의 기적'을 썼다. 신발이나 의류 등 경공업에서 조선·철강·기계 등 중화학공업으로 산업 구조를 바꾼 것도 그 회의를 통해서였다.
요즘 수출 시장이 반세기 전과 같을 수는 없다. 정부가 수출전략을 짜주던 시대는 막을 내렸다. 우리 기업들도 다국적 기업이 됐고 오히려 정부보다 더 많은 해외 정보, 네트워크를 갖고 있다. 그럼에도 윤 대통령이 산자부 창고를 뒤진 이유는 아마도 '절박함' 때문일 것이다. 관료들에게 뭐 하나라도 더 아이디어를 내보고, 기업들의 애로 사항을 하나라도 더 들어보라는 채근이다.
작년 10월부터 마이너스를 기록했던 우리 수출은 지난달 13개월 만에 플러스로 전환했다. 최대 수출 품목인 반도체도 89억달러 실적을 기록하며 메모리 감산 효과에 대한 기대를 높였다. 하지만 우상향 모멘텀이 지속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 미·중 갈등과 공급망 재편, 이스라엘 전쟁에 따른 고유가 기조, 글로벌 고금리 장기화, 중국·독일 경제 침체 등 수출시장 대외 여건이 뭐 하나 녹록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의 주력 수출 10개 품목 중 7개는 최근 10년 동안 경쟁력이 추락했다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
대통령이 '영업사원 1호'를 자처하며 산자부 창고까지 뒤지고 있는데, 정작 관료들은 언제까지 탁상공론하면서 지시만 받고 있을 셈인가. 해외 시장도 다변화됐고, 국가별로 주력 품목도 빠르게 변하고 있다. 작심하고 찾아보면 아직도 할 일은 많다.
[채수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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