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 줄이고 또 보형물? 한국 매부리코의 슬픔
콧등이 솟은 코를 마치 '매의 부리'처럼 생겼다고 '매부리코'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이 '매부리코'를 영어로 정확하게 옮기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습니다. hawk nose(매부리코)라는 표현도 있지만, hooked nose(갈고리 코), aquiline nose(독수리부리코), Roman nose(로마인 코), Jewish nose(유대인 코) 등이 모두 우리말로는'매부리코'라고 번역되기 때문입니다. 실상 이들은 조금씩 다른 의미입니다.
이 중 말 그대로 매의 부리를 뜻하는 hawk nose를 보면 콧등의 돌출보다는 코끝이 뾰족하고 아래로 긴 느낌을 표현하는 것 같습니다. 셜록홈즈 시리즈의 첫 작품인 '주홍색 연구(A Study in Scarlet)'에서 왓슨은 홈즈의 코가 thin hawk-like nose (좁은 매부리코)라고 묘사합니다. 시드니 파젯이 그린 공식 삽화를 보면 홈즈의 코는 우리가 생각하는 매부리코보다는 길고 뾰족한 느낌입니다.
특이하게도 Roman nose(로마인 코)나 Jewish nose(유대인 코)처럼 서로 다른 민족의 이름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사실 인종적 편견에 기반하고 있지만, 굳이 따지자면 '유대인 코'가 좀 더 아래로 휜 코를 표현하는 말입니다.
코펜하겐의 칼스버그 미술관( 글립토테크 Ny Carlsberg Glyptotek)에 전시된 서기 1세기경 고대 로마 시대의 흉상입니다.
이 흉상은 오랜 시간 동안 제정 로마시대의 유대인 출신 정치가 '플라비우스 요세푸스(Flavius Josephus)'라고 알려져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미술사학, 종교사, 심리학 등 여러 분야의 연구자였던 '로버트 아이슬러'가 1925년에 그렇게 추측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근거라는 것이 단지 '유대인 코처럼 생겨서'일 뿐이었습니다.
현재 공식적으로 이 흉상의 모델과 작가는 미상으로 남아있습니다.
서론을 길게 쓴 이유는, 우리가 '매부리코'라고 뭉뚱그려 부르지만, 사실은 다양한 형태의 코를 포함한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서입니다.
한국인의 코가 작다 보니, 큰 코의 다양한 형태에 대한 개념이 발달하지 않아 생긴 한국어의 한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반대로 고모, 이모, 숙모, 외숙모, 아주머니 등을 영어로는 aunt라고 옮길 수 밖에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한국인의 매부리코' 역시 서양인들과 상당한 차이를 보입니다. 주로 필요한 수술도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서양인의 매부리코는 주로 '큰 코'이므로 필요한 수술도 대개 코를 작게 만드는 '축소술'입니다.
한국인에서 '매부리코'라며 수술을 원하시는 경우는 대개 두 가지 형태입니다.
가장 흔한 형태는, 콧대가 높지 않고 코끝만 낮은 코입니다. 이런 경우 '가성(가짜) 매부리'라고 따로 분류하기도 합니다.
필요한 수술은 코끝을 높여주는 것입니다. 간혹 미간 부위를 함께 살짝 높여주는 것이 필요하기도 합니다.
그 다음이 콧대가 높게 솟은 매부리코입니다. 그런데, 한국인에서는 이렇게 콧대가 높은 경우도 대개 코끝은 낮습니다.
필요한 수술은 콧대를 낮춰주고 코끝을 높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한국인 매부리코는 사실 '콧등이 높은 코' 보다는 '코끝이 낮은 코'에 더 가까워 보입니다. 가장 중요한 수술 역시 코끝을 높이는 것입니다. 콧대가 높은 경우에 낮춰주는 수술이 간혹 필요한 정도입니다.
이렇게 보면, 한국인의 매부리코 수술에 '보형물'이 꼭 필요한 경우가 드뭅니다. 뼈를 깎아야 할 경우도 그리 흔치 않습니다. 그런데, 실상 시행되는 매부리코 수술들을 보면 '콧대를 깎고 보형물을 넣는' 방식들이 종종 사용되고 있습니다. 서양의학과 서양인 얼굴에 기반한 '축소술'과, 작은 한국인 코를 높이기 위해 흔히 시행되는 '보형물 삽입'의 '관성'이 합쳐진 형태인 셈입니다. 코를 깎아 줄인 후, 보형물을 넣어 다시 높이는 씁쓸한 상황입니다.
박준규 원장 (parks@kor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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