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통한 ‘이장한의 R&D 뚝심’

진성기 2023. 11. 9.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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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한 종근당 회장

"전력을 다해 연구개발(R&D)에 매달려온 만큼 결실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기술수출에 너무 조급해 하지 말자. 노바티스와의 기술수출 협상이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는다면 우리가 상품화의 전 과정을 맡아 진행할 수도 있다."

최근 다국적 제약사 노바티스에 신약 기술 이전 계약을 체결한 종근당. 기술수출 협상이 이어지는 동안 이장한 종근당 회장은 임원진에게 이같이 주문했다. 혹여 협상이 깨지는 한이 있더라도 자체 신약 기술에 대한 자부심을 놓지 말라는 메시지였다.

노바티스에 1조7000억 기술수출

그런 자부심은 마침내 지난 6일 '13억500만달러(약 1조7000억원) 기술수출 계약'이라는 큰 성과로 돌아왔다. 혁신 신약 개발을 주창해온 종근당으로선 20년, 30년에 걸친 인고의 세월을 일부나마 보상받는 순간이었다.

사실 그간 종근당은 기술수출의 최일선에 서지는 못했다. 그 자리는 유한양행과 한미약품 등 몇몇 경쟁사의 몫이었다. 이들은 수차례 대규모 기술수출에 성공하며 신문 1면을 장식하곤 했다.

유한양행은 지난 2018년 폐암치료 신물질인 레이저티닙을 얀센에 1조4000억원 규모로 기술 수출하는 성과를 올렸다. 이 신물질은 국내에서 비소세포폐암치료제(상품명 렉라자)로 품목허가를 받았고, 얀센은 이 물질로 글로벌 임상시험을 진행 중이다.

한미약품은 당뇨치료제와 항암제 등을 사노피와 제넨텍, 얀센 등에 조 단위 금액으로 기술수출한 바 있다.

대기업 계열 중엔 일찍이 SK바이오팜이 뇌전증 치료제 세노바메이트를 스위스 등에 기술이전했고, 연구개발 경력이 일천한 알테오젠, 레고켐바이오, 에이비엘바이오 등도 글로벌 제약사에 기술이전해 이름을 알렸다.

종근당도 몇차례 기술수출 경험이 있지만 수천억원~1조원을 넘나들 정도가 아니었기에 적극 내세우진 못했다.

경쟁사는 물론 중소 바이오기업들도 잭팟을 터뜨리니 종근당 경영진과 연구개발 임원들은 다급해졌다. 빨리 성과를 내놔야 한다는 마음이 앞서게 됐다. 오너인 이장한 회장은 더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이 회장은 '조급하면 될 일도 안된다. 우리 기술도 결국엔 빛을 볼 것이다'는 단단한 신념을 내보여 중심을 잡았다는 게 종근당 관계자의 전언이다.

매출 대비 연구개발비 매년 12% 안팎

연구개발을 향한 이 회장의 집념은 종근당 사업보고서에 기재된 숫자에서 잘 드러난다.

지난 2019년 1380억원을 연구개발에 투자한 종근당은 2020년 1496억원, 2021년 1634억원, 지난해에는 1813억원으로 투자비를 늘려왔다. 매출액 대비 연구개발비 비중은 매년 12% 안팎을 유지했다. 국내 제약사 가운데 최고 수준이다.

가장 중요한 자산인 인재 확보에도 적극적이다. 매년 연구개발 인력을 늘려와 현재 563명이 용인 효종연구소와 본사 제품개발본부, 신약개발본부에 자리를 잡고 있다.

이런 대규모 투자를 바탕으로 종근당은 현재 5개 신약 후보물질을 임상시험 혹은 품목허가 단계에 올려놨다. 이번에 노바티스에 기술이전한 'CKD-510(샤르코마리투스병)'을 비롯해 'CKD-508(이상지지혈증)' 'CKD-512(암)' 'CKD-943(요독성소양증)' 'CKD-702(암)' 등이다.

10년 전쯤 연구를 시작해 포기하지 않고 이끌어온 자체 프로젝트들이다. 이 가운데 'CKD-702'는 임상 1상시험을 마친 바이오 신약물질로, 비소세포폐암을 겨냥한 이중항체 항암제로 개발되고 있다.

최대 1조7000억원 기술이전 수익을 가져올 'CKD-510'은 희귀질환인 샤르코마리투스병(CMT) 치료물질이지만 심방세동 등에도 효과를 보여 확장성이 큰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노바티스는 이런 점도 감안해 낙점한 것으로 보인다.

종근당은 이미 바이오시밀러도 갖고 있다. 빈혈치료제 '네스벨(CKD-11101)'과 황반변성치료제 '루센비에스(CKD-701)'를 2018년과 지난해 각각 상품화했다. 개량신약도 10여개 개발해 상품화했거나 임상시험 중이다.

앞서 종근당은 2003년 항암제 '캄토벨'과 2013년 당뇨병치료제 '듀비에'를 개발해 일찌감치 국산 신약 목록에 이름을 올려 놓은 바 있다.

종근당 연구원

독자 기술에 자부심... '글로벌 톱50' 진입 급선무

이렇게 다양한 연구개발 파이프라인을 다져온 종근당 임직원들이 R&D와 관련해 내심 자긍심을 느끼는 대목이 있다. 면역억제제 시장에서 큰 몫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면역억제제는 장기이식 거부 반응 환자에게 주로 쓰이는데, 의료현장에서 안전성 요구가 까다롭고 기술개발 장벽도 높다고 알려져 있다. 이 때문에 1990년대까지 면역억제제 시장은 다국적 제약사들 차지였다.

이런 상황에서 종근당은 90년대 중반 야생곰팡이에서 추출한 균주를 이용해 사이클로스포린 성분의 면역억제제 '사이폴엔'을 개발했다. 이어 2003년에는 후속 제품 '타크로벨'을 내놨다. 이렇게 자체 제품을 내놓은 이후 지금까지 국내 면역억제제 시장에서 다국적 제약사와 겨루는 회사는 종근당이 거의 유일하다.

실제로 종근당은 지난해 타크로벨(436억원)과 사이폴엔(302억원)을 앞세워 면역억제제 시장에서 1000억원이 넘는 매출을 올렸다. 회사 전체 매출의 7% 이상을 면역억제제가 책임진 것. 독자 개발한 기술이 지난 20년간 시장을 지켜내고, 회사 성장에도 크게 기여하고 있으니 종근당에겐 효자 중에 효자가 아닐 수 없다.

독자 기술에 대한 종근당의 이런 자부심은 이번 기술수출로 그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았다. 기술력을 널리 알렸고, 임직원들 자긍심도 커졌을 것이다. 한 단계 더 도약할 수 있는 발판에 발을 올려놓은 모양새다.

하지만 글로벌 제약바이오 산업을 보자면 아직 갈 길이 멀다. 여전히 변방에 머물러 있다. 그저 먼발치에서 존슨앤드존슨, 노바티스, 화이자, 릴리, 노보노디스크 등 선두권 기업들을 바라만 보는 형국이다.

이젠 우리도 '글로벌 톱 50위 기업'에 발을 들여놓아야 한다. '혁신 신약(First-In-Class)'도 줄줄이 내놔야 한다. 이장한 회장을 비롯한 국내 제약바이오 선두 기업 수장들이 풀어야 할 과제다. 반도체, 자동차, 조선산업이 해낸 일을 제약바이오가 못할 이유가 없다.

진성기 기자 (jsg0366@kor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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