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이 현장 실험 안하면 돈 잃는다”

성유진 기자 2023. 11. 9.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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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LY BIZ] 현장 실험 경제학의 대가, 존 리스트 시카고大 교수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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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리스트 미국 시카고대 경제학과 교수는 6년 전 우버를 이용했다가 낭패를 봤다. 중요한 기조연설 자리에 가려고 우버를 호출했지만 앱이 기사에게 잘못된 경로를 알려주는 바람에 지각한 것이다. 당시 우버에 경영 자문을 하던 수석경제학자였던 리스트 교수는 “고객에게 피해가 발생했을 때 사과할 방법을 연구해 보자”고 경영진에 제안했다. 실제 데이터를 보니 우버를 이용했다가 불쾌한 경험을 한 고객은 이후 90일간 다른 고객보다 5~10% 적게 이용한다는 점이 확인됐기 때문이다.

리스트 교수는 도착 지연을 경험한 고객 가운데 일부는 사과문만 보내고 일부는 사과문과 함께 5달러 쿠폰을 건넸다. 그랬더니 5달러 쿠폰을 받은 경우에만 3개월 후에도 이용률이 떨어지지 않았다. 다만 같은 문제로 세 번 이상 사과·보상이 이뤄지면 오히려 역효과를 냈다. 우버는 이런 실험 결과를 토대로 일부 서비스에서 지연 보상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리스트 교수는 실생활에서 실험을 진행하고 결과를 분석해 의사 결정을 위한 최적의 결론을 탐색하는 현장 실험 경제학의 대가로 꼽힌다. 2016년부터 그는 우버, 리프트, 월마트에서 연이어 수석경제학자로서 활동하며 경영진에 조언을 하고 있다. 최근 연세대 조락교경제학상 수상을 위해 방한한 리스트 교수는 WEEKLY BIZ와 만나 “고객을 대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인지, 조직을 더욱 현명하게 이끄는 방법은 무엇인지 현장 실험을 통해 배울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진엽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가 인터뷰를 도왔다.

연세대 조락교경제학상 수상을 위해 방한한 존 리스트 시카고대 교수는 WEEKLY BIZ 인터뷰에서 "기업이 실험하지 않는 날은 돈을 잃는 하루와 같다"며 "고객의 요구를 파악할 때 현장 실험 경제학이 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태경 기자

◇현장 실험 해야 이익 늘릴 수 있어

리스트 교수는 “어느 조직이든 현장 실험을 실시해 정보를 얻어야 더욱 나은 의사 결정을 내릴 수 있다”며 “기업이 실험하지 않는 날은 돈을 잃는 하루와 같다”고 했다. 현장에서 실험을 통해 갖가지 데이터를 확인해야 수익을 끌어올릴 수 있다는 의미다. 그는 현장 실험 경험이 풍부하다. 2013년 항공사 버진애틀랜틱에선 조종사가 연료 사용을 줄이도록 유도하는 방안을 실험했고, 2019년 리프트에선 회사가 가장 큰 이익을 낼 수 있는 최적의 멤버십 회원비·혜택을 연구했다. 리프트는 이를 토대로 ‘리프트 핑크’라는 멤버십 제도를 내놨다.

리스트 교수는 특히 IT 발달로 기업이 각종 데이터를 쌓고 분석할 수 있게 되면서 현장 실험 효용성이 더 올라갔다고 본다. 그는 “우버 사무실엔 ‘데이터는 우리의 DNA’라는 슬로건이 붙어 있다”며 “이미 우버 같은 기업에선 시카고대보다 많은 실험과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래픽=조선디자인랩

리스트 교수는 사람의 행동을 바꾸는 인센티브 설계에 관심이 많다고 했다. 2008년 중국 전자 제품 회사 완리다그룹 의뢰를 받고 진행한 실험을 통해 얻은 ‘환수(還收) 접근법’이 대표적인 사례다. 직원 생산성을 높일 인센티브 제도를 제안해 달라는 요청에 리스트 교수는 ‘생산량 목표 달성 시 보너스를 받는 그룹’과 ‘보상을 먼저 받고 미달성 시 거둬가는 그룹’으로 나눠 실험했다. 그랬더니 후자의 생산성이 더 높은 것으로 확인됐다. 리스트 교수는 “내가 창간한 논문 저널에서도 편집자들에게 연초 2만5000달러를 현금으로 주는 환수 인센티브를 사용해 봤다”며 “논문 게재 결정을 40일 안에 내리지 않으면 논문당 500달러를 되돌려줘야 한다고 했더니 검토 속도가 빨라졌다”고 했다.

◇성공의 핵심 요인이 확장성 있는가

리스트 교수는 “실험에서 좋은 결과가 나왔더라도 반드시 확장성을 가진 아이디어는 아닐 수도 있다”고 했다. 테스트 단계에선 반응이 좋았더라도 이를 확장하는 과정에서 실패하는 경우도 있으니 유의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기업이나 정부, 단체가 이런 오판을 피하는 방법을 담은 책 ‘스케일의 법칙’을 작년 펴내기도 했다.

리스트 교수는 오판의 대표 사례로 맥도널드를 꼽았다. 1996년 맥도널드는 ‘아치 디럭스’라는 고급 개념의 새로운 햄버거를 만들고, 평가 집단에서 긍정적인 반응을 얻었다. 그리고서 2억달러를 투자해 대대적인 마케팅을 벌였지만 실패했고 당시 사장이 책임을 지고 사퇴해야 했다. 리스트 교수는 평가 집단을 평소 맥도널드를 좋아하는 사람들로 구성한 데서 실패 원인을 찾았다. 그는 “나라면 여러 소규모 시장에 제품을 출시하고 다양한 가격 수준과 반응을 탐색해 봤을 것”이라고 했다.

성공 핵심 요인이 얼마나 확장 가능한지 면밀하게 파악하라고 했다. 예컨대 어떤 식당이 잘되는 요인이 조리법이나 재료에 있다면 체인점을 내 규모를 넓힐 수 있지만, 특정 요리사의 실력 덕분이라면 전국적인 확장이 어렵다는 것이다. 리스트 교수는 이런 결론을 실험을 거쳐 얻었다고 했다. 그는 2010년부터 4년간 억만장자 켄 그리핀 후원을 받아 시카고에서 유아교육 센터와 학부모 아카데미를 운영해 본 적 있다고 했다. 리스트 교수는 “성공을 가르는 핵심 요인이 훌륭한 교사의 존재 유무였기 때문에 확장에 어려움이 있었다”고 했다.

◇“경제학자, 기업에 더 많이 진출해야”

최근 미국 대기업들은 경제학자 채용을 늘리는 추세다. 막대한 양의 데이터를 분석해 새로운 경영 전략을 짜거나 수익을 극대화하는 가격 정책을 수립하는 일이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아마존에만 경제학자 400여 명이 정규직으로 근무하고 있고, 우버 같은 플랫폼 기업도 경제학자들을 대거 끌어모으고 있다. 월마트에도 리스트 교수를 포함해 경제학자 30여 명이 함께 근무하고 있다. 리스트 교수는 “학자들이 기업이나 정부를 경험하면 더 나은 연구자가 될 수 있고, 기업 역시 (새로운 제품이나 해결책을 만드는 데) 경제학자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며 “경제학자들이 기업에 더 많이 진출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장 실험 경제학이란

실험경제학의 한 갈래다. 실제 현실에서 실험으로 얻은 자료를 수집·연구하는 현장 실험 방법론을 경제학에 적용한다. 정부 정책이나 기업의 제품·서비스 효과를 확인하는 데 활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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