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 56% 인상에도 방글라데시 의류 노동자 시위 확산...피격 사망까지
고질적인 저임금에 시달려온 방글라데시 의류 노동자들의 저항이 확산되고 있다. 당국은 노동자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 월 최저임금을 56% 인상한다고 밝혔으나, 현지 노동자들은 살인적인 물가 인상률 등을 감안하면 턱 없이 모자라다는 입장이다. 시위 과정에서 경찰과 충돌이 빚어지면서 사망자까지 잇따라 발생하고 있다.
9일(현지시간) AFP통신 등에 따르면 방글라데시 의류 노동자 400여명은 전날 수도 다카 인근에 있는 의류산업 중심지 가지푸르에서 시위를 벌였다. 이 과정에서 23세 여성 노동자가 머리에 총상을 입고 병원에 이송되던 도중 사망했다.
사망한 여성의 남편인 모함마드 자말은 언론에 “경찰이 시위 참가자를 향해 총을 발사했다”며 “6~7명이 총을 맞고 부상했다”고 전했다. 경찰은 자말 아내의 사망을 확인하면서도 자세한 경위는 밝히지 않았다. 경찰 측은 이날 가지푸르의 다른 곳에서도 수천명의 군중이 고속도로를 막고 집회를 벌였으며, 이 과정에서 최소 5명의 경찰관을 다치게했다고 밝혔다.
이날 시위는 정부가 지난 7일 발표한 최저임금위원회 합의에 반대하기 위해 열렸다. 정부 측은 현재 8000타카(약 9만5000원)인 의류 노동자의 월 최저임금을 1만2500타카(약 15만원)로 56.25% 올려 다음달부터 적용하겠다고 발표했다. 월 최저임금은 앞으로 매년 5%씩 인상될 예정이다.
하지만 노동자들은 이번 임금 인상 폭이 현재 9.5%에 달하는 물가 상승분을 감안하면 턱없이 적은 규모라며, 월 최저임금을 현재의 약 세 배인 2만3000타카(약 27만원)로 올려달라고 반발했다. 노조 측은 향후 시위를 본격적으로 전개하겠다고 당국에 경고했다. 이에 다카 외곽 산업도시들에서는 경찰 경비가 강화된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합의가 이뤄지기 전에도 현지에선 격렬한 시위가 벌어져 노동자 2명이 숨지기도 했다. 최저임금위원인 업체 대표와 노조 대표, 임금 전문가가 정부에 의해 임명됐기에 공정한 판단이 나오기 힘들 것이란 우려 때문이었다.
방글라데시의 의류 산업은 국가의 연간 수출액 550억달러(약 72조원)에서 약 85%의 비중을 차지한다. 고질적인 저임금은 방글라데시가 의류 산업을 발전시키는데 있어 가장 큰 무기로 작용했다. 현재 방글라데시에는 유명 글로벌 브랜드 리바이스, 자라, H&M 등에 납품하기 위한 약 4000개의 공장이 가동되고 있으며 여기에 고용된 방글라데시 노동자는 약 400만명에 달한다.
2013년 의류공장 ‘라나 플라자’ 붕괴 사고로 1120여명의 노동자가 한꺼번에 숨지는 참사가 일어난 후 방글라데시 의류 노동자의 열악한 근무 환경이 수면 위로 떠올랐지만, 동남아시아 저임금 노동을 동력 삼아 굴러가는 ‘패스트 패션’ 산업 구조 탓에 이곳 노동자들의 처지는 크게 달라지지 않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전기용품점을 폐업한 후 의류 노동자가 된 소헬 이슬람(26)은 뉴욕타임스에 “최대한 초과근무를 해서 한달에 1만1000타카 정도를 벌고 있다”면서 “2살 아들을 포함한 가족 3명이 고기를 2주에 한번만 먹고 있지만, 여전히 생활비가 모자라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일하는 형제가 송금해 주는 돈에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미국 국무부는 이날 성명을 내고 노동자들과 가족이 직면한 경제적 압박이 해소되도록 최저임금위원회가 임금인상 문제를 재논의하라고 촉구했다. 글로벌 노동인권단체인 ‘클린클로스캠페인’(CCC)은 방글라데시에 의류제품 하청을 준 국제 브랜드 업체들이 제 역할을 하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박용하 기자 yong14h@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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