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로 소극장의 전설 ‘학전’, 내년 33살 생일에 문 닫는다
서울 대학로 소극장의 터줏대감인 ‘학전(學田)’이 내년 개관 33주년 기념일에 문을 닫는다. 민중가요 ‘아침이슬’ ‘상록수’를 부른 가수 김민기가 세운 대학로의 상징이 역사 속으로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학전의 김성민 총무팀장은 9일 기자와 통화하며 “경제적인 어려움을 버티며 지내다가 김민기 대표의 위암 투병 문제가 겹치면서 내년에 문을 닫기로 결정했다”며 “학전의 개관일인 3월15일에 맞춰 폐관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학전은 가수 김민기가 사비를 털어 1991년 3월15일 개관한 소극장이다. 연극, 뮤지컬, 콘서트 등 다양한 공연을 열며 수많은 예술인들의 디딤돌이자 버팀목이 됐다. 전설적 가수 고(故) 김광석은 1993년 자신의 노래 생활 10년을 결산하는 의미에서 한 달간 장기 공연을 열었다. 동물원, 들국화, 안치환, 나윤선, 전인권, 윤도현 등도 학전 무대에 올랐다.
김민기가 1994년 ‘극단 학전’을 창단하고 초연한 뮤지컬 <지하철 1호선>은 학전을 대표하는 작품이다. 볼커 루드비히의 독일 원작을 김민기가 번안해 연출했다. 이 작품에 출연했던 설경구·김윤석·황정민·장현성·조승우는 ‘학전 독수리 오형제’로 불렸다. 200석 미만 소극장 공연인데도 누적 관객이 약 75만명에 달하며 1990년대 대학로 소극장 전성기를 이끌었다.
학전은 다른 공연장에서 보기 어려운 어린이·청소년극 창작에도 힘썼다. <우리는 친구다> <무적의 삼총사> <슈퍼맨처럼> 등을 무대에 올렸다.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 사운드트랙(OST) 작곡가로 유명한 정재일이 학전의 음악감독으로 활동해왔다.
학전은 1991년 개관한 극장을 ‘학전블루소극장’으로 두고 1996년 ‘학전그린소극장’까지 열면서 전성기를 맞았다. 하지만 2010년 이후 공연시장의 중심이 대극장 뮤지컬로 바뀌면서 대학로 소극장 관객은 점점 줄어들었다. 2013년 그린소극장이 먼저 폐관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심각한 재정적 타격을 입은 데다 최근 김민기가 위암 진단을 받으면서 학전은 블루소극장까지 폐관을 결정했다.
학전의 남은 공연은 세 편이다. 10일부터 다음달 31일까지 뮤지컬 <지하철 1호선>, 내년 1월6일 음악행사 ‘김광석 노래상 경연대회’, 내년 1~2월 어린이극 <고추장 떡볶이>까지 마무리하면 문을 닫을 예정이다. 일각에선 서울 명동 삼일로창고극장처럼 서울시나 공공기관이 나서 학전을 보전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삼일로창고극장은 1975년 개관해 2015년 폐관했지만 서울문화재단이 운영을 맡아 2018년 재개관했다.
김성민 팀장은 1993년 학전의 매표소 아르바이트로 시작해 <지하철 1호선> 초연 때부터 학전 스태프로 참여했다. 김 팀장은 “유명 배우가 출연하거나 자본이 들어오지 않는 소극장은 버티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학전 사람들이 모두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허진무 기자 imagin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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