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구·박근형 "마지막 작품이 될지도 모르는데…놓치고 싶지 않았다"
신구·박근형 첫 연극 호흡…박정자 파격 배역
[서울=뉴시스] 강진아 기자 = 앙상한 나무 아래, 에스트라공과 블라디미르는 '고도'를 하염없이 기다린다. 언제 올지 모르는 그 존재를 기다리며 두 방랑자가 보낸 세월은 50여년. 여든이 넘은 신구와 박근형이 긴 기다림 끝에 만난 작품도 바로 '고도를 기다리며'다.
신구는 9일 서울 종로구 예술가의집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오래전부터 해보고 싶은 작품이었는데, 기회가 없었다"며 "마지막 작품이 될지도 모르는데 이걸 놓치면 평생 못하겠다 싶었다. 그래서 과욕을 부렸다. 부단히 노력하고 있는데, 열심히 해보겠다"고 말했다.
노벨문학상을 받은 아일랜드 출신 극작가 사무엘 베케트의 대표작이다. 인간의 삶을 '기다림'으로 정의하고 그 속에 나타난 인간 존재의 부조리성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오는 12월19일 국립극장 달오름에서 막을 올린다.
87세의 신구, 83세의 박근형, 81세의 박정자까지 연극계를 대표하는 원로 배우들이 두 달간 단일 배역으로 출연한다. 이들의 연기 경력을 합치면 180년이 넘는다. 신구는 인간의 육체적·탐욕적인 면을 상징하는 감정적인 인물 에스트라공(고고), 박근형은 인간의 지성을 상징하는 철학적인 '블라디미르(디디)', 박정자는 포조의 짐꾼이자 노예인 '럭키' 역으로 나선다.
신구는 "나이로 봐서 제가 가장 부담스러울 것"이라며 "사실 역할을 맡는 데 상당히 주저했다. 그 많은 대사를 다 기억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그래도 마지막 기회일지 모르고 해보고 싶었던 공연인 만큼 내 힘을 다 토해내 작품에 쏟아붓는다면 극복해 낼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고 밝혔다.
박근형도 연극학도 시절부터 마음에 품었던 작품이라고 했다. 그는 "어떤 역할이든 꼭 하고 싶었던 연극"이라며 "젊었을 때 기회를 잡았어야 했는데 다 놓쳤다. 열망은 있었지만, 거의 잊어버리고 살아왔다. 매년 한편씩 연극을 하겠다는 약속을 못 지키고 최근 7년에 한번씩 연극을 해왔는데 이번에 운 좋게 얻어걸렸다"고 웃었다.
이어 "저는 사실주의 연기를 표방해 온 배우였지만 연극에 더 심취하고 싶은 욕망이 있었다. 이 작품은 부조리극인 만큼 제가 추구해온 연기술과는 다르다. 자유분방하게 표현하고자 한다"며 "두 선생님 덕분에 걱정은 하나도 안 된다. 좋은 작품으로 회자가 많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tvN 예능 '꽃보다 할배' 시리즈에 함께 출연하기도 했던 두 사람이 작품으로 만난 건 처음이다. 박근형은 "드라마나 연극을 같이 한 일이 없다. '꽃할배'를 하면서 '구야 형'으로 불리기도 했지만 진솔하게 사는 분이라고 생각했다"며 "이번에 같이 하면서도 연출이 제시한 부분에 대해 누구도 반대 목소리를 내기보다 틀리든 맞든 다 쏟아내면서 합을 맞추고 있다"고 전했다.
인생의 황혼기에 있는 이들에게 '고도'는 어떤 의미로 다가올까. 신구는 "형체가 없는 '고도'를 하염없이 기다리며 변화 없는 생활을 계속하는 두 방랑자의 모습은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의 모습"이라며 "그게 신이든, 자유든, 희망이든 뭔진 모르겠다. 하지만 늘 꽉 채워지지 않는 삶 속에 내일은 그것이 채워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와 기다림으로 살고 있지 않나 싶다"고 말했다.
박정자는 '고도를 기다리며' 소식에 '럭키' 역을 자신이 하겠다고 손을 번쩍 들었다. 목줄에 매여 포조에게 노예처럼 끌려다니는 역할로, 역대 남자 배우들이 주로 출연해 여자 배우가 맡는 것은 이례적이다.
그는 "많은 배우가 이 작품을 거쳐 갔고, 무대를 바라보면 늘 경이로웠다. 럭키 역은 누구도 저를 캐스팅하지 않았는데 제가 먼저 손을 들었다. 배우는 남녀 구별이 없다. 한 인간의 이야기를 할 뿐이다. 항상 저희는 자유롭다"고 강조했다.
럭키의 주인이자 권위적인 '포조' 역은 김학철이 맡는다. 그는 "64년 만에 드디어 연극계 막내가 돼 황홀하다. 포조는 저의 운명이었다. 이번에 선생님들 캐스팅 소식을 듣고 저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았다"며 "박정자 선생님께 처음 밧줄을 목에 걸어드렸을 땐 송구해서 90도로 인사하며 죄송하다고 했는데, 이젠 제 노예 같다. 거침없이 하겠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고도를 기다리며'는 1953년 파리에서 처음 공연했다. 한국에선 극단 산울림의 임영웅 연출이 1969년 초연해 50년간 약 1500회 공연을 올리며 관객들의 큰 사랑을 받아왔다. 이번 공연은 새 프로덕션으로 연극 '라스트 세션', '러브레터' 등의 오경택이 연출한다.
오 연출은 "'연출의 정석' 같은 임영웅 선생님의 프로덕션을 보며 정말 많이 배웠다. 상당한 부담도 있지만 의도적으로 새롭게 해야 한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며 "연극은 배우의 예술이다. 선생님들을 모시고 대본에 충실히 따르면 다른 느낌의 작품이 나오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다. 스스로 선택한 행복한 고통을 즐기고 있다"고 밝혔다.
☞공감언론 뉴시스 akang@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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