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용 포퓰리즘 정책이 ‘민생경제’인가? [세상읽기]

한겨레 2023. 11. 9.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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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일 서울 마포구 한 카페에서 열린 제21차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 주부, 회사원, 소상공인 등 참석자들과 대화하고 있다. 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세상읽기] 박복영ㅣ경희대 교수·전 청와대 경제보좌관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패배 이후 대통령은 민생경제로 정책을 전환하라고 지시했다. 모든 부처는 절규하는 국민의 목소리를 직접 듣고 정책을 마련하라고 했다. ‘민생경제’가 어떤 모습으로 나올지 궁금했다. 맨 먼저 각 부처는 품목별 물가관리에 나섰다. 재고를 방출하고 수입관세를 인하하고 현장지도를 강화한단다. 주세 인하를 검토한다는 소리도 들린다. 1년간 준비해오던 일회용품 사용 제한은 시행을 코앞에 두고 없던 일이 되었다. 이런 흐름의 화룡점정은 김포시의 서울시 편입 검토와 공매도 금지였다. ‘민생경제’는 결국 다름 아닌 ‘총선용 포퓰리즘 정책의 집합’이었다.

거의 모든 부처는 품목별 물가 잡기에 나섰다. 차관별로 책임 품목을 지정한다는 소리도 들린다. 엠비(MB) 시대, 아니 더 거슬러 올라가 박정희 시대부터 사용했지만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고 판명 난 방법이다. 대부분의 나라가 사용하는 금리 인상이란 정공법을 쓰지 않은 것이 문제였다. 금리는 일찍 동결하고 대출 규제를 풀자 가계와 자영업자 부채는 빠르게 늘었다. 또 원-달러 환율은 1400원대에 이를 정도로 상승해 수입물가 부담은 더 커졌다. 환율 상승을 방어하느라 외환보유고가 크게 줄어들었다. 원가가 오르면 시간이 지나면서 부품 가격과 최종재 가격이 오르고, 다시 농산물 가격, 인건비, 서비스 가격이 올라간다. 국제유가 인상이 끝났다고 금리 인상을 끝낼 일이 아니었다. 고금리로 가계와 기업의 부담이 증가한다고? 부담을 줘서 부채를 줄이도록 하는 것이 금리 인상의 목적이다.

느닷없는 공매도 금지는 더 놀랍다. 금융위기로 시장이 공포에 질렸을 때는 공매도 일시 중지로 시장 급락을 막는다지만, 이번에는 그럴 이유가 전혀 없었다. 정책당국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을 들먹이지만, 금융시장 충격은 거의 없었다. 지지도 하락과 총선을 앞두고 개미 투자자들의 요구를 받아들인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경제 전문가들 절대다수가 같은 생각일 것이다. 공매도를 금지하면 잠시 주가가 오를지 모르지만, 장기적으로는 오히려 가격 변동이 커지고 일부 종목의 비정상적 상승이 훨씬 더 자주 나타난다. 공매도는 이런 가격 급등이 비정상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주식 매도를 늘릴 수 있도록 해서 가격을 안정시키는 기능을 한다. 공매도가 중지되면 주가 등락이 심해져 주식시장이 투기판에 가까워진다. 수많은 학술논문에서 확인된 사실이다. 결국 대부분의 개미 투자자는 손해 볼 가능성이 크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중 공매도를 전면 금지한 나라는 한국과 튀르키예뿐이라고 한다. 튀르키예가 어떤 나라인가?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은 코로나 방역 해제 뒤 세계적으로 물가가 급등할 때, 고금리는 죄악이며 고금리가 오히려 인플레이션을 부추긴다는 엉뚱한 논리로 다른 나라와 정반대로 금리를 내려서 비웃음거리가 되었다. 그러고 대통령 선거가 끝난 다음에는 금리를 큰 폭으로 올렸다. 절정의 포퓰리즘이었다.

공매도 금지로 한국 경제 수준이 에르도안이 집권하는 튀르키예 수준으로 떨어진 느낌이다. 공매도의 가격 안정 효과, 그리고 금리 인상의 물가 안정 효과는 오랜 시간에 걸쳐 확인된 공리와 같은 것이다. 상황에 따라 정책을 미세 조정할 수 있겠지만 정부가 이런 공리를 부정하고 반대로 움직이는 것은 파괴적이다. 시장은 불안해지고 국제사회의 비웃음거리가 되고 무엇보다 지금까지 쌓은 신뢰를 잃는다. 이제 투자자들은 우리 자본시장은 언제든지 공매도가 금지될 수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후진국 금융시장이 되어 버린 것이다. 지난 1년간 금융위원회는 자본시장을 투명하게 만들기 위해서 여러 바람직한 정책들을 도입했다. 그런데 이 한방으로 물거품이 되었다.

결국 지지율 하락과 총선 대응이라는 정치적 요구 앞에 합리성이 무릎을 꿇은 것이다. 여의도는 총선을 앞두고 이런 요구를 쏟아낼 것이다. 서울 주변 도시의 서울 편입 문제는 계속 검토될 것이고, 1기 신도시 재건축 문제도 또 도마에 오를 것이다. 부동산 가격을 들썩이게 해서 알량한 표를 얻을지 모르지만, 가계부채는 더 쌓이고 자산 불평등과 저출생은 더 심화할 것이다. 이런 여의도발 득표용 압력은 누가 막아야 하는가? 대통령뿐이다. 정치와 행정에 모두 발을 담그고 있는 대통령은 이 포퓰리즘적 요구를 진두지휘하는 사람이 아니라 막아야 하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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