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무줄' 외부평가에도 무방비 "이해관계자 책임 강화해야"[수상한 스팩③]
스팩 이해관계자들, 합병 적정성보단 성사에 초점
발기인 수익 쏠쏠...주주 보호는 뒷전 "제도 보완 서둘러야"
스팩 합병 상장사에 대한 고평가 논란은 지난 2009년 스팩 제도가 도입된 이후 늘 반복된 이슈다. 공모를 거칠 필요가 없어 이해관계자 간 합의에 따라 기업가치를 책정될 수 있는 구조라서다.
외부 평가기관의 평가와 각사 주주총회가 합병의 합리성을 가늠할 절차가 있지만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사실상 유명무실한 경우가 대다수다. 한국거래소와 금융감독원 등 당국의 심사는 물론 회계법인과 증권사, 발기인 등이 짊어지는 책임을 한층 무겁게 만들어야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합병이 최우선 목표, 적정 기업가치는 '뒷전'
8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스팩 합병을 성사하게 시키는 가장 핵심 작업은 예비 상장사와 스팩 기관투자자(발기인), 증권사 간 합의다. 비교기업을 찾아 시장의 평가를 받는 공모 절차를 거치지 않기 때문이다.
예비 상장사의 경우 상장사 지위를 획득하는 게 최우선 과제다. 일반 IPO로 증시 입성이 어려운 기업이라면 더욱 간절하다. 추가로 기업가치가 높게 평가될수록 상장 이후 자본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하기 유리하다.
스팩 기관투자가는 합병을 통한 차익실현에 우선 순위에 둔다. 스팩은 청산 시기기 되면 원금에 소정의 이자를 되돌려 받는다. 스팩에 투자한 기관의 경우 스팩 합병 상장사의 주가가 상장 이후 일정 기간에 2000원만 상회하면 된다. 별도 보호예수도 필요하지 않기에 중장기적 사업계획보단 단기 차익이 몰두하기 마련이다.
스팩 발기인으로 참여하는 증권사 및 기관은 합병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수익이 쏠쏠하다. 스팩 발기인은 스팩 공모가의 절반 가격에 스팩 CB를 확보한다. 합병 이후 주가가 1000원 이상이면 이익을 얻을 수 있다.
증권사는 합병 성사할 때 추가 이익도 얻을 수 있다. 증권사가 스팩 합병으로 벌어들일 수 있는 수익은 인수 수수료, 합병 자문 수수료, CB 등 세 가지다. 이중 인수수수료는 상장할 때 절반을, 합병이 성사된 뒤 나머지 절반을 받는다. 자문 수수료는 합병 성사할 때 증권사와 발기인이 협의를 통해 나눠 갖는다.
결국 예비 상장사, 스팩 기관투자가, 증권사 등 주요 이해관계자는 기업가치의 적정성보단 합병 성사란 공통 목표를 갖게 된다.
회계법인 평가·주주총회 '무용지물'
합병 절차의 합리성을 확보하기 위한 장치는 있지만, 실제로 유의미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게 IB 업계 관계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자본시장법 시행령상 상장사와 비상장사 간 합병가액과 합병비율 산정은 외부 평가기관인 회계법인에 의무를 부여하고 있다. 다만 예비 상장사가 원하는 회계법인을 골라 평가를 받을 수 있다. 회계법인 역시 고객을 유치해야 하는 만큼 원하는 수준의 합병 비율을 산출해줄 유인이 크다는 평가다.
작년 스팩 합병이 무산된 스튜디오삼익의 경우 세 차례에 걸쳐 합병비율을 조정해 기업가치를 최초 1120억원에서 780억원으로 낮췄다.
회계법인 관계자는 “외부 평가기관의 기업가치 평가가 얼마나 고무줄인지 알 수 있었던 사례”라며 “비상장사의 기업가치 평가를 객관화하기 위해선 외부 평가기관을 합병회사와 직접 선정하는 방식이 아닌 지정제 방식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유명무실한 주주총회 역시 자격 없는 비상장사의 우회 상장이나 기업가치 뻥튀기가 이뤄지는 주요 요인으로 꼽힌다.
스팩합병의 경우 주주총회에 출석한 주주 3분의 2 이상의 동의와 발행주식 수 3분의 1 이상의 승인을 얻지 못하면 합병은 자동으로 무산된다. 합병 비율이 예비 상장사에 지나치게 유리하다면 스팩 주주가 반대할 수 있는 통로다.
하지만 지금까지 스팩 합병 안건 통과를 위한 스팩 주총에서 합병안건이 부결이 된 사례는 거의 찾기 어렵다. 국내에 2009년 스팩 제도가 도입된 이후 초창기였던 2010년대 초반 ‘1세대’ 스팩 3건을 제외하면 작년 스튜디오삼익-IBKS제13호스팩 사례가 전부다.
IB 업계 관계자는 “스팩 개인 주주 비중이 60% 안팎인 경우가 대다수이기 때문에 발기인과 기관만 설득하면 주총 통과가 어렵지 않다”며 “개인 주주 대다수도 상장 차익을 기대하는 데다 합병 대상기업의 우량·비우량 여부를 판별하기 힘들어 합병에 반대하는 비율이 높지 않다”고 말했다.
금감원, 스팩 관련 제도 정비 착수
금융감독원 역시 지난 3월 스팩 발기인이 비우량기업이더라도 합병을 진행할 유인하는 만큼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는 견해를 내놨다.
시장 관계자는 “일반 IPO 기업과 동일한 기준으로 스팩 합병 상장사의 상장 자격을 따지는 대신 기업가치 대한 직접적인 개입은 하지 못하는 게 원칙”이라며 “다만 올해부터 한국거래소와 금감원 등이 스팩 합병 기업에 대해 합병비율 조정을 요구하는 등 심사를 한층 깐깐하게 진행하면서 사실상 적정 기업가치를 조율하는 문지기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금감원은 현재 스팩합병 관련 제도 개편을 위한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발기인의 스팩 CB 취득가격을 높여 과도한 이익을 기대하지 못하도록 하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합병비율 등에 대한 금감원의 직접적 개입을 줄이는 대신 과도한 기업가치로 인해 합병이 무산되거나 일반 주주의 피해가 발생할 경우 주관사 및 회계법인의 책임을 엄중히 묻는 방식 등도 유력한 개편 방안으로 꼽힌다.
IB 업계 관계자는 “그동안 자정작용에만 기대 스팩합병 제도가 돌아갔지만, 각종 사유로 원활하지 않다는게 증명됐다”며 “스팩 시장 활성화를 위해선 합병건수나 합병규모를 늘리는 것보단 합리적 시장을 만들기 위한 제도적 보완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최석철 기자 dolso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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