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 대피시키라”…이스라엘서 온 수상한 전화, 피신하자 건물 ‘와르르’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와 이스라엘 간 무력 충돌이 계속되는 가운데 8일(현지시간) 가자지구에서 이스라엘 군인들이 건물 잔해 가운데 서 있다. 이스라엘군(IDF)은 지난달 지상 작전을 시작한 이후 지금까지 가자지구 터널 갱도 130여 곳을 발견해 파괴했다고 밝혔다. [AP]

[헤럴드경제=나은정 기자] 이스라엘군(IDF)이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의 본거지인 가자지구를 폭격하기 전 일부 가자 주민에게 직접 공습 예고 전화를 걸고 주민을 대피하게 한 것으로 전해졌다.

8일(현지시간) 영국 BBC 방송에 따르면 가자지구 북부의 중산층 거주지 알-자라에 사는 치과의사 마무드 샤딘(40)은 지난달 19일 오전 6시 30분쯤 알 수 없는 번호로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전화를 건 남성은 유창한 아랍어로 자신이 이스라엘 정보부 소속이라며 빌딩 세 채를 폭격할 것이니 인근 주민들을 대피시키라고 했다.

장난 전화라고 생각했던 마무드는 경고가 사실이라면 경고 사격을 해보라고 했고, 그러자 어디선가 드론으로 추정되는 물체에서 총탄이 날아와 근처 건물에 박혔다. 깜짝 놀란 마무드는 그 즉시 이웃들을 대피시켰고, 폭격을 최대한 늦추기 위해 전화를 걸어온 남성을 설득했다.

그는 "전화 속 남성에게 우리를 배신하지 말라고, 아직 대피 중일 때 폭격을 하지 말라고 호소했다"며 "그러자 그는 나에게 '시간을 가지라'며 자신은 아무도 죽는 걸 원하지 않는다고 했다"고 전했다.

국제사회의 휴전 요구에도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 대한 지상전 규모를 확대하는 가운데,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지난달 30일(현지시간) 폭격으로 폐허가 된 가자시티를 떠나고 있다. [AP]

알-자라는 가자지구 최대 도시 가자시티 외곽에 있는 지역으로 팔레스타인 대학을 비롯해 학교, 카페, 상점, 공원 등 현대식 건물들이 들어선 도심지다. 전화가 걸려온 당일까지 알-자라는 공습을 받은 적이 없었다.

마무드는 전화 속 남성에게 알-자라는 민간인 거주 지역이며 이웃들도 서로를 잘 알고, 국경 지역이나 분쟁이 있던 지역도 아니란 걸 이해시키려고 애썼지만, 소용이 없었다고 했다. 그러나 전화 속 남성은 마무드에게 "이는 당신과 나보다 더 높은 사람들로부터 온 명령이고, 우리는 폭탄을 떨어트리라는 명령을 받았다"고 말했다고 한다.

결국 이웃들의 대피가 끝나자 곧이어 폭격이 시작됐다. 마무드와 주민들은 아파트 건물 세 채가 차례로 무너져 폐허로 변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망연자실했다.

이날 오후 마무드는 또 다른 남성에게 다시 전화를 받아 이번엔 오전에 무너진 건물 옆 빌딩 두 채를 더 폭격할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마무드는 다시 수백 명의 이웃을 대피시키기 위해 동분서주했고, 실제로 빌딩 두 곳의 폭격이 이뤄졌다. 전화를 건 남성은 또 다시 건물 세 채를 더 무너뜨리겠다고 하더니 돌연 계획이 바뀌었다며 마을 동쪽에 있는 아파트 건물 전체를 폭격하겠다고 했다.

마무드는 최소한 날이 밝을 때까지만이라도 기다려달라고 호소했으나 전화 속 남성은 "명령은 내려졌고, 우리는 모든 건물을 두 시간 뒤에 폭격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결국 마을은 아수라장이 됐고, 인근 대학교에 대피한 주민들은 잇단 폭격에 밤새 공포에 떨어야 했다.

마무드는 이날 이 외에도 이스라엘 측의 전화를 여러 차례 받았다고 한다. 그는 이스라엘 정보부가 자신의 가족과 아이들의 이름까지 전부 알고 있다는 것에 공포를 느꼈다고 했다.

공습이 끝나자 마을은 수도와 전기가 모두 끊기고 상점도 모두 무너진 폐허로 변했다.

마무드는 이날 이후 15년간 의사 생활을 하던 동네를 떠나 다른 지역으로 피란을 갔다.

이스라엘군은 BBC에 알-자라 공습에 관해 "하마스 테러 조직을 해체하기 위한 임무의 일부로서 가자지구 전역에 있는 하마스를 대상으로 공격한 것"이라며 "이는 국제법 조항에 어긋나지 않는 행위이며, 민간인 사상자를 최소화하기 위해 실현 가능한 예방책을 사용한 것 역시 국제법에 따른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betterj@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