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든 다한다" K-기술로 무장한 여장부의 진격 [소셜+]
2023 스타트업 열전 5편
유혜선 화선엠텍 대표
전동배식차 시장 도전장
2년간 기술 국산화 힘써
성능과 가격 두마리 토끼
음압부스·쇼케이스 물론
반도체 공정용 카트까지
무엇이든 만든다는 포부
종합제조업체 향한 전진
# 회사 구내식당에서, 대형병원에서 한번쯤 식사를 운반하는 배식차를 본 적이 있을 거다. 언뜻 배식차는 거기서 거기인 듯하다. 식판이 잘 고정되기만 하면 별다른 기능은 필요 없어 보인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음식의 신선도와 위생을 유지하기 위해선 보온ㆍ보랭 성능부터 단열 기능까지 세심한 기술이 필요하다. 이뿐만이 아니다. 운반 효율을 높이기 위해선 배식차가 전동으로 움직일 수 있도록 모터 기술도 탑재해야 한다.
# 놀랍게도 배식차에 필요한 이 기술들을 전부 국산화하는 데 성공한 스타트업이 있다. 2017년 설립한 제조업체 화선엠텍이다. 2년간 연구ㆍ개발(R&D) 끝에 내놓은 화선엠텍의 제품은 우수한 품질과 합리적인 가격으로 전동배식차 시장에 돌풍을 일으켰다.
# 유혜선(40) 화선엠텍 대표는 지금의 값진 성과를 "무엇이든 무조건 해본다는 각오 덕분"이라고 말한다. 그래서일까. 화선엠텍의 다음 목표는 전동배식차를 넘어 '무엇이든 다 만드는' 종합제조업체로 발돋움하는 거다. 더스쿠프 소셜기록제작소 스타트업 열전 다섯번째 화선엠텍의 스토리를 들어보자.
어릴 때부터 유난히 손재주가 좋았다. '열공' 중 샤프가 고장 나면 곧바로 분해해 고쳐썼다. 갑자기 컴퓨터가 먹통이 돼도 당황하지 않고 직접 수리했다. 남다른 손재주는 '여성 기술자'란 꿈으로 이어졌고, 그 꿈은 이내 현실이 됐다. 직장생활 11년 만에 제조업체를 창업한 유혜선(40) 화선엠텍 대표의 얘기다.
유 대표가 발을 내디딘 곳은 '전동배식차' 시장이다. 아무나 쉽게 뛰어들 수 있는 분야는 아니었다. 시장은 이미 강력한 1인자가 지배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유 대표는 도전을 선택했다. 각 분야의 전문가를 스카우트해 메마른 땅에 씨앗을 뿌린다는 심정으로 제품을 개발했다. 발에 땀이 나도록 전국의 부품사를 드나들었다. 기술을 완벽하게 습득하기 위해 새벽잠을 마다했다.
그렇게 꼬박 2년이 걸려 첫 배식차를 출시한 2019년 화선엠텍이 올린 매출은 8000만원. 그로부터 2년 후인 2021년 화선엠텍은 매출 12억원을 달성하며 극적인 성장을 이뤄냈다. 신생 스타트업이 업계의 주목을 한몸에 받는 유망기업으로 올라설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 창업 전에는 평범한 직장인이셨네요.
"그렇습니다. 11년 동안 대학병원에서 관리직으로 근무했습니다."
✚ 평소 창업에 관심이 있었나요?
"나만의 사업을 해보고 싶단 마음은 늘 가지고 있었습니다. 중학교 때 꿈이 기업 회장이기도 했고요(웃음). 실제로 제조업체에 들어가 4년간 일을 해보기도 했는데, 경영지원팀으로 시작해 나중에는 직접 기계를 다루면서 설계와 제조에도 참여했습니다. 병원에 있으면서는 직접 온라인 쇼핑몰을 열어 운영해보기도 했죠."
✚ 쇼핑몰이요? 어떤 제품을 판매했었나요?
"처음은 의류쇼핑몰이었습니다. 동대문에서 옷을 떼다 팔았는데, 아무래도 병원에서 일을 하다 보니 의료 현장의 애로사항이 자꾸만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그래서 시작했던 게 소아용 링거대 판매 사업이었습니다."
✚ 의류쇼핑몰에서 링거대라니…, 접점이 없어 보입니다. 링거대 사업은 잘됐나요?
"아이를 키우고 있는 엄마 입장에서 아픈 아이들을 지켜보다 보니까 기존 링거대의 문제점이 눈에 띄었어요. 손이 끼거나 넘어질 위험이 있었죠. 국내외 암병원에 입원해 있는 아이들이 어떤 링거대를 쓰는지 시장조사를 마친 뒤 가장 편하게 쓸 수 있는 디자인을 고민해 제품을 만들었습니다. 미국의 3대 디자인 어워드 중 하나인 IDEA에서 브론즈상을 수상할 정도로 경쟁력을 인정받았어요."
✚ 그런데 또다시 다른 사업 아이템으로 눈을 돌린 이유는 무엇인가요?
"미국에서 상을 받고 국내에 들어와 영업을 하려고 하니 병원에 갈 때마다 잡상인 취급을 당하기도 하고 여러모로 힘들더라고요. 그러던 차에 평소 친하게 지내던 영양사 여사님들, 식사 운반원들의 고충을 듣게 됐습니다. 수동으로 배식차를 옮기느라 팔이며 팔꿈치, 손목까지 근골격계 질환을 앓고 있단 얘기였죠."
✚ 그때 전동배식차를 떠올린 것이군요.
"맞습니다. 배식차가 전동으로 움직이면 영양사와 운반원이 일을 좀 더 쉽게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곧바로 병원 관리팀에 아이디어를 얘기했고, 이후 한양대 에리카 창업보육센터를 통해 본격적으로 사업에 나섰습니다. 우선 배식차 제조 경험이 있는 분, 자동차 산업에 종사했던 분, 디자인 전문가를 스카우트해서 인력을 꾸린 후 제품 개발을 진행했죠."
✚ 제조업에 종사한 이력이 있다곤 해도 그 과정이 결코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요.
"물론입니다. 일단 거래처를 뚫는 것부터가 난관이었습니다. 보통 제조업에는 남성 근로자들이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여성인 제가 일선 부품사를 돌면서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를 건네도 무시를 당하는 경우가 많았죠. 거래처들의 문턱을 넘어갈 때까지 1년 동안 꾸준히 인사를 다니고, 끊임없이 질문했습니다."
✚ 기술 개발 과정도 험난했을 텐데요. 전동배식차를 만들기 위해선 어떤 기술들이 필요했나요?
"한두가지가 아닙니다. 냉장, 온장, 단열, 모터, 하다못해 바퀴 하나까지 너무나 중요한 요소들입니다. 기본적으론 냉장ㆍ온장이 잘돼야 음식이 상하지 않고 잘 보관됩니다. 그런데 냉ㆍ온장을 잘 해도 정작 단열이 안 되면 무용지물이죠. 따뜻해야 할 음식이 미지근해져서 변하기라도 하면 식중독을 유발할 수도 있으니까요. 모터와 바퀴가 부실해서도 안 됩니다. 배식차를 원활하게 움직일 수 없을뿐더러 소음과도 밀접하게 연관돼 있기 때문입니다."
✚ 그 많은 기술을 어떻게 연구한 건가요.
"모든 기술을 처음부터 하나하나 공부해 나갔습니다. 열선은 어떻게 감고 고정하는지, 전기 용량은 몇 와트(W)가 적정한지, 배식차 규격에 맞는 배치 사양은 어느 정도인지까지 전부 다요. 거래처에 도움을 요청하거나 각 분야의 전문가들을 직접 찾아가 기술을 배우기도 했습니다. 예를 들어, 금속을 가공하려면 절곡기를 쓸 줄 알아야 합니다. 기계를 잘 다루는 거래처 직원에게 고기를 사주면서 교육을 부탁했죠(웃음). 냉장기술은 대구에 있는 컴프레서(압축기) 전문가에게, 전동 모터기술은 오래전부터 알았던 모터업체 사장님께 배웠고요."
✚ 습득한 기술을 실제 제품 개발에 반영하는 건 또다른 문제였을 텐데요.
"그렇습니다. 배운 기술을 다시 '우리 것'으로 만들기 위해선 좀 더 진화를 꾀해야 했어요. 가령, 화선엠텍의 전동배식차 전면에는 360도 어라운드뷰가 가능한 카메라가 달려 있는데 제작을 완성하는 데까지 6~7개월 걸렸습니다. 이 카메라도 달아보고, 저 카메라도 달아 보면서 센서 하나하나를 정교하게 제작했죠."
✚ 첫 시제품이 나오기까지 얼마나 걸렸나요?
"기술을 배우는 데 1년, 시제품을 완성하기까지 또다시 1년이 걸렸습니다."
✚ 그렇게 해서 완성한 제품엔 어떤 기술력이 담겨 있나요?
"앞서 말씀드렸지만 전동배식차 시장에서 기술력 싸움의 관건은 배식차가 적정 온도를 잘 유지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선 냉장과 온장이 섞이지 않아야 합니다. 단열 세파르타가 중요한 건 이 때문이죠. 화선엠텍의 전동배식차에는 배식판을 넣는 블록마다 세파르타가 하나씩 있어서 모듈처럼 끼워 넣고 뺄 수 있습니다. 식판을 넣었을 때 (블록과 판 사이가) 조금만 떠도 온도가 변할 수 있기 때문에 그런 틈새를 완전히 차단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세파르타의 정식 명칭은 세퍼레이터(seperator)다. 증기나 수분 등을 분리ㆍ격리하는 장치를 뜻한다. 세파르타는 중요한 장치다. 단열 세파르타가 복잡한 구조로 돼 있으면 틈새가 생겨 음식에 오염물이 생기고, 세균이 번식할 수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화선엠텍은 단열 세파르타를 일체형으로 꽂고 뺄 수 있는 특허기술을 개발했다. 그 결과, 배식차의 온도를 더 잘 보존하고 내부 공간도 넓게 사용할 수 있게 됐다.
이뿐만이 아니다. 문틈 사이로 온도가 새어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전동배식차 문에 밀착 잠금 기능을 탑재했다. 벽면의 김 서림과 변색을 방지하기 위해 품질 좋은 소재를 활용하고, 범퍼에 충격 완화 기능을 더해 안전성에도 신경 썼다. 유 대표는 "고객사에 제품을 설명할 때 망치를 들고 가서 '직접 두드려 보라'고 한다"면서 "그래도 깨지지 않을 만큼 제품의 내구성이 강하다"고 설명했다.
✚ 첫 제품을 만들고 난 이후에 또다른 과제가 있었다고요.
"제품 개발을 완료했으니 이젠 판로를 개척해야 했죠. 아무래도 업력業史이 긴 선두회사가 있다 보니 그 장벽을 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 어떻게 돌파구를 찾았나요.
"처음엔 저희 직원과 함께 고객사 영업을 다니면서 타사 제품을 AS하는 일을 했습니다. 기존 전동배식차에 불편한 점은 없는지 물어보고, 저희가 고칠 수 있는 건 무상으로 수리를 해드렸어요. 꼬박 1년 동안 서울이든 부산이든 전국 어디든 가리지 않고 방문해 그런 작업들을 했습니다. 부품업체와 신뢰를 쌓는 데 1년이 걸렸으니, 고객사의 신뢰를 얻는 데에도 그만한 시간이 들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 역발상 영업전략인데요? 효과는 어땠나요?
"1~2대 소량 주문으로 시작해서 8~9대에 이르는 전동배식차를 전부 저희 제품으로 교체한 고객사가 나타났어요. 국산기술을 적용한 제품을 비교적 합리적인 가격에 구입할 수 있게 됐다는 점에서 고객사들로부터 '선택의 폭이 넓어졌다'는 이야기도 많이 들었죠. 그런 호응 덕분에 경희대학교병원, 부산 동아대학교병원 등 대형 의료기관부터 호텔ㆍ관공서까지 고객사를 넓힐 수 있었죠."
✚ 한마디로 품질과 가격 두마리 토끼를 잡은 셈이군요. 어떻게 그게 가능했나요?
"우선 거래처들과의 협력이 가장 큰 원동력입니다. 그 밑바탕엔 결국 신뢰가 깔려있습니다. 제품 개발 초기 단계부터 서로 돕고 함께 공부하면서 업체들과 믿음을 쌓은 덕분에 좀 더 합리적인 비용으로 상호거래를 할 수 있게 됐죠. 또다른 비결이라고 한다면, 저희가 자체 공장을 갖고 있다는 점이 아닐까 싶습니다."
✚ 자체 공장을 통한 비용 절감이 화선엠텍의 가격경쟁력으로 이어진 것이군요.
"그런 셈입니다. 제품의 100%를 전부 생산할 순 없지만, 원자재나 부품을 제외하면 60~70% 정도는 자체 생산이 가능합니다. 자체 공장의 장점은 이뿐만이 아닙니다. 회의를 하다가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바로 시제품을 만들어볼 수도 있고, 제품 관련 수정사항이나 피드백도 바로 확인해 반영하는 게 가능하죠."
✚ 일대기를 듣고 보니 '일단 하고 보는 것'이 화선엠텍의 성장 비결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맞습니다(웃음). '무조건 한다' 이게 제 모토입니다. 멀리 지방에 있는 고객이 저희 제품에 관심을 보이면 주말이든 언제든 상관 없이 제품을 직접 들고 찾아갑니다. 고객사에서 아무리 무리한 부탁을 하더라도 저는 무조건 해보겠다고 말하고요. 신기하게도 시도하면 무엇이든 가능해지더군요."
✚ 실제로 그런 일이 있었나요?
"사실 화선엠텍의 전체 매출에서 전동배식차가 차지하는 비중이 50%라면, 나머지 50%는 주문제작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코로나19 팬데믹 때 일선 병원의 요청을 받아 양압ㆍ음압형 워킹스루 진료소를 주문 제작했던 것이 계기가 됐습니다. 이제는 식품 보관용 쇼케이스를 주문한 현대백화점, 반도체 공정용 무진동 운반 카트를 의뢰한 SK하이닉스도 우리의 고객사입니다. 관 운반차가 필요한 장례식장, 창살이 있는 운반차를 원하는 교도소에서도 저희에게 제품 제작을 의뢰했죠."
✚ 이쯤 되면 무늬만 전동배식차 회사 아닌가요(웃음). 궁극적으로 화선엠텍은 어떤 기업으로 성장할지 궁금해집니다.
"소비자가 필요로 하는 것을 잘 파악하는 기업, 그래서 끊임없이 제품 개발에 노력하는 기업이 되고 싶습니다. 지금도 2024년식 전동배식차 출시는 물론 가전 분야의 신제품 모델 론칭과 광고를 함께 준비하고 있죠. 아마 미래의 화선엠텍엔 지금보다 훨씬 다양한 제품군이 마련돼 있을 겁니다. 이를 통해 누구든 손쉽게 다가갈 수 있고, 가까이 찾을 수 있는 기업으로 성장하고자 합니다."
✚ 2024년의 화선엠텍도 기대가 됩니다.
"내년이면 창업 5년차에 접어듭니다. 제조업에서 가장 힘든 시기로 꼽히는 시점이죠. 잘 버텨내면서 또다른 성장의 발판을 마련하고 싶습니다.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무조건 한다'는 마음으로요."
윤정희 더스쿠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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