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재세는 좌파정당의 전유물일까? [핫이슈]
유럽 다수 국가들 이미 시행중
은행·정유사 등에 한시적 과세
좌파적 정책이지만 우파도 가세
국민적 조세저항 걱정 없고
국가재정 확충할 수 있기 때문
국민연금 등 투자손실도 따져야
그동안 민주당에선 은행 등에 대한 횡재세 도입 얘기가 간혹 있었지만 관심을 환기하는 수준에 그치곤 했다. 하지만 최근 윤석열 대통령이 “갑질” “종노릇”과 같은 표현을 써가며 은행권을 강도높게 비판한 뒤 여당인 국민의힘 내에서도 은행들의 ‘고통분담’에 대한 얘기가 나오고 있어 정치권에서 횡재세 논의가 구체화될 가능성이 크다.
총선이 다가오자 보수, 진보 가릴것없이 대기업들의 ‘곳간’에 눈독을 들이는 것인데 다소 의외의 상황이다. 기업들에게 세금을 더 걷어 유권자들에게 어필하는 정책은 전통적으로 진보좌파의 전유물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미 횡재세를 도입한 유럽 국가들을 보면 그런 등식이 성립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
유럽 국가들이 횡재세를 대거 도입한 것은 지난해부터다. 고유가와 고금리로 인해 국민 부담이 가중되자 이탈리아, 스페인 등은 석유를 파는 에너지 대기업들에게 횡재세를 부과하기로 했고 체코, 헝가리, 리투아니아 등은 은행들을 대상으로 횡재세를 물렸다.
정치성향은 무관했다. 헝가리는 우파정권이고, 이탈리아도 횡재세 도입 논의는 좌파인 드라기 전 총리가 했지만 최종 확정은 극우 성향 멜라니 총리에 의해 이뤄졌다. 보통 부자증세를 반대하는 우파정권이 대기업들에게 횡재세를 걷자고 하는 것은 열악한 재정상태에 대한 고민이 깔려있다. 전쟁과 기후변화, 난민문제 등에 대응하려면 세금을 더 걷어야 하는데, 다른 세목은 조세저항이 극렬하지만 은행과 석유회사들만 대상으로 하면 국민적 지지를 쉽게 얻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국가부채가 사상 최대로 치솟고 세입이 줄어드는 와중에 떼돈을 번 일부 대기업에 대한 과세는 여야, 좌우 가릴것없이 달콤한 유혹이다. 자동차에 기름을 넣고, 주택담보대출 이자를 내는 서민들이 수백만명인데 고유가, 고금리로 횡재한 정유사와 은행들에게 세금을 더 걷겠다고 하면 누가 반대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횡재세는 과세 기준에 논란이 있을수 있고, 지속가능하지도 않다는 한계가 있다. 예를 들어, A은행이 전년보다 이익이 급증했다고 횡재세를 물린다고 하면 경영혁신이냐 리스크관리 등은 완전히 무시해버리는 오류가 있다. 한시세이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재정에 기여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또 한가지 중요한 논점은 과세에 따른 국민 편익의 총합이다. 대다수 은행과 정유사들은 국민연금이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횡재세로 인해 이들 기업의 배당이 줄고, 주가가 떨어지면 국민연금 재정이 악화될 수밖에 없다. 국제통화기금(IMF)도 바로 이런 관점에서 횡재세의 한계를 지적했다.
횡재세 논의가 정치권력을 강화하는 결과만 낳을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 횡재세 도입 과정에서 온갖 기업과 협회의 로비는 불보듯 뻔하다. 과세 대상과 세율, 기간을 어떻게 정하느냐에 따라 기업들의 세부담이 좌우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체코, 이탈리아 등 유럽국가에서도 횡재세 도입 과정에서 기업들의 광범위한 로비와 소송 때문에 세율이 낮아지거나 대상이 축소됐다는 비난이 제기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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