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0.2㎜ 철판 1만장을 차곡차곡… HD현대일렉 변압기 스마트 공장
재생에너지 전환 흐름에 변압기 ‘역대급 호황’
수익성 더 좋아진다… 2030년 매출 5兆 목표
지난 7일 찾은 경남 울산 HD현대일렉트릭의 500㎸(킬로볼트) 변압기 공장. 두꺼운 철문을 열고 공장 내부에 들어서자 거대한 3D프린터 형태의 기계 설비가 시선을 사로잡았다. 설비 위에 매달린 로봇 팔처럼 생긴 핸들러(Handler)는 쉴 새 없이 움직이며 사다리꼴 모양의 전기강판인 철심(실리콘 스틸)을 차례대로 쌓고 있었다. 현장에 있던 양재철 HD현대일렉트릭 상무는 “이 설비가 우리 스마트 공장의 핵심인 철심자동적층기”라고 설명했다.
적층 공정에서 사용되는 철심 하나의 두께는 0.2~0.3㎜에 불과한데, 이를 적게는 2000장, 많게는 1만장까지 정확한 모양으로 쌓아 올려야 한다. 이렇게 얇은 적층 시트를 쌓아 올려 구조물을 만들면 한 덩어리로 된 구조물을 쓸 때보다 전류 손실이 감소하는 효과가 있다.
과거에는 4~6명의 작업자가 붙어 손으로 직접 철심을 쌓았지만, 설비를 도입한 이후 이 공정에 필요한 인력은 1~2명 정도로 줄었다. 또한 쌓아 올린 철심 구조물은 바인딩(binding) 작업을 거친 뒤 수직으로 세워야 하는데, 철심자동적층기에는 별도의 크레인을 이용하지 않아도 구조물을 90도로 세울 수 있는 기능이 탑재됐다. 야간에도 가동할 수 있어 생산량도 크게 늘었다.
철심 구조물에 권선(구리선)을 삽입하고 각종 절연물을 조립하는 중신 조립장 곳곳에는 거대한 태블릿 PC와 비슷한 키오스크(KIOSK) 화면이 설치돼 있다. 작업자들은 이 키오스크로 작업 정보와 3D(3차원) 설계도면을 틈틈이 확인했다. 기존에는 작업자들이 종이로 된 2D 도면을 사용했는데, 최신 도면이 현장에 전달되지 못해 가끔 오작품을 만드는 경우가 있었다. 키오스크 도입 후 이런 오류는 현저히 줄었다고 한다.
HD현대일렉트릭은 지난 2018년 시장 환경이 얼어붙어 적자를 냈음에도 약 800억원을 투자해 이곳 스마트 공장을 착공했다. 설비를 증진하고, 공정을 효율화해야 변압기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기존 4개 공장 중 하나를 철거한 뒤 시장 수요가 가장 많은 500㎸급 변압기 공장을 지난 2020년 신설했다. 양 상무는 “세계에 있는 모든 변압기 공장 중에서 가장 최신 설비를 갖춘 공장이 바로 이곳”이라고 말했다.
변압기(Transformer)는 전압을 바꾸는 설비다. 전압은 볼트(V)로 측정되며, 전압이 높을수록 전자들이 높은 에너지를 가지고 이동한다. 발전소에서 갓 만들어진 전력은 먼 곳까지 도달하기에 전압이 충분하지 않다. 이를 먼 곳까지 보내려면 굵은 두께의 전선을 사용하거나 전기의 성질을 이용해 전압을 인위적으로 높여야 하는데, 인위적으로 높이는 게 더 경제성이 좋다.
예를 들어 발전소에서 생산된 전기의 변압이 10㎸라고 할 때, 500㎸급 초고압 변압기를 거치면 변압은 50배 커지고 전류는 50분의 1만큼 줄어들게 된다. 전력은 전압과 전류의 곱으로, 전체 전력량에는 변화가 없다.
HD현대일렉트릭은 최근 유례없는 호황기를 맞았다. 지난 2020년부터 세계적으로 탄소중립 실현 기조가 강화되며 여러 국가가 태양광과 풍력 등 신재생 에너지 발전 확대에 나섰기 때문이다.
신재생 발전단지를 조성하기 위해선 넓은 부지나 바다가 필요한데, 신재생 발전 단지와 전력 소비자 간에 전력망을 연결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이는 송배전 기기 수요 증가로 이어진다. 업계에 따르면 지난 2020년 300조원 수준이던 글로벌 송배전망 투자액은 오는 2025년 485조원, 2030년 700조원 규모까지 늘어날 전망이다.
HD현대일렉트릭은 올해 3분기 누적 매출 1조9055억원을 기록했는데, 이는 지난해 전체 매출의 90%에 달한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1905억원으로 지난해 전체 영업이익(1330억원)을 뛰어넘었다. 올해 3분기 기준 수주잔고는 역대 최대인 5조1571억원으로, 지난해 말보다 46% 늘었다.
이날 만난 김영기 HD현대일렉트릭 부사장은 “세계에서 미국이 요구하는 사양의 초고압 변압기를 만들 수 있는 회사는 몇 곳 없다”며 “우리는 최근 2년을 기준으로 미주, 사우디 등 시장에서 초고압 변압기 시장 점유율 1위를 기록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2030년 인도분 물량을 미리 발주하는 업체도 있는데, 수익성을 고려해 선별 수주하고 있다. 김 부사장은 “수익률이 상대적으로 낮은 과거 수주분 납품이 마무리되고 있어 향후 영업이익률은 더 상승할 것”이라며 “2030년에 매출 5조원 달성을 계획하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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