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의 의리테스트? 윤핵관, ‘총선 희생’ 요구에 응답할까
“尹, 그들의 변심 두려울 듯”…장제원‧권성동 등 지역구 사수 의지
(시사저널=구민주 기자)
인요한 국민의힘 혁신위원장이 김기현 지도부와 당내 윤핵관(윤석열 대통령 핵심 관계자)들을 향해 연일 총선 험지 출마 혹은 불출마를 강하게 권고하고 있다. 윤 대통령을 위해, 그리고 총선 승리를 위해 이들의 '결단'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판단이다. 인 위원장의 이 같은 메시지엔 용산, 즉 윤 대통령의 뜻이 담겼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 때문에 윤 대통령이 지난 대선을 함께 치른 기존 윤핵관들과 거리를 두고, 더욱 신뢰관계가 두터운 새 측근들로 채우려 한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여권 안팎의 취재를 종합한 결과, 윤 대통령은 총선 승리를 위해 현 김기현 지도부와 윤핵관들의 희생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갖는 것으로 파악된다. 이러한 의중을 인요한 위원장의 '입'을 통해 당을 향해 꾸준히 던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대표적인 희생 대상으로는 김기현 대표를 포함해 권성동‧장제원 의원 등이 꼽힌다. 모두 강원‧영남 등 텃밭을 지역구로 두고 있는 만큼, 이들이 서울 등 수도권으로 옮겨 출마하거나 혹 불출마를 결단해주길 바란다는 것이다.
이는 현재 용산 대통령실 참모진 30~40명이 영남 지역구 위주로 총선 출마에 나서고 있다는 점과 맞물려 여러 이야기를 양산하고 있다. 인 위원장이 윤핵관을 향해 결단을 촉구하고 물갈이를 시도하는 것이 혹 용산 참모진들에게 자리를 내주기 위한 사전작업이 아니냐는 의심이 다.
정치권에선 윤 대통령이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패배 전후로 윤핵관과 거리두기를 본격화했다는 얘기가 나온다. 인재영입위원장으로 임명된 이철규 의원 정도를 제외하면 김기현‧권성동‧장제원 등 기존 윤핵관들을 향한 대통령의 신뢰가 예전만 못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윤 대통령 자신이 더욱 두텁게 신임할 수 있는 '신(新) 윤핵관'들을 국회에 입성시켜 새롭게 세를 구축하고자 한다는 관측이다.
이준석 전 대표는 윤 대통령과 윤핵관 사이 발생한 거리를 두고 "윤 대통령이 윤핵관들의 과거 변심 이력을 두려워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최근 경향신문 기고를 통해 "(윤 대통령은) 몇 년 전 검찰총장 청문회장에서 자신을 맹비난했던 장제원 의원을 위시한 윤핵관을 앞세웠다"며 "이제는 그들의 변심 이력이 또 다른 두려움으로 다가오기 시작했을 것이다. 그래서 자신이 어떻게든 신뢰할 수 있는 사람으로 국회를 채워야 하는데, 민심을 보니 방법이 없다. 그러니 얼마나 두렵겠나"라고 꼬집었다.
물론 이러한 주장들에 인 위원장은 "말 같지 않은 소리"라며 강하게 부인하고 있다. 윤핵관 용퇴론은 대통령실과의 교감 없이 자신이 독자적으로 도출한 혁신안이란 주장이다. 하지만 당 안팎에선 인 위원장의 위치나 그간 윤 대통령을 향해 냈던 온건한 메시지 등을 근거 삼아 '용산 배후설'을 끊임없이 제기하고 있다.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은 8일 "인요한 위원장이 친윤 주류 결단을 요구한 것은 윤심(尹心·윤석열 대통령의 의중)이 실려있다고 봐야 한다"며 "아무도 결단을 안 한다면 대통령 입장에서 '내 새끼들은 뭐 하냐' '정말 나를 생각하는 마음이 진심이었냐'라며 실망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기현 '고심' 나머지는 '지역구 지키기'
인 위원장의 결단 요구에 대한 윤핵관들의 반응은 다소 엇갈린다. 김기현 대표는 현재 지역구인 울산 남구을을 포기할 가능성이 크다. 수도권 등 험지 출마를 잠정 결정짓고 당선 가능성 등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김 대표는 최근 측근들에게 "국회의원으로서 가질 수 있는 큰 영광은 다 이뤘다"고 말한 것으로도 전해진다. 이를 두고 그가 당 수장으로서 보궐선거 참패에 대한 책임을 지려는 것과 동시에, 2027년 대권을 위한 행보를 시작한 것이란 평가도 나오고 있다.
김 대표를 제외한 다른 윤핵관들은 기존 지역구를 사수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치고 있다. 장제원 의원은 오는 11일, 버스 90여대가 동원되는 대대적인 지역구(부산 사상구) 외곽조직 행사에 보란 듯 참석하기로 하는 등 세 과시에 나서고 있다.
강원 강릉을 지역구로 둔 권성동 의원 역시 현재로선 지역구를 옮길 생각이 없는 것으로 전해진다. 영남 다선 의원으로서 인 위원장으로부터 '실명 거론'이 되기도 했던 주호영 의원(대구 수성갑) 역시 8일 "대구에서 시작했으면 대구에서 마치는 것"이라며 자신을 향한 희생 요구를 완강히 거부했다.
윤핵관들의 최종 결단에 대한 당내 전망은 엇갈린다. 이들 대부분이 자신들을 향한 용퇴 권고를 납득하지 못하고 있는 만큼, 압박이 계속될 경우 기존 지역구에 무소속으로 출마할 수도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반대로 이들이 끝내 용산발 용퇴 압박을 버티지 못할 거란 관측도 적지 않다.
이런 가운데 이들이 불출마 또는 험지 출마를 결단하는 대신 추후 '임명직'을 약속받을 것이란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이준석 전 대표는 9일 KBS 라디오에 출연해 "(험지 출마를) 받아들이는 사람은 보장된 게 있는 사람일 것"이라며 "김기현 대표나 권력과 가까운 사람들이 그런 선언을 한다는 것은 나중에 또 임명직으로나 갈 자리가 있구나라고 대부분 생각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윤 대통령 취임 이후) 지금까지 1년 반 동안 당을 망쳐 놓고는 윤핵관 같은 사람들이 '나 불출마할래'라고 하면 이분들이 무슨 구국의 결단이라도 하는 것이냐"고도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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