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도기 고장”…119 ‘헛심출동’ 5년새 5배

전수한 기자 2023. 11. 9.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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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21년 인천 미추홀구 숭의동 관할소방서 상황실에 "전기면도기 소리가 너무 크니 도와달라"는 신고가 접수됐다.

상황실은 응급 상황이 아니면 구급차 출동이 어렵다고 찬찬히 설명했지만, "어떻게든 해결해달라"며 4차례나 119 신고를 이어갔다.

현행 소방기본법상 비응급 상황엔 출동을 거절하거나 허위 신고에 대해 과태료를 부과할 순 있지만, 과정이 복잡하고 뒤따를 악성 민원이 두려워 현장에선 무용지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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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골든타임 뺏는 비응급 신고 급증
출동 어렵다 설명에도 막무가내
해결해주니 웃으며 “돌아가라”
취객 대처하다 위급한 환자 숨져
허위신고 과태료 부과 가능해도
절차복잡·악성민원에 무용지물
순직 소방관 자녀 손잡고… 윤석열 대통령과 부인 김건희 여사가 9일 오전 서울 용산어린이정원 잔디마당에서 열린 ‘제61주년 소방의 날 기념식’에 순직 소방관 자녀의 손을 잡고 입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2021년 인천 미추홀구 숭의동 관할소방서 상황실에 “전기면도기 소리가 너무 크니 도와달라”는 신고가 접수됐다. 상황실은 응급 상황이 아니면 구급차 출동이 어렵다고 찬찬히 설명했지만, “어떻게든 해결해달라”며 4차례나 119 신고를 이어갔다. 결국 ‘울며 겨자 먹기’로 출동한 구급대원들이 면도기 전원을 꺼줬고, 신고자는 “이제 돌아가라”고 웃으며 현관문을 열어 줬다.

9일 ‘소방의 날’을 맞은 가운데 119 구급대의 행정력을 낭비시키는 이 같은 ‘비응급 신고’가 5년 사이 5배 가까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구급차를 ‘개인택시’처럼 여기는 신고자들로 인해 정작 응급환자 이송은 놓치는 사례까지 나오고 있다. 소방청의 ‘2023 119 구급서비스 통계연보’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119 구급대 출동 건 중 환자 이송 없이 복귀한 ‘이송 불필요’ 건수는 20만3851건에 달한다. 하루 평균 558건꼴이다. 2017년 4만4434건, 2018년 6만7728건, 2019년 9만5496건, 2020년 10만47건, 2021년 12만3015건 등으로 매년 증가하고 있다. 대부분은 단순 거동 불편·주취자 악성 민원이라는 게 소방청의 설명이다.

문제는 이 같은 비응급 신고 탓에 실제 환자의 ‘골든 타임’을 놓치게 된다는 것이다. 지난해 9월쯤 “인천 구월동 모래내시장 한복판에서 일행이 쓰러졌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현장에 가보니 만취한 60대 남성 3명이 “술이 안 깬다. 경기도 시흥에 있는 집까지 태워 달라”고 요구했다. 이날 출동했던 10년차 구급대원 A 씨는 “같은 시각 인근에서 심정지 환자가 발생해 지원 요청이 있었다”며 “주취자들을 달래는 사이에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씁쓸함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다”고 전했다. 황당한 민원도 많다. 올해 1월 경기도의 한 소방서에서는 “짬뽕을 먹었더니 배가 아프다. 병원까지 옮겨 달라”는 신고가 접수돼 출동했더니 “쿨피스를 먹었더니 괜찮아졌다”며 돌려보내진 일이 있었다.

현행 소방기본법상 비응급 상황엔 출동을 거절하거나 허위 신고에 대해 과태료를 부과할 순 있지만, 과정이 복잡하고 뒤따를 악성 민원이 두려워 현장에선 무용지물이다. 소방청에 따르면 2020년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119 허위·거짓신고는 총 3009건인데, 이 중 과태료가 부과된 건 단 9건(0.3%)뿐이다.

임명수 소방공무원노동조합 사무총장은 “구급차 호송 비용을 청구해 병원에 기부하는 방법 등 무분별한 신고를 막으면서 공익을 실현하는 대책을 고민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전수한 기자 hanihan@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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