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탁’하고 고개 숙이는 尹[뉴스와 시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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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 특성상 고위 공직자나 교수를 취재할 일이 많은데, 이들은 '부탁'이라는 말을 잘 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주로 부탁을 받는 위치이기에 부탁하는 것 자체가 어색할 수도 있고, 가진 권한 등을 볼 때 꼭 부탁까지 할 건 아니라 생각하는 것일 수 있다.
윤 대통령은 이날 5차례에 걸쳐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시정연설에서는 서두에 "첫 번째 예산안을 국민과 국회에 직접 설명드리고 국회의 협조를 부탁드리고자"라며 딱 한 번 부탁이라는 말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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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 특성상 고위 공직자나 교수를 취재할 일이 많은데, 이들은 ‘부탁’이라는 말을 잘 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이 말 대신, ‘요청드린다’는 말을 많이 한다. 주로 부탁을 받는 위치이기에 부탁하는 것 자체가 어색할 수도 있고, 가진 권한 등을 볼 때 꼭 부탁까지 할 건 아니라 생각하는 것일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지난달 31일 국가 최고 정책결정권자 윤석열 대통령의 시정연설은 아주 인상적이었다. 윤 대통령은 이날 5차례에 걸쳐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야당 의원들을 향해 정부의 3대 개혁, 예산안 집행, 민생 경제 법안에 “관심과 협조를 부탁드린다”고 했다. ‘때려잡는’ 대상이었던 노조에도 “노동개혁에 함께해 주실 것을 부탁드린다”고 했다. 큰 변화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시정연설에서는 서두에 “첫 번째 예산안을 국민과 국회에 직접 설명드리고 국회의 협조를 부탁드리고자”라며 딱 한 번 부탁이라는 말을 했다. 전혀 존경하지 않는 상대 당 의원에게 ‘존경하는 의원님’이라고 말하는 식의 의례적 표현이었다. 대통령실 핵심 관계자는 “‘부탁이란 말씀을 하시라’는 건 참모가 결코 할 수 없는 말이다. 대통령 스스로 변한 것이다. 깜짝 놀랐다”고 했다.
윤 대통령은 고개도 숙였다. 윤 대통령은 시정연설을 위해 국회 본회의장에 입장하며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에게 고개 숙이며 악수했다. 검찰총장 출신인 윤 대통령이 어쩌면 ‘피의자’이자 ‘피고인’에게 생전 처음으로 고개를 숙인 일일 수 있다. 반면, 이 대표는 목례조차 하지 않은 채 상체를 꼿꼿하게 세우고 대통령과 인사했다.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결과를 넉넉히 고려해도, 국민은 이 모습이 어쩐지 불편하다. 윤 대통령은 또 시정연설 전후로, 민주당 의원 자리를 찾아가 연신 눈을 마주치며 ‘악수 시도’를 했다. 민주당 의원들은 ‘노룩 악수’ ‘등 돌리기’ ‘1초 응시 뒤 악수’로 대통령을 민망하게 했다. 용기 내 하이파이브를 청한 누군가의 손을 싸늘하게 거부하기란 참 어려운 일인데, 민주당 의원들은 온갖 창의력을 발휘해 만국의 예법을 어겼다. 대통령은 그럼에도 불편한 기색 없이 악수 대상을 계속 찾아 헤맸고, 이 모습이 포털사이트, 신문·방송 등에 계속 나왔다.
국민은 이 같은 대통령의 변화가 반갑다. 지금 국민은 동네 마트를 찾아 쿠폰을 써가며 ‘3개월 무이자 할부’로 일주일치 장을 본다. 주유소에서 ℓ당 1800원이 넘는 기름을 넣을 때마다 손이 떨린다. 이 같은 상황에서 들어도 도통 모르겠는 대통령의 이념 얘기보다, 민생 얘기가 귀에 훨씬 잘 들어온다. 넙죽 고개를 숙이는 대통령의 몸짓, 표정, 악수 등의 ‘논버벌 커뮤니케이션(non-verbal communication)’이 곁들여져 국민의 마음이 빠르게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최근 각종 여론조사에서 대통령 국정 운영 지지도가 3∼4%포인트 올라 30%대 후반을 기록하고 있는데, 이 같은 대통령의 변화가 상당 부분 작용했을 것이다. 몸집 크고 자존심 강한 대통령이 ‘영빈관 대신 카페’에서, ‘부산·대구 대신 광주·목포’에서 국민에게 언제나 고개 숙이고 부탁한다면, 내년 4월 지지율 앞자리는 지금과는 또, 달라져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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