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0년 전 조선 '김해 사직단' 발굴했다…봉황동 유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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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김해시는 봉황동 유적지에서 풍요와 번영을 기원하는 제의 공간인 사직단을 발굴했다고 9일 밝혔다.
사직단은 조선시대 토지신(社)과 곡식의 신(稷)을 모시고 풍요와 번영을 기원하는 국가 주요 시설이다.
사직단 터에서 지진구가 확인된 것은 국내 첫 사례이며 이를 통해 김해 사직단이 조선 전기 축조된 이후 조선 후기까지 지속적으로 봉황대 구릉에 자리잡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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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뉴시스] 김상우 기자 = 경남 김해시는 봉황동 유적지에서 풍요와 번영을 기원하는 제의 공간인 사직단을 발굴했다고 9일 밝혔다.
사직단은 조선시대 토지신(社)과 곡식의 신(稷)을 모시고 풍요와 번영을 기원하는 국가 주요 시설이다. 조선 태종 6년(1406) 중앙 뿐만 아니라 지방에도 사직단을 조성하여 봄과 가을에 사직제를 거행하도록 하였다.
‘김해 사직단’은 순종 2년(1908) 일제 통감부령으로 훼철된 이후 정확한 위치를 모르고 있었으나 최근 고지도와 지형 분석 등을 통해 봉황대 북쪽 평탄부(현 가락국천제단터 일대)에 위치할 것으로 추정되었다.
이번 학술조사는 고지도와 문헌상에 표기된 사직단의 위치를 학술적으로 검증하기 위한 것으로, 조사된 사직단의 위치는 19세기 후반 제작된 '김해부내지도' 상에 표기된 것과 거의 일치한다.
신위를 모신 제단은 후대 삭평으로 금번 발굴조사에서 확인되지 않았으나 제단 하부에 매납한 것으로 추정되는 지진구, 즉 땅의 신에게 봉헌하는 의례용 유물을 통해 시기를 추정할 수 있다.
사직단 터에서 지진구가 확인된 것은 국내 첫 사례이며 이를 통해 김해 사직단이 조선 전기 축조된 이후 조선 후기까지 지속적으로 봉황대 구릉에 자리잡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발굴된 사직단터는 제단을 보호하는 석축단(壇)과 외곽을 두른 담장(壝) 및 계단지 등이 남아 있어 규모와 성격을 확인할 수 있었다. 발굴 조사된 석축단의 규모는 남북 19.5~6m, 동서 18.3~19.5m로 방형에 가깝다.
시는 조사 완료 후 원상을 복구하고 향후 보존 대책을 수립한다.
☞공감언론 뉴시스 woo@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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