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방역 모범국에 ‘빈대 팬데믹’ 공포…한국 대책에 쏠린 눈
“야행성 흡혈 벌레를 거의 퇴치했던 한국에 빈대가 출현해 공포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1960년대 이후 반세기 넘게 ‘빈대 청정국’에 가깝던 한국에 빈대가 출몰하자, 영국 가디언은 8일(현지시각) 이 ‘흡혈 벌레’에 대한 한국 사회의 반응을 언급하며 “한국 정부가 ‘빈대와의 전쟁’ 선포했다”고 전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상당수 한국인은 한번도 본 적 없는 벌레인 ‘빈대’가 대중의 공포를 불러일으켰다”고 보도했다.
한국에서도 1960년대만 해도 기차로 서울과 지방을 오가던 사람들이 “빈대 등쌀에 기차에서 잠을 못 자겠다”고 불만을 토로할 정도로 빈대가 흔했다. 그러나 정부 주도의 전국 빈대 퇴치 캠페인이 효과를 발휘했고, 이후 빈대 완전 박멸에 성공한 듯했다. 2014년 이후 10년간 빈대 신고도 9건에 불과했다. 하지만 최근 서울과 인천을 중심으로 빈대 출몰 신고가 급속히 늘어나자 오랫동안 이 문제로 몸살을 앓아온 영국·프랑스 등 해외에서도 배경과 대책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한국 정부는 지난 3일 행정안전부 등 10개 부처를 동원해 ‘정부 빈대합동대책본부’를 가동하고, ‘빈대 정보집’까지 만들며 빈대 퇴치 총력전에 나섰다. 정부는 정보집에서 “빈대는 빛을 싫어해 캄캄한 방에 조용히 들어가 갑자기 손전등을 비추면 어두운 곳으로 숨으려고 움직이는 빈대를 찾을 수 있다”는 팁까지 알려주고 있다. ‘빈대 청정국’이던 한국에 빈대가 다시 출몰한 배경에는 코로나19 세계적 대확산(팬데믹) 종료 뒤, 외국인 관광객이 대거 입국하는 과정에 빈대가 딸려 들어왔다는 분석이 나온다. 일부에선 국제 택배가 활성화하면서 중국, 영국 등에서 넘어온 소포 상자를 통해 빈대가 퍼졌을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국내에선 빈대가 낯설지만 국외 일부에선 여전히 가장 흔한 벌레의 하나다. 미국 비영리 민간단체인 해충관리협회(NPMA)가 내놓은 가장 최근 자료인 ‘국경 없는 벌레 연구’(2018년) 결과를 보면 조사 직전 1년간 해충 전문가 97%가 빈대를 퇴치한 경험이 있었고 해충 퇴치 문의 71%가 빈대에 관한 것이었다. 빈대가 출몰한 지역도 주택, 학교·어린이집, 병원, 대중교통뿐 아니라 인형, 휠체어, 지갑, 침대 등 장소를 가리지 않았다.
빈대는 5~6㎜ 크기 벌레로 1주일에 1~2회 정도 사람 등의 피를 빨아 생존하는데, 10분간 몸무게의 최대 6배까지 흡혈이 가능하다. 빈대에 물리면 대개 가려움증으로 끝나지만, 드물게 고열이 나고 염증 반응을 일으킨다. 꼭 빈대에 물리지 않더라 빈대를 떠올리는 것만으로 몸이 가렵고 오싹해지기도 한다. ‘빈대 공포증’을 겪는 사람 가운데는 실제 빈대가 없는 데도 괜한 공포감을 느끼거나 불안감, 심지어 불면증을 호소하는 사례가 있다.
임상 심리학자 헤더 세케이라 박사는 비비시(BBC)에 “무언가에 겁을 먹거나 불안해하면 몸은 ‘잠재적 위협’을 감지하기 위해 미리 높은 경계 태세를 취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심하면 ‘빈대 트라우마’로 이어질 수 있다고 한다. 다만 흔한 해충 가운데 하나인 빈대를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말라는 충고도 있다. 코넬대학교 곤충학자인 조디 강글로프-카우프만 박사는 “프랑스, 영국, 오스트레일리아 등에서 그동안 겪어 왔던 것으로, 새로운 사건이 일어나는 건 아니다”며 “2024년 올림픽을 준비하는 파리에서 소셜 미디어 영상이 벌레의 행동을 지나치게 자극적으로 보도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나타나는 빈대로부터 ‘안전지대’가 따로 없어 평소 빈대가 접근할 수 없는 환경을 만드는 게 최선의 예방책으로 꼽힌다. 비비시는 “옷을 뜨거운 물로 세탁하고 여행을 할 경우 숙소 벽에 밀착된 침대나 가구 틈새 등을 살피거나 진공청소기로 여행 가방을 깨끗이 청소할 것”을 당부했다.
홍석재 기자 forchi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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