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투명에서 투명으로…LG, 불펜 ‘내비게이션’ 켰다

안승호 기자 2023. 11. 9.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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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 유영찬이 지난 8일 한국시리즈 2차전에서 공을 던지고 있다. 정지윤 선임기자



LG 백승현이 지난 8일 한국시리즈 2차전에서 공을 던지고 있다. 정지윤 선임기자



사실, 벤치에서 내다볼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8일 한국시리즈 잠실 2차전의 LG 선발 최원태는 경기 전 불펜 피칭을 할 때만 하더라도 벤치의 기대감을 키울 만큼 밸런스가 안정적이었다. 주요 스태프 눈에도 구위와 제구 모두 합격점으로 보였다는 전언. 그런데 1회 마운드에 오른 최원태는 불펜에서와는 너무 달랐다. 무엇보다 제구가 급작스럽게 흔들렸다.

최원태가 아웃카운트 1개만을 잡으며 안타 2개와 볼넷 2개로 몰리자 LG 벤치는 서둘러 움직였다. 첫번째 ‘불펜 카드’ 이정용을 마운드에 올렸지만, 이런 상황은 ‘정말 만약에’라는 전제로 대비하던 시점이었다.

이정용 또한 100%까지는 몸을 풀지 못한 것으로 보였다. 이로 인해 추가 적시타를 맞아 최원태의 실점이 4점으로 불어나는 등 LG는 혼란의 1회를 보냈지만, 이후 8.2이닝이라는 ‘불펜의 시간’을 통해 ‘전화위복’의 기회를 만들었다.

LG는 눈에 보이는 1승을 건지면서 이후 시리즈를 위한 불펜 운용의 ‘내비게이션’을 찾아냈다.

전날 1차전만 해도, 염경엽 LG 감독은 비교적 보수적으로 불펜 운용을 했다. 기본 불펜투수 이력에 큰 경기 경험, 그리고 익숙함을 배경으로 실패 확률이 적은 카드를 먼저 썼다. 선발 케이시 켈리 이후에 이정용-함덕주-고우석으로 불펜 이닝을 채웠다. 구위만 보자면 기대하지만, 경험으로는 확신이 어려운 백승현, 유영찬 등은 살짝 후순위에 두는 모습도 보였다.

그러나 2차전의 비상 상황으로 LG는 이것저것 가릴 것 없이 불펜투수들을 쏟아부어야 했다. 그 과정에서 불투명했던 ‘길’이 투명해졌다.

김경태 LG 투수코치가 8일 한국시리즈 2차전 4회 정우영을 내리고 김진성을 올리고 있다. 정지윤 선임기자



수면으로 올라온 가장 도드라진 카드는, 올해 첫 1군 시즌을 보내는 우완 유영찬이었다. 유영찬은 2.1이닝 동안 삼진 2개를 잡아내며 무안타 무실점의 퍼펙트 피칭을 했다. 5회 2사 1·2루에서 올라온 유영찬은 ‘1차전 히어로’ 문상철을 만나 5구 승부 중 종으로 급히 가라앉는 슬라이더 4개를 앞세워 헛스윙 삼진 처리하고 7회까지 버티며 경기 중반 흐름을 가져오는 디딤돌 역할을 했다.

그에 앞서 나온 백승현도 0.2이닝 동안 안타 1개와 볼넷을 내줬지만, 정규시즌에 비해 모자람 없는 공을 던졌다. 여기에 3번째 투수로 등판한 사이드암 정우영도 1.1이닝 동안 2안타를 허용했지만, 전보다 훨씬 안정적인 제구로 볼카운트 싸움을 했다. 추후 경기에서 벤치의 계산을 선명히 할 수 있는 배경을 만들었다.

2차전에서 마운드를 바쁘게 오르내린 김경태 LG 투수코치 또한 이날 경기장을 빠져나가기 전 이 대목에 큰 의미를 뒀다. “백승현, 유영찬 같은 믿고 쓸 수 있는 카드를 늘린 것이 가장 큰 수확”이라고 말했다.

LG는 2차전 ‘불펜 혈전’을 통해 3차전 이후 경기 중후반 불펜 전력의 다양성과 선명성을 동시에 확보했다. 적어도 상황별 불펜 카드를 꺼내 들 때 망설일 일이 줄었다.

안승호 기자 siwo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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