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승조의 아트홀릭] "I am 렘브란트, 17세기 사진가예요"
■ 글 : 정승조 아나운서 ■
지금으로부터 400년 전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서양미술사의 거장이자 빛의 화가라 불리는 '렘브란트(Rembrandt van Rijn, 1606~1669)'는 자기 눈으로 본 당시의 세상을 어떻게 예술로 표현했을까.
이를 엿볼 수 있는 전시인 '렘브란트, 17세기의 사진가'가 열렸다. 개막 첫날 오픈런을 기록해 화제였고 이런 분위기는 계속 이어지는 중이다. 대구미술관에 따르면 전시 개막 날인 10월 31일부터 지난 7일까지 누적 방문객 5534명을 기록했다.
정승조의 아트홀릭은 이번 전시를 기획한 '이정희 학예연구사'를 만나 '렘브란트, 17세기의 사진가'의 주요 핵심을 물어보았다. 다음은 일문일답.
▮ 아트홀릭 독자들께 본인 소개 부탁드립니다.
2011년 대구미술관 개관 때부터 근무를 시작해 현재 전시를 기획하는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학예연구사 이정희라고 합니다.
▮ '렘브란트, 17세기의 사진가' 어떤 전시인가요.
렘브란트의 동판화 120여 점을 소개하는 대규모 전시입니다.
대구미술관과 네덜란드의 렘브란트 순회 재단, 벨기에의 판화 전문 미술관 뮤지엄드리드(Museum De Reede)와 협력해 1년간 준비했는데요. 렘브란트는 자화상과 초상화로 대표되는 유화뿐만 아니라 에칭과 드라이포인트 기법을 활용한 판화를 평생에 걸쳐 300여 점을 남겼습니다.
한마디로 '렘브란트의 판화가로서의 면모'를 충분히 느낄 수 있는 전시라고 보면 되겠습니다.
특히 전시는 사진이 발명되기 2세기 전, 마치 카메라의 렌즈와도 같은 시선으로 17세기의 세상과 당시 사람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작품에 담아낸 렘브란트의 시선에 주목하는데요. 이를 담은 렘브란트의 동판화 120점을 자화상, 거리의 사람들, 성경 속 이야기, 장면들, 풍경, 습작, 인물과 초상 등 7개의 카테고리로 나누어 소개합니다.
▮ 렘브란트는 의사들이 주문한 집단 초상화인 '니콜라스 튈프 박사의 해부학 강의(1632)'로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가장 유명한 화가가 되었습니다. 다른 화가들과 어떤 점이 달랐나요.
이 질문에 대해서는 렘브란트의 팬이자 추종자였던 '빈센트 반 고흐'의 말을 인용해 보겠습니다.
렘브란트가 세상을 떠나고 200년 뒤, 네덜란드에서 태어나 짧은 생을 살다 간 고흐는 생전 누구보다 렘브란트를 추앙하고 사랑했다고 전해집니다. 고흐는 동생 테오와 주고받은 편지에서 100번 가까이 렘브란트에 대해 언급하는데요. 그 가운데 이런 말을 합니다.
"화가 중에 한 사람, 오직 한 사람이라고 해도 좋을 렘브란트만이 가진 것이 바로 그 따뜻한 시선이란다. 그 가슴 저미는 다정함 말이야…"
렘브란트는 천부적으로 가지고 있었던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예술가로서의 천재성에 더해 자신을 둘러싼 세상과 그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과 생명, 사물에 대해 따뜻하고 통찰력 있는 시선을 지닌 예술가였습니다.
그의 이런 시선은 인물화, 풍경화, 종교화 등 모든 작품에 녹아있는데요. 바로 이런 점이 렘브란트의 천재성과 함께 그를 다른 화가들과 구분하는 지점이라고 볼 수 있지 싶습니다.
▮ 전시에선 렘브란트의 그림이 아닌 동판화를 대규모로 소개합니다. 여기에 주목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빛의 화가'로 불리는 렘브란트는 서양 미술 역사상 가장 위대한 화가로 꼽히는 거장 미술사가들로부터 '렘브란트 이후 판화의 역사가 다시 쓰였다'라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판화, 특히 동판화의 역사에 큰 획을 그은 독보적인 판화가였습니다.
그런데도 렘브란트가 판화의 역사를 다시 썼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의 위대한 판화가임은 의외로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요. 이번 전시를 통해 렘브란트의 유화와는 또 다른 차원의 세계를 보여 주는 동판화 작품들을 접하실 수 있게 준비했습니다.
▮ 렘브란트의 어떤 동판화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나요.
총 7개 파트로 분류한 전시작 120여 점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모두 렘브란트의 동판화 중에서도 대표성과 완성도 등을 고려해 엄선한 작품들인데요.
첫 번째 '자화상' 파트에서는 총 13점의 자화상을 전시 중입니다.
그 가운데 렘브란트가 화가로서 명성과 자신감이 높았던 1630년대 후반에 제작한 "돌난간에 기댄 자화상"을 주의 깊게 보시면 좋겠습니다. 전시의 메인 이미지로 사용하는 작품이기도 하고요. 렘브란트의 동판화 자화상뿐만 아니라 유화 등 전체 자화상을 놓고 볼 때도 대표작으로 꼽는 걸작입니다.
두 번째 '거리의 사람들' 파트에서는 귀족이나 신분이 높은 사람들이 아닌 서민이나, 농부, 거지 등 17세기 네덜란드의 평범한 사람들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세 번째 '성경 속 이야기'의 작품들은 작품의 질과 양 두 측면에서 렘브란트 동판화의 중심이 되는 작품들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병자를 고치는 예수'(1648년경), '십자가에서 내림'(1633) 등 걸작 동판화를 여러 점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네 번째 '장면들' 파트는 소재 면에서 '거리의 사람들'과 연결되는데요.
'거리의 사람들'이 하나하나의 '사람'에 집중하는 섹션이라면 여기서는 그 사람들이 만들어 내는 당시의 장면과 생활상, 사람들이 만들어 내는 이야기를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쥐 잡는 사람'(1632), '팬케이크 굽는 여자'(1635) 등 17세기 당시 네덜란드의 평범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 주는 아름다운 작품들이 여러 점 전시되고 있습니다.
전시의 다섯 번째 파트에서는 렘브란트가 살았던 평화로운 풍광을 소재로 하는 작품들을 소개하는데요.
렘브란트는 풍경을 다른 소재들에 비해 많이 다루지는 않았지만 그의 풍경 판화는 인물을 소재로 한 작품들 이상으로 완성도가 높고요. 작가, 특히 판화가로서의 역량을 십분 보여주는 걸작이라 할 수 있습니다. '시골집 세 채가 있는 길 가 '풍경'(1650), '옴발 풍경'(1645) 등을 눈여겨보시면 좋겠습니다.
그 외에 여섯 번째와 일곱 번째 섹션에서는 대표적인 습작과 인물 초상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 꼭 챙겨 봐야 할 작품 2가지를 꼽자면 무엇일까요.
출품작 하나하나가 다 의미 있지만 그중에서 성경 속 이야기를 소재로 한 '착한 사마리아인'(1633)과 아내를 소재로 한 '진주 머리 장식을 한 사스키아'(1634)를 꼽아 보겠습니다.
착한 사마리아인은 렘브란트가 다른 작가들과 구별되는 부분을 잘 보여 주는데요. 이번 전시의 제목을 가장 잘 대변하는 작품이고, 무엇보다 완성도가 매우 높은 작품이라는 이유로 꼽아 보았습니다.
두 번째 작품인 '진주 머리 장식을 한 사스키아'는 인간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가진 작가 렘브란트의 시선에 사랑과 배려가 더해졌을 때 나올 수 있는 가장 아름답고 섬세한 작품 중 하나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 렘브란트 전시를 위한 관람 방법이 있다면요.
동판화라는 매체의 특성상 작품들의 크기가 매우 작습니다.
전시실에 들어서자마자 놀라시거나 실망(?)하는 관람객들을 보았습니다. 우표만 한 크기의 자화상에서부터 A3용지 크기의 제법 큰 종교화까지 120여 점이 전시되고 있는데요.
1년 가까이 전시를 준비하면서 작품들을 세세하게 어지간히 보았다고 생각하는 저 자신도 전시실에 걸려 있는 작품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부분들을 계속해서 새로 발견하게 됩니다.
렘브란트의 걸작 동판화를 이렇게 한꺼번에 볼 수 있는 기회는 앞으로도 쉽게 오지 않을 터이니 전시를 보러 오신 분들께서는 작품 앞에서 충분히 시간을 가지고 감상하시기를 바랍니다.
렘브란트의 동판화는 '스쳐가면서'볼 수 있는 작품이 아니라, '들여다보아야 하는' 작품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손바닥만 한 종이 위에 '세상'을 담아낸 위대한 예술가의 작품을 오롯이 감상하시기 위해 작품 앞에서 멈추어 천천히 여유롭게 들여다보시면 좋겠습니다.
▮ 아트홀릭 독자들께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부탁드립니다.
인간과 인간성에 대해 회의를 품게 하는 일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는 요즘.
잠깐 멈추어서 400년 전에 살았던 위대한 인간이자 예술가가 자신을 둘러싼 당시의 세상과 주변 사람들을 바라보았던 시선을 따라가 보는 것은 작게나마 의미가 있는 일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하루 시간을 내어 미술관에 오셔서 위대한 예술작품을 통해 잠시 자신을 돌아보고 사색하실 수 있는 시간을 보내시게 되기를 바랍니다.
▮'렘브란트, 17세기의 사진가'는 현장 예매로 관람 가능하다. 관람료는 1천 원. 장소는 대구미술관, 월요일 휴관이다.
(사진 제공 : 대구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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