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진’이 알지니, 해동국 ‘볼매’…거장·거목·거창한 거기 어때![투어테인먼트]
강석봉 기자 2023. 11. 9. 09:47
가을 꽉 찬 ‘볼매’(볼수록 매력적인) 울진은, 그 매력이 차고 넘쳐 폭죽처럼 터져 버렸네. 선듯한 가을 냉기 ‘얼죽아’(얼어 죽어도 아메리카노)처럼 들이키다가 ‘딸꾹’~ 마초처럼 벌컥 단번에 마시다가 ‘에이취’~. 콧등까지 발갛게 달아오른 재채기에 우리 모두 목청껏 “God bless you”. 그 소리에 놀란 왕피천 용소의 그것들이 와르와르와르르. 용트림할 때마다 홍엽(紅葉), 황엽(黃葉), 갈엽(褐葉)들이 왕피천 계곡 물들이려 나풀나풀나푸르르 .
왕피천 용소…용트림 흔적일까
산에게 내어준 한걸음에 내 맘속 아집까지 탈탈 털렸다. 울진 왕피천 용소를 훔쳐보고 싶어, 약 65㎞의 정도가 아닌 용소까지 2㎞ 안팎의 샛길을 택하는 꼼수를 부렸다. 최대한 차를 산에 붙여 굴구지마을 상천관리초소편에서 출발해 30~40분 산을 돌파해 오롯이 용소만을 탐닉할 목적으로 불손한 산행에 나섰다. 워낙 저질 체력이라 꼼수 산타기에도 머릿속은 뒤죽박죽 헝클어졌다. 경사도가 장난이 아닌 산길이다. 딱 버티고 선 그들을 마주하니 눈은 저절로 아래로 깔렸다. 초반부터 주눅이 든 게 분명하다. 뒤로 물러설 수 없어 경사각을 치고 올라가고 아찔하게 내려가는 난코스, 발을 땅바닥에 질질 끌며 ‘아이고~아이고(Go)’.
더는 내어줄 게 없다. 그 짧은 산행에 내 가진 것을 모두 내놓아야 했으니, 남은 것은 거친 숨소리뿐이었다. 이미 땀은 흐르는 것을 포기하고 뚝뚝 떨어졌다. 두 발로 걷다가 네발로 기어야 했고, 요동치는 심장은 달궈진 프라이팬 위 소금처럼 이리저리 날뛰었다. 혀만 내놓지 않았을 뿐, 난 오뉴월 개보다 더 추한 꼴로 숨을 몰아쉬어야 했다.
동행들도 나를 걱정하느라 등산 속도를 떨궈야 했다. 한마디로 민폐남, 그 자체였다.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불쌍한 이내 심정. 한데 한 걸음 한 걸음이 무섭긴 하다. 끝내 목적지 용소가 눈 아래 펼쳐졌다. 왕피천의 최고 절경 앞에 탄성이 절로 나왔다. 보람찬 하루다. 가문 날이 이어졌지만 계곡은 지상 최고의 절경을 갈아 넣으며 용소의 이름값을 오롯이 지켜냈다. 고생 끝의 낙이다. 용소 언제나 용소하시라.
금강송 소나무숲…하늘을 향해 불쑥 솟아오른
울진금강소나무숲길은 역사와 의지의 컬래버다. 조선 시대 보부상의 애환이 서린 십이령옛길과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으로 지정된 금강소나무 군락지가 어우러진 길이다.
산림청이 국비로 만든 1호 국가숲길로, 2010년 7월1에 1구간이 열렸다. 총 7개 구간(79.4㎞)이 조성됐다. 가족탐방로(5.3㎞)에서는 울진금강소나무숲길의 상징인 오백년소나무를 만날 수 있다. 가족탐방로인 이유는 다른 구간보다 난도가 낮아 붙여졌고 그만큼 인기다. 점심 포함 3시간쯤 걸린다.
울진금강소나무숲길은 예약 탐방 가이드제를 시행하고, 탐방은 무료로 운영한다. 홈페이지 예약으로 선착순 마감하며, 예약은 탐방 3일 전까지다(화요일 휴무). 구간마다 탐방 인원을 하루 80명으로 제한하고, 숲 해설사가 안내한다.
이곳의 금강소나무는 사람들이 정성껏 가꾸고 보존한 덕에 나무 스스로 싹 틔워 자랄 환경이 만들어졌다. 2001년도 경복궁 수리할 때 140그루의 이곳 금강소나무가 쓰였다. 2004년 낙산사에 불이 났을 때, 그 수리를 위해 50그루의 금강소나무를 제공했다. 일반적 관례에 따르면 사찰에는 금강소나무를 주지 않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그루당 7000만 원에 제공했다고. 그 가격은 오르고 올라 현재는 1억 원을 호가한다는 것이 정설이다.
더불어 불영사에 이르는 불영계곡에도 다리맵시 미끈한 금강소나무가 즐비하다.
한 울진 후정리에 기품있는 모습의 500년 된 향나무가 있다. 울릉도에서 떠내려와 이곳에 뿌리를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이현세만화벽화마을…60년 된 다방 등 레트로 천지
꼰대들의 아이콘이 마을을 살리는 콘텐츠가 됐다.
80년대를 휩쓴 이현세 작가의 만화가 벽화처럼 매화마을을 씨줄과 날줄로 엮어 마을에 생기를 돌게하고 있다. 동맥경화로 꽉 막혔던 마을의 혈맥을 이현세의 대표 작품인 ‘공포의 외인구단’의 주인공 까치와 엄지가 속 시원히 뚫어 놓았다.
이 작품은 이장호 감독에 의해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이 영화의 OST로 삽입된 ‘난 너에게로’는 가수 정수라가 부르며 가요순위에서 20주 넘게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매화 마을이 이현세만화벽화마을로 변신한 건 황춘섭 이장 등 전 주민들이 힘을 합쳐 노력한 결과다.
지난 2015년 허물어져 가는 농협 담벼락에 매화중학교 학생 16명에게 자신들의 꿈을 벽화로 그리는 작업을 시킨 것이 계기가 됐다.
현재 매화마을에 그려진 이현세 작가의 그림은 이 작가의 처남인 안창회 화백이 원본과 똑같이 완벽하게 재현해 냈다.
현재 매화이현세만화벽화마을 골목골목 담에는 이현세 작가 대표작인 ‘공포의 외인구단’을 비롯해 ‘남벌’, ‘만화 삼국지’, ‘며느리밥풀꽃’, ‘창천 수호지’ 등 약 500여 점이 그려져 있다. 3개의 테마로 이현세 최고의 거장을 만날 수 있다.
벽화만 있는 것이 아니다. 남벌열차카페는 이 동네의 랜드마크다.
남벌열차카페 뒤편에 조성된 공포의 외인구단 3인방인 까치, 마동탁, 엄지의 브론즈상.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의 사진촬영 명소다
만화와 애니메이션에서 지역 강자인 덕인지, 웹툰영화제도 이곳에서 열린다. 올해 2회째로 이현세 작가도 참석해 자리를 빛냈다.
매화마을 탐방도 재미있다. 약 60년 된 삼일다방에서는 동네 어르신이 짜장면을 드시는 모습을 볼 수도 있다. 80년 전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옛집이며 70년대 마을 목욕탕도 외지인에게도 개방할 예정이다. 레트로가 세트로 다가온다. 이외에도 매화역사관, 만화도서관 등 돌아볼 곳이 무궁무진하다.
그랑블루 펜션…길이 멈춘 곳에서 인연 만난다
울진의 그랑블루 펜션은 동해안에서 가장 먼저 해가 뜨는 경북 울진군 울진읍 대나리항 바닷가 바로 앞에 있다. 두말이 필요 없는 일출 맛집이다.
그 길 끝나는 곳에서 마주하게 되는 이 펜션은, 새로운 인연이 시작되는 출발점이 되는 행운을 가져다주기도 한다. 기자는 이곳에서 비박을 하며 전국을 도보로 일주하는 여행자를 만나기도 했다.
한 투숙객 중 스쿠버다이빙을 즐기려 잠수복을 입고 바다로 향하는 모습에선 영화 하나가 눈앞을 스쳤다.
펜션 이름인 ‘그랑블루’를 떠올리면 푸른 물감이 뚝뚝 떨어질 듯한 뤽베송 감독의 동명의 영화가 눈앞에 퀵배송돼 펼쳐졌다. 꼭 30년 전 국내 개봉한 이 영화는 1만 일이 지난 지금도 한 장면 한 장면이 팬들의 가슴 속 남아 있다. 그 조각 중 일부가 이곳 펜션에 녹아있다.
이곳은 다양한 추억을 남길 수 있는 체험형 숙박시설로, 인근 매화이현세만화벽화마을을 찾은 관광객이 즐겨 머무는 곳이기도 하다.
그랑블루 펜션에 투숙한 관광객들이 펜션에서 약 100m 정도 거리에 조성된 미니 백사장에서 탁 트인 바다를 즐길 수도 있다.
하얀색의 2층 단독 건물로 된 그랑블루 펜션은 일반 원룸식으로 4인용부터 10명이 투숙할 수 있는 대형 룸까지 준비되어 있어 단체 투숙객들에게도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펜션이다.
바다가 코 앞이다 보니 잠자리에서도 파도 소리가 들린다.
강석봉 기자 ksb@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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