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적인 홈런에도 고우석은 기뻐하지 않았다…그저 묵묵히 등판 준비를 계속했다

백종인 2023. 11. 9.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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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SEN=잠실, 지형준 기자] 2차전 승리를 마무리한 고우석이 박동원과 손을 맞잡고 있다. 2023.11.08 /jpnews@osen.co.kr

[OSEN=백종인 객원기자] 어제(8일) 박동원의 홈런은 극적이었다. 역대 한국시리즈의 인상 깊은 순간 중 하나로 기억될 법하다. 그만큼 시리즈 전체에 미치는 영향이 클 것으로 보이는 한방이다.

그 시간을 가장 즐긴 것은 트윈스 팬들일 것이다. ‘밤새 그 장면 돌려보느라 잠을 설쳤다’, ‘술집에서 너무 소리 지르다가 싸움 날 뻔했다’, ‘벌써 5차전 티켓 예매를 서두르고 있다’ 등등의 반응이다. 심지어 ‘어느 중계방송 캐스터의 샤우팅이 더 마음에 드냐’는 품평까지, 승리의 여운에 한껏 취한 모습이다.

트윈스가 제공한 트랙맨 데이터에 따르면 박동원의 홈런은 타구는 각도 27.27도, 시속 166km의 속도로 발사돼 122.27m의 거리를 날아갔다. ‘딱’ 하는 타구음부터, 좌중간 담장 넘어 관중석에 착륙할 때까지 비행시간은 약 5.3초가 걸렸다. 이어 덕아웃에서 펼쳐진 격렬한 환영식까지 1~2분간은 여러 인상적인 장면이 담겼다.

① 뒤로 넘어갈 뻔한 ‘호부지’

타구가 까마득히 솟아오른 시점. 덕아웃의 모든 시선은 초집중 상태다. 그리고 밤하늘의 하얀 점이 담장 너머로 사라진 순간, 각자의 방식으로 환희의 감정을 폭발시켰다.

그 짧은 시간에 벌써 그라운드로 뛰어든 선수들이 여럿이다. 그중 한 명이 김현수다. 놀라운 순발력으로 덕아웃을 뛰쳐나와 생애 최고의 점프력을 발휘한다. 홈런의 감격을 가장 확실하게 나타내며 박동원의 멋진 배경 화면을 만들어 준다.

눈길을 끄는 것은 장면 한 켠의 씬 스틸러다. 조용히 지내던 타격 코치가 어느새 두 손을 번쩍 치켜들고 120%의 감정을 터트린다. 흡사 뒤로 넘어갈 것 같은 포즈다.

아마도 특별한 감격에는 남다른 감회가 엿보인다. ‘다른 팀 감독으로 내정됐다’는 보도 탓에 이래저래 마음 씀이 있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선수단에도 양해를 구했다는 후문이다. 괜한 일로 신경 쓰게 만든 것이 마음에 걸린 탓이리라. 그런 찜찜함까지 후련하게 날린 한방이었다.

MBC TV 중계 화면 캡처

② ‘정후 아부지’를 펄쩍 뛰게 만든 배트 플립

얼마나 몰입했을까. 2만이 넘는 잠실 구장의 모든 사람이 타구를 쫓는다. 타석의 당사자는 오죽하겠나. 공을 따라가느라 정신없다. 그러다 보니 배트를 쥐었는지, 놓았는지도 모르는 것 같다. 거의 1루에 다다를 때까지 여전히 손에 남아있다.

그리고 홈런을 확인한 순간 맹렬한, 그러나 조금은 빗나간 빠던(배트 플립)이 펼쳐진다. 지나친 흥분으로 미처 방향을 확인하지 못하고, 냅다 내던진 것이다.

마침 축하해 주러 홈 플레이트로 달려가던 1루 코치의 주루 선상과 겹쳤다. 자칫 주루 방해(?)를 범할 뻔한 장면이다. 다행스럽게도 상대는 바람의 아들이다. 상당한 나이(53)에도 여전한 순발력을 자랑한다. 가벼운 점프로 날아오는 방망이를 뛰어넘는다.

MBC TV 중계 화면 캡처

③ 히딩크-박지성 커플이 떠오른 염갈량과의 포옹

덕아웃은 폭발 직전이다. 영웅을 영접하기 위해 모두가 양팔을 한껏 벌렸다. 그 속으로 펄쩍펄쩍 뛰는 참치가 입장한다. 그를 향한 환호와 격렬한 하이 파이브가 사방에서 펼쳐진다.

그 순간이다. 사회생활 만랩 퍼포먼스가 클로즈업된다. 다른 사람에게는 그저 손바닥 하나만 내줬을 뿐이다. 하지만 이번 목적지는 다르다. 감독 앞으로 달려가 가슴을 온통 허락한다. 진하디 진한 포옹이다. 2002년 히딩크와 박지성 커플이 생각난다.

왜 아니겠나. 히어로즈 시절부터 각별하다. 그 지도자 아래서 큰 포수다. 시즌 중 한참 잘 나갈 때는 감독석에도 아무렇지 않을 정도로 허물없는 사이다. 물론 염갈량도 마찬가지다. 승장 인터뷰 때는 꿀이 뚝뚝 떨어진다. ‘박동원’이 아니라 ‘동원이’로 호칭한다. 하긴,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으리라. 모처럼 활짝 웃게 해준 제자 아닌가.

MBC TV 중계 화면 캡처

④ 묵묵하게 복수의 칼을 가는 '외로운 무사'

잠실벌이 온통 감격과 환희, 절망에 휩싸였을 때다. 전혀 다른 분위기의 한 곳이 있다. 1루 쪽 홈 팀의 투구 연습장(불펜)이다.

당시 장면을 리플레이해 보자. 투런포가 확인됐다. 관중석은 온통 난리가 났다. 타자는 양손을 번쩍 펼치며 그라운드를 일주한다. 1루 쪽 덕아웃에서도 미친 듯한 함성이 터진다. 몇몇은 그라운드로 뛰쳐나간다. 마치 끝내기라도 나온 듯이 껑충껑충 뛰며 기쁨을 나눈다.

그런 와중이다. 바로 옆 불펜은 냉정함을 잃지 않는다. 어마어마한 소리에는 힐끗할 뿐이다. 곁눈으로 홈런을 확인한다. 그게 끝이다. 아무런 내색도 없다. 그 흔한 주먹 불끈이나, 박수, 심지어 희미한 미소조차 안 보인다. 평상시 그대로다. 마운드 위에서 꼼짝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환호하던 불펜 포수들이 머쓱할 지경이다.

박동원이 일주하는 장면은 쳐다보지도 않는다. 환호하는 눈앞의 관중석, 덕아웃 동료들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저, 묵묵히. 아무 일 없는 듯 다시 투구판을 밟고, 연습 투구를 이어간다. 마치 외딴 곳에서 홀로 복수의 칼을 가는 외로운 무사의 모습이다.

잠시 후 9회 초. 외로운 무사가 마운드에 오른다. 홈 팀의 8번째 투수다. 그리고 타자 3명을 너끈하게 막아낸다. 삼진-삼진-땅볼. 쾌도난마의 완벽한 모습이다. 전날의 굴욕을 씻는, 생애 첫 한국시리즈 세이브 기록이었다.

MBC TV 중계 화면 캡처

/ goorada@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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