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은하지만 강렬한 대드 코어

오한별 프리랜서 기자 2023. 11. 9. 09:06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놈코어, 고프코어, 어글리 패션, 애슬레저 룩. 매 시즌 늘 다른 이름과 모습으로 패션계에 존재해왔던 ‘대드 코어(dad core)’. 넉넉한 실루엣의 배바지와 셔츠, 빛바랜 볼캡과 투박한 스니커즈까지. 이번 시즌에도 런웨이에서 은은한 존재감을 뿜는 아빠들의 패션, 대드 코어에 주목할 것. 

‘패션’과 '아버지’란 단어는 어딘가 모르게 어색하다. 화이트 셔츠와 넥타이, 몸에 꼭 맞게 재단된 정장 차림을 '남성 패션’이라 부르긴 하지만 '아버지 패션’으로 보는 사람은 드물다. 하지만 최근 들어 아버지 패션이 새삼 주목받고 있다. 본격적으로 눈길을 끌기 시작한 건 2018 S/S 발렌시아가 쇼 직후부터. 실제 자신의 아이를 안은 젊은 아빠가 런웨이를 채운 컬렉션으로, 모델들은 마치 패션에 무신경한 아버지처럼 멋대로 옷을 입었다. 발렌시아가의 디자이너 뎀나 바잘리아는 "날씨 좋은 날, 아이들과 공원에 놀러 나온 젊은 아빠로부터 영감을 얻었다"고 밝힌 바 있다. 온전히 아버지라는 존재가 쇼의 주인공이 된 셈이다. 뎀나 바잘리아가 평범한 룩으로 파격적인 컬렉션을 선보이면서 이후 패션계에서는 '아버지의 옷장을 뒤져라’라는 특명이 유행처럼 번지기 시작했다. 아버지와 평범함을 추구하는 놈코어를 합친 신조어, 이른바 '대드 코어’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발렌시아가 이후 마틴로즈, 키코 코스타디노브 등 디자이너들이 아버지 옷장에서 방금 꺼낸 듯한 재킷과 점퍼를 선보였다. 어떤 것은 일밖에 모르는 비즈니스맨 같기도 하고, 또 어떤 것은 노상에서 소주 한잔 기울이는 아저씨의 옷차림을 옮겨온 듯했다. 이후에도 대드 코어는 다양한 이름과 룩으로 변주됐다. 자유롭고 평범한 옷을 입는 놈코어를 지나 아웃도어와 일상 룩을 개성 있게 믹스하는 고프코어가 되기도 했다. 또 일상에서 입는 스포츠웨어를 뜻하는 애슬레저 룩과 배바지, 넉넉한 셔츠, 무채색 외투와 뉴발란스 운동화로 대표되는 어글리 패션으로 불리며 패션계를 누볐다.

이처럼 몇 시즌째 인기를 누리고 있는 대드 코어 스타일은 점점 더 근사하게 진화 중이다. 그 증거는 2023 F/W 런웨이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아버지들의 '소울템’인 흰색 '난닝구’를 데님 팬츠와 매치해 세련되게 해석한 보테가베네타, 아버지의 출근용 양복을 트렌디한 스타일로 재현한 발렌시아가와 구찌가 대표적이다. 디올옴므는 배바지가 우스꽝스럽다는 고질적인 편견을 덜어내고, 셔츠를 넣어 있는 힘껏 추켜올렸다. 셔츠에 마치 팔 토시를 끼운 듯한 디테일은 디자이너 킴 존스의 위트가 돋보이는 부분! 늘 편한 게 최고라는 아버지들의 우선순위는 바로 실용성. 비앙카손더스는 셔츠와 트라우저즈 위에 투박한 점퍼를 걸쳐 현대적인 고프코어 룩을 선보였다. 이 밖에도 회색 후드 티셔츠와 조거 팬츠 셋업을 런웨이에 올린 지방시와 트랙 슈트를 멋스럽게 구현한 스텔라매카트니, 아빠의 데일리 OOTD인 피케 셔츠를 재해석한 에트로까지. 엄마도 딸도,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던 아버지 패션은 이번 시즌 런웨이에서 가장 패셔너블한 호시절을 맞이하게 됐다.

그렇다면, 대드 코어는 런웨이에서만 흥하느냐? 그것도 아니다. 이미 우리가 다들 알 법한 셀럽들은 평소에도 대드 코어 룩을 즐기는 중이다. 대표적으로 헤일리 비버와 저스틴 비버는 평소 버켄스탁이나 피셔맨 샌들에 흰색 양말을 자주 신는 등 대드 코어의 정석을 보여준다. 켄달 제너도 푸근한 빈티지 카디건과 버켄스탁의 조합을 자주 선보이는 셀럽 중 하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촌스럽거나 이질적이지 않은 이유는, 매치하는 아이템을 간결한 디자인으로만 조합하기 때문. 대드 코어 하면 빠질 수 없는 아이템은 단연 빛바랜 볼캡과 어글리 스니커즈다. 테일러 스위프트는 아빠의 서랍장에 잠들어 있을 법한 프린트 티셔츠와 투박한 어글리 스니커즈, 볼캡으로 마무리했다. 모델 에밀리 라타이코프스키는 빈티지한 가죽 재킷과 볼캡, 조거 팬츠와 스니커즈의 조합으로 당장 따라 하고 싶은 대드 코어 스타일을 선보였다.

지극히 평범한 아이템으로 손쉽게 꾸밀 수 있는 대디 코어 룩. 어찌 보면 평범한 일상을 누리고 싶은 시대를 반영한 스타일이 아닐까? 화려함에 지치거나 압도될 땐 수수하고 담백한 대드 코어 룩에서 휴식을 찾아볼 것.

#대드코어 #아빠패션 #쿨대디스타일 #여성동아

사진출처 인스타그램 
사진제공 발렌시아가 스텔라매카트니

오한별 프리랜서 기자

Copyright © 여성동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