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카카오’ 김범수 창업자가 바로세워야 할 일은
김범수 카카오 창업자에게는 양면성이 있다. 공대 출신 개발자 경영인으로서 사업에만 몰두했고, 개인의 자율성을 존중했으며, 실패를 용인해줘야 성공이 나온다는 철학이 명확했던 것 같다. 이른바 대관 업무에 익숙하지 않아 (또는 대관 업무가 싫어서) 규제당국과 언론으로부터 과도하게 공격당한 측면도 있을 것으로 짐작한다. 그래서 김범수 창업자는 억울할 수도 있다. 하지만 바로 지금이 중요하다. 이 고비를 넘겨야 2000년대 슈퍼스타 국민 기업의 창업자로서 좋은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어린 시절부터 외국 나가서, 본 것이라고는 외국 브랜드밖에 없어 그것을 한국에 들여오는 게 신사업인 재벌 3~4세보다는 낫지 않은가.
■ 카카오 위기 징후는 2년 전에 있었다 국민주라고까지 불리는 카카오가 망가지게 된 과정에 여러 가지 의문점이 있지만, 그중 가장 이상한 것은 김범수 창업자의 태도이다. 카카오 그룹에 이상 징후가 보이기 시작한 것은 올해가 아니라 2021년 초반이며, 카카오·카카오뱅크·카카오페이·카카오게임즈 등 4개의 상장계열사 주가가 본격적으로 하락하기 시작한 것도 2021년 하반기다. 무려 2년이 넘는 기간 동안 그는 과연 무슨 생각을 했던 것일까?
상징적인 두 가지 사건이 있다. 2021년 1월 한겨레가 단독보도로 김범수 개인회사 케이큐브홀딩스의 미스터리를 제기했다. 카카오 그룹의 실질적 지주회사 역할을 하는 ㈜카카오의 지분을 약 11%(2대 주주)나 가지고 있는 이상한 옥상옥 지주회사였다. 더 문제는 김범수의 아들·딸이 투자를 배운다는 명분으로 근무하고 있었으며 대표이사는 동생, 김범수 부부는 기타 상무이사였다. ㈜카카오로부터 받는 배당금이 가족급여로 나간다는 의심을 사기에 충분했다.
2021년 12월에는 카카오 그룹이 이른바 카카오페이 먹튀 사건을 통해 시장에 충격을 주었다. 카카오페이 경영진 8명이 상장 후 21일만인 2021년 11월 24일에 스톡옵션을 동시에 행사해 카카오페이 주식 44만주를 취득했다. 이후 16일만인 2021년 12월 10일에 경영진 8명이 동시에 주식 44만주 전량을 시장에 매각하는 유례없는 일이 일어났다. 매각가격이 취득가격(스톡옵션 행사가격)의 40.8배고, 매각차익은 총 877억6천만원에 이르렀다.
위 두 가지에 창업자 경영철학의 특성이 고스란히 보인다. 22개 개발도상국 대기업 CEO를 상대로 한 연구가 보여주는 것은 창업자는 주주를 챙기지 않는다. 상장을 했음에도 내 개인회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회삿돈을 가지고 내 가족을 챙겨도 무방하다. 두 번째, 창업자에게 주주보다 훨씬 중요한 이해관계자는 내부임직원들, 특히 나와 인연이 있는 임원진들이다. 지배구조가 좋지 않은 기업은 특히 임원들만 더 챙긴다. 그렇지 않고서야 재계서열 15위인 카카오 그룹 경영진, 그것도 전문경영인 8명이 이렇게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면서 회사의 평판에 먹칠하기도 쉽지는 않다.
■ 계열사 자율경영이 문제? 아니다!
지난달 23일 SM엔터테인먼트 인수과정에서의 시세조종으로 김범수 창업자가 금융감독원 포토라인에 서는 날 언론에서는 카카오가 내부에 계열사 협의체를 만들 것이라는 소식이 흘러나왔다. 한마디로 카카오판 삼성식 미래전략실을 만들겠다는 것이고, 그 근저에는 계열사 자율경영이 문제의 핵심이라는 인식이 깔려있었다. 과연 그럴까? 이전 재벌의 사례에서 보면 다수의 계열사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조율이 필요한 측면도 존재하지만 많은 경우 그룹의 이익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총수의 사익 편취, 지배권 유지·승계의 계획을 짜는 곳이 컨트롤타워였다. 권한만 강하고 책임은 안 지는 조직으로도 유명했고, 개별 계열사의 이사회를 무력화시키고 독립경영을 침해하기도 했다. 김범수 창업자와 끼리끼리가 모여서 뭘 하겠느냐는 비판이 나오자 카카오는 외부의 독립적인 ‘준법과 신뢰위원회’라는 카드를 들고 나왔고 김소영 전 대법관을 위원장으로 위촉했다. 이 역시 삼성의 ‘삼성준법감시위원회’를 벤치마킹한 거 같다.
여기서 카카오는 두 가지를 기억해야 한다. 준법감시기구는 일종의 시작점일 뿐 태생적으로 권한과 책임이 불명확할 수밖에 없다. 개별 계열사를 감독하고 제언을 한다는 것인데 이는 향후에 서로에게 책임을 미루기 딱 좋은 구조다. 또 이렇게 한 회사에 속하지 않은, 법적 실체가 불분명한 느슨한 연합체 형식의 준법감시기구는 한국 재벌이 만들어 낸 독특한 기구다. 삼성이 총수 이재용 회장의 실형을 피하기 위해 2020년 급조한 것이 대표적이다. 향후 김범수 및 경영진들의 형사처벌 면피용으로 생각한다든가 여론의 소나기 피하기용으로 생각한다면 지금이라도 철회하는 게 맞는다.
또 하나 결국 중요한 것은 개별 계열사 차원에서의 과거로 회귀하지 않는 지배구조 개선이다. 카카오 문제의 근원이 김범수 및 경영진의 도덕적 해이라면 독립적 준법감시기구의 역할은 개별 계열사의 지배구조 개선 의제를 명확히 제시하고 이를 개별 계열사의 이사회를 통해 제도로 관철하는 것이다. 필자가 생각하는 중요 의제는 다음과 같다.
■ 준법감시기구가 명망가 놀이터가 안되려면 첫째, 개별 계열사 이사회에 실질적 독립성을 가진 사외이사가 들어갈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형식적 독립성, 다양성을 추구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예를 들면 회사 정관을 통해 감사위원회 전원을 ‘3%룰’을 통해 지배주주의 입김을 제거하고 뽑는 것이다. 케이큐브홀딩스 사건이 터지고 카카오는 ESG위원회를 만들었는데 그 의장을 김범수가 하고 있다. 자기가 자기를 감시하고 싶은 건가?
둘째 정관을 통해 임원의 자격조건을 강화하는 것이다. 김범수의 자기 사람의 실수에 대한 관대함은 좋은 측면도 있었겠으나, 그걸 시장에서 투자자들이 봐주기에 카카오는 이미 너무 커버렸다. 또, 경영진의 일탈에 대한 가장 강력한 제어는 사후처벌이다. 이 처벌은 단순히 감옥에 가는 것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예를 들어 이번에 시세조종 관련해 구속된 배재현 카카오 투자총괄 대표도 최종판결이 날 때까지 법적으로는 대표직을 유지할 수 있다. 최종판결 전이라도 기업가치에 해를 끼친 임원에 대한 해임·복귀 불가 등 회사 스스로 책임을 묻는 지배구조 개선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언론에서는 엉뚱하게 시세조종으로 카카오가 처벌되면 카카오뱅크의 대주주자격을 잃는다는 것에 포커스를 맞추지만 이게 대법원에서 확정판결 받기까지 10년이 걸릴 수도 있다.
셋째 카카오모빌리티 등 비상장 계열사의 상장, 즉 이중상장 문제에 대해서 명확한 해법을 마련해야 한다. 이미 여러 투자자에게 상장을 전제로 투자를 받아 놓은 상태이고 임직원들에게 스톡옵션도 부여해서 풀기 힘든 난제이겠지만 이 정도의 개선안 없이 내부통제기구 딸랑 만드는 거로 끝나면 최악의 시나리오이다. 재계 1위 삼성의 계열사가 64개인데 계열사를 147개로 불려온 카카오의 원죄이기도 하다.
넷째, 카카오 그룹이 임직원들에게 주식 관련 보상을 주기로 유명한데 적어도 임원들에게 주는 스톡옵션은 부여 후 행사·매각까지의 기간을 길게 가져가고, 행사·매각에서 여러 조건을 부여하여 주식 장기보유를 유도해야 한다. 경영진들의 목표가 ‘따상’에 있으면 일반 직원이나 주주가 ‘따상’에 관심 있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이창민 한양대 교수(경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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