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런 만큼 짜릿했던 154km 철벽 마무리 부활…LG에 1승 그 이상인 이유
[스포티비뉴스=윤욱재 기자] 우리가 알고 있던 '철벽 마무리' 고우석(25·LG 트윈스)의 모습 그대로였다.
LG 트윈스가 21년 만에 한국시리즈 승리를 거머쥐었다. LG는 지난 8일 서울 잠실구장에서 열린 '2023 신한은행 SOL KBO 포스트시즌' 한국시리즈 2차전에서 KT 위즈를 5-4로 제압하고 시리즈 전적 1승 1패로 균형을 맞추는데 성공했다.
한일 월드컵이 열렸던 2002년 이후 처음으로 한국시리즈 무대를 밟은 LG는 무려 7671일 만에 한국시리즈에서 승리를 거두는 감격적인 순간을 맛봤다. 이날 경기 전까지는 2002년 삼성 라이온즈와의 한국시리즈 5차전을 8-7로 승리한 것이 LG의 마지막 한국시리즈 승리 기록이었다. 당시 승리투수는 2년차 우완 이동현이었고 세이브를 거둔 투수는 장문석이었으니 세월의 무게감을 짐작할 수 있다.
사실 이날 LG는 경기 시작부터 2연패를 당할지도 모르는 불안감에 휩싸였다. 선발투수 최원태가 1회부터 흔들리면서 ⅓이닝 만에 강판을 당한데다 LG가 1회에만 무려 4실점을 하면서 어렵게 출발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LG는 좌절하지 않았다. 3회말 신민재가 2루 도루를 시도하다 아웃을 당하면서 기운이 빠지는 듯 했지만 홍창기의 볼넷과 박해민의 투수 방면 내야 안타로 만든 2사 1,3루 찬스에서 오스틴 딘의 좌전 적시타가 터져 1점을 만회한 LG는 6회말 1아웃에서 터진 오지환의 우월 솔로홈런으로 1점을 더했고 7회말 2사 1루에서 김현수의 우전 적시 2루타가 터지며 3-4 1점차로 접근하는데 성공했다.
하이라이트는 8회였다. 8회말 오지환이 볼넷으로 출루하자 문보경이 투수 희생번트를 성공, 1사 2루 찬스를 잡은 LG는 박동원이 주저하지 않고 풀스윙을 하면서 좌중월 역전 2점홈런을 때려 5-4 역전을 해낼 수 있었다.
사실 LG가 5-4로 역전한 비결에는 투수들의 호투도 빼놓을 수 없다. 사실상 '불펜데이'로 운용할 수밖에 없었던 LG는 이정용이 1⅔이닝 3피안타 무실점, 정우영이 1⅓이닝 2피안타 무실점, 김진성이 ⅔이닝 동안 피안타 없이 무실점, 백승현이 ⅔이닝 1피안타 무실점, 유영찬이 2⅓이닝 동안 피안타 없이 무실점, 함덕주가 1이닝 동안 피안타 없이 무실점으로 버티면서 역전의 근간을 만들었다.
이제 남은 것은 딱 하나. 바로 9회초 KT의 추격을 막는 일이었다. LG는 마무리투수 고우석을 마운드에 올렸다.
고우석은 전날(7일) 한국시리즈 1차전에서도 등판했지만 9회초 문상철에게 큼지막한 결승 2루타를 맞고 고개를 숙였던 아픔이 있었다. LG는 고우석이 결정적인 한방을 맞으면서 2-3으로 석패했고 시리즈 기선제압에 실패했다.
그럼에도 LG는 고우석을 한번 더 믿었다. 그리고 고우석은 최고 154km에 달하는 강속구로 그 믿음에 화답했다.
KT는 9회초 시작부터 벤치에서 내세울 수 있는 최고의 대타 카드인 김민혁을 타석에 세웠으나 고우석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130km 커브를 던져 헛스윙 삼진을 이끌어냈다. 이어 등장한 조용호도 마찬가지. 150km대 강속구를 연신 뿌린 고우석은 역시 직구로 정면승부를 하면서 삼진 처리를 했다. 고우석의 마지막 아웃카운트 제물은 김상수였다. 김상수를 2루수 땅볼 아웃으로 잡는데 154km 직구 2개면 충분했다.
결국 고우석이 1점차 박빙 리드를 사수하면서 LG는 5-4로 승리할 수 있었고 잠실에서 열린 1~2차전을 1승 1패로 마무리하며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단순한 1승이 아니었다.
경기 후 염경엽 LG 감독도 만족감을 나타냈다. 염경엽 감독은 고우석에 대해 "1차전도 고우석의 구위는 나쁘지 않았다. 실투 하나를 상대가 잘 쳤다. 결과가 좋지 않았지만 고우석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선수와 나, 코칭스태프 모두 (고)우석이한테 자신감을 심어주는 말을 많이 했다. 우리 마무리 투수로서 지켜줘야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 좋지 않았던 부분과 직구가 날리면서 변화구를 활용한 점 등을 이야기했다. 직구를 똑바로 잡으니 제구가 됐다. 앞으로도 기대된다"라고 말했다.
고우석은 이번 한국시리즈의 키플레이어 중 1명으로 지목된 선수. 지난 해만 해도 61경기에서 60⅔이닝을 던져 4승 2패 42세이브 평균자책점 1.48로 특급 마무리투수의 위용을 떨쳤던 고우석은 올해 정규시즌에서 44경기에 나와 44이닝을 던져 3승 8패 15세이브 평균자책점 3.68을 남기면서 기쁨보다 아쉬움이 더 컸던 시간을 보냈다.
아무래도 몸 상태가 끼친 영향이 있었다. 고우석은 올해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과 항저우 아시안게임 대표팀을 다녀오면서 바쁜 일정을 소화했고 어깨와 허리 상태도 온전치 않았다.
하마터면 한국시리즈 출전도 무산될 뻔했다. 고우석은 지난 1일 잠실구장에서 상무와 연습경기에서 9회 마운드에 올랐으나 투구 도중 몸에 이상을 느꼈고 벤치에 교체 신호를 보냈다. 허리에 근육통이 생긴 것. 고우석은 곧장 병원으로 향해 검진을 받았다. 다행히 단순 근육통이라는 소견을 받았고 한국시리즈 개막 전까지 회복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가졌다.
아무리 고우석이 지난 해 만큼 '언터쳐블'의 모습을 보여주지는 못했다고 해도 지금 LG에 고우석을 대체할 선수는 없어 보인다. 그야말로 '대체불가'인 선수다.
LG가 과거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할 때도 '특급 마무리'가 존재했다. LG는 창단 첫 해인 1990년 삼성과의 한국시리즈에서 4연승을 거두고 대망의 첫 우승을 차지했다. 대구구장에서 열린 한국시리즈 4차전에서 마지막 아웃카운트를 잡고 오른 팔을 번쩍 들어올린 선수는 바로 정삼흠이었다. '두뇌 피칭'의 대가로 유명했던 정삼흠은 1990시즌 8승 9패 23세이브 평균자책점 2.78로 LG의 뒷문을 지켰다. 정삼흠의 통산 세이브 개수는 47개. 그 중 절반에 가까운 23세이브를 1990시즌에 따냈다.
아직까지도 LG의 마지막 한국시리즈 우승으로 남아있는 1994년에도 '노송' 김용수라는 든든한 마무리투수가 있었다. 김용수는 1994년 5승 5패 30세이브 평균자책점 2.56을 기록하면서 생애 첫 30세이브를 달성, 특급 마무리투수의 위용을 떨쳤다. 당시 태평양 돌핀스의 정명원이 사상 첫 40세이브 시대를 열면서 구원왕에 등극하지는 못했지만 LG가 정규시즌과 한국시리즈를 모두 제패할 수 있었던 원동력에는 김용수가 지키는 뒷문이 큰 몫을 차지했다.
김용수는 태평양과의 한국시리즈 4차전에서 김성갑의 땅볼을 직접 잡고 두 팔을 번쩍 들어 올렸고 침착하게 1루로 송구, 우승이 확정되는 순간을 확인했다. 시리즈 동안 1승 2세이브로 활약한 김용수는 1990년에 이어 또 한번 한국시리즈 MVP로 선정되는 감격을 누렸다. LG 역사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한국시리즈 MVP 수상자가 바로 김용수다.
과연 고우석도 정삼흠과 김용수가 그랬던 것처럼 LG의 뒷문을 튼튼하게 지키며 '헹가래 투수'의 영광을 안을 수 있을까. 한국시리즈 2차전에서 화려하게 부활한 고우석은 이미 그 발판을 만든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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