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azine] 수목원의 가을 ① 광릉 옆 국립수목원
(포천·남양주=연합뉴스) 김정선 기자 = 국립수목원에는 한꺼번에 접하기 어려운 다양한 식물이 살고 있다.
이곳에서는 자연에 둘러싸여 나무가 즐비한 길을 거닐 수 있다.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선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광릉이 인접해 있다.
역사 깊은 야외 공간에서 계절을 만끽하는 것은 특별함을 더해 준다.
나무가 보여주는 다양성
서울에서 차로 2시간 정도 걸려 경기도 포천에 소재한 국립수목원에 도착했다.
일교차가 큰 날씨 탓에 옷을 겹쳐 입은 사람들이 많았다.
입구를 지나자 왼쪽에 서 있는 나무가 방문객을 반겨주듯 가지를 양쪽으로 활짝 펼치고 있다.
아래쪽을 보니 '달나라에는 없는 나무 계수나무'라는 안내판이 있다.
안내판은 동요 '반달'에 나오는 계수나무 얘기를 꺼낸 뒤 "달에 토끼와 계수나무가 산다는 설화는 중국과 일본, 그리고 우리나라에도 있다"고 적고 있다.
바닥에는 하트 모양으로 생긴 계수나무 잎이 떨어져 있다.
손에 들고서 냄새를 맡아보니 달콤한 향기가 났다.
이후에도 국립수목원을 걷다가 여러 그루의 계수나무를 봤다.
같은 종류지만 높낮이도, 단풍이 드는 속도도 달랐다.
각각의 나무가 주는 느낌도 달랐다.
다른 나무도 마찬가지다.
수종의 다양성은 광활한 국립수목원을 걷다 보면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소나무, 전나무, 참나무, 버드나무, 서어나무 등은 물론이고 잔가지가 아래로 늘어지는 독일가문비나무, 햇살에 빛나는 황금실화백 등도 눈에 띄었다.
찰피나무, 괴불나무, 함박꽃나무, 박태기나무, 까마귀밥나무 등 명칭도 다양했다.
완만한 경삿길을 걷다가 상쾌한 공기가 더 청량해졌다는 느낌이 들었다.
국립수목원에서 대표 숲길로 꼽히는 전나무 숲길이다.
왼쪽 길에 시원하게 위로 뻗은 전나무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1920년대에 조림된 이곳은 우리나라 3대 전나무 숲길로 불린다.
걷다 보니 '전나무 숲길 휴식년제'라고 쓰인 안내판이 있다.
많은 관람객 이용에 따라 흙이 다져지는 답압 현상이 발생, 일부 구간에서 휴식년제를 시행 중이라고 쓰여있다.
숲의 건강을 회복하는 데 꽤 긴 시간이 필요하다는 데 생각이 다다랐다.
숲을 들여다보는 즐거움
국립수목원의 전시원은 관상수원, 수생식물원, 키 작은 나무언덕 등 주제에 따라 24개에 이른다.
전시원 102㏊의 면적에 심은 식물은 3천800종이 넘는다.
취재팀에게 곳곳을 설명해주던 김성식 국립수목원 전문위원은 "숲이 이전보다 많이 깊어졌다"고 말했다.
걸었던 길을 찬찬히 다시 돌아봤다.
처음에는 키 큰 나무에 눈길이 갔지만, 이제는 습지식물, 약용식물, 비비추, 돌나물과 식물, 그래스류 등에 눈길이 갔다.
하나하나 세세하게 관찰하다 보니 자꾸 걸음을 멈추게 된다.
가을이 되면서 수풀 사이로 잿빛이 늘어난 것 같았다.
양치식물원의 다양한 고사리 잎에서도 갈색이 보였다.
하지만, 침엽수원에선 여전히 푸른 나무 사이를 거닐 수 있다.
개화 시기가 지난 식물이라도 철마다 생태가 다르니 야외 전시원에서 계절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여름꽃인 수국은 점점 메말라가고 있었다.
열대식물자원연구센터 앞 광장에는 흰색, 보라색, 분홍색의 수련에 감탄하며 사진을 찍으려는 방문객의 발길이 이어졌다.
육림호 수면에는 인근 푸른 숲과 하늘의 풍경이 담겼다.
이름이 생소한 나무와 눈에 띄는 거목에 집중하느라 스쳐 지났던 풍경이 뒤늦게 눈에 들어왔다.
세밀하게 관찰한 숲의 조각들이 합쳐지자 전체적인 계절의 풍경이 더욱 확연하게 다가왔다.
낮에는 햇빛이 비쳐 밝고 따뜻하다가 오후 4~5시가 가까워지자 주변이 서늘해지면서 분위기가 쓸쓸해졌다.
산림박물관도 가볼 만하다.
1층에는 다양한 수종의 목재 표본이 죽 늘어서 있다.
소나무, 전나무, 잣나무, 박달나무, 벚나무 등 30종이 넘었다.
이곳에선 잘린 나무에 영상, 박제를 활용해 숲의 모습을 형상화한 설치물 '살아있는 숲'도 볼 수 있다.
여기에 쓰인 느티나무는 다섯그루가 붙어 자란 연리목으로, 경북 안동의 수몰지역에서 왔다.
숲에 둘러싸인 광릉
국립수목원과 인접한 광릉의 소재지는 경기도 남양주다.
광릉은 조선 7대 세조(1417~1468)와 왕비 정희왕후(1418∼1483)가 안장된 곳이다.
조선 왕릉의 입지를 선정할 때는 풍수지리상의 길지를 고려했다고 한다.
방문해보니 능의 뒤쪽은 숲에 둘러싸여 있고 앞쪽은 전망이 트인 모습이다.
광릉에 들어서자 조선왕릉에서의 '맨발 보행 금지'라는 안내판이 눈에 들어왔다.
숲길을 포함해 경내 전 지역은 조선시대 유교와 그 예법에 근거해 조성된 공간으로 맨발 보행은 엄격히 금지한다는 내용이다.
조선 왕릉 중 현존하는 유일한 하마비(下馬碑) 옆을 지나니 경사가 있는 흙길이 이어졌다.
나무들이 양쪽으로 서 있어 그늘이 져 있다.
옆길 한쪽에는 오래전에 쓰러진 듯한 굵은 나무줄기가 놓여있다.
2010년 태풍의 영향으로 쓰러진 전나무와 잣나무인데, 자연의 순환과정을 따라 흙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관찰 중이라는 안내판이 서 있다.
위쪽 길에 다다르자 언덕에 있는 동원이강릉(同原異岡陵)의 형태를 명확하게 알아볼 수 있었다.
동원이강릉은 같은 능역 내 서로 다른 언덕 위에 왕과 왕비의 능을 둔 무덤을 뜻한다.
촬영신청을 미리 해뒀던 터라 능침까지 올라갈 수 있었다.
다소 가파른 길을 지나 언덕에 이르자 호랑이와 양 모양의 석수(石獸), 문인과 무인 형태의 석상인 문석인(文石人)과 무석인(武石人) 등으로 둘러싸인 능이 보였다.
아래 풍경을 바라보는 순간 주변의 소나무와 전나무 사이로 '쏴아' 하는 바람 소리가 일었다.
광릉을 포함해 40기의 조선왕릉은 인류의 문화유산으로서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인정받아 2009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됐다.
555년 보전된 광릉숲
광릉숲은 1468년 조성된 광릉의 부속림 중 일부다.
왕릉의 부속림으로 정해지면 엄격한 관리를 받는다. 인근 일부 주민에게는 관리 책무가 부여된다.
국내 최대 산림의 보고(寶庫)로 불리는 광릉숲은 포천, 남양주, 의정부에 걸쳐져 있으며, 면적이 2천400여㏊에 이른다.
국내에서 단위 면적당 가장 많은 생물종이 서식해 생물다양성의 보고로 일컬어진다.
서어나무, 졸참나무 등이 주종을 이루는 온대 북부의 대표적 극상림(생태계가 안정된 숲의 마지막 단계)으로 평가된다.
2010년에는 그 가치를 인정받아 광릉숲과 주변지역이 유네스코 생물권 보전지역으로 지정됐다.
전체 면적은 2만4천㏊가 넘는다.
국립수목원의 역사는 광릉, 광릉숲과 떼려야 뗄 수 없을 것이다.
1987년 광릉수목원이 문을 열었고 1999년 국립수목원으로 개원했다.
지금도 '광릉수목원' 표지석은 국립수목원 내부 산림박물관 앞에서 볼 수 있다.
둘레길도 좋아요
광릉숲 주변을 가볍게 돌아보고 싶다면 둘레길도 좋다.
국립수목원 주변에는 데크 길이 조성돼 있다.
1시간 넘게 걷는 동안 오가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았다.
주변에서 새 소리, 하천의 물 흐르는 소리가 들렸다.
데크 길에선 키 큰 전나무, 떡갈나무뿐만 아니라 잎이 메말라 버린 나무, 고목으로 보이지만 굵은 줄기에 잎이 생겨난 나무도 마주칠 수 있다.
수풀이 보이는 하천의 폭이 넓었다가 좁아지기도 해 변화가 다채로웠다.
길을 따라가다 보면 주변 풍경이 바뀌어져 있다. 다양한 자연의 모습이 왠지 모르게 삶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 이 기사는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23년 11월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js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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