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많던 나비는 어디로 갔을까』 사라 다이크먼 “1만 6417km 가로지르는 제왕나비의 대이동 동행기” [김용출의 한권의책]
“나뭇가지 사이로 태양의 온기가 종일 쏟아지자, 제왕나비들은 날개를 펼치고 비늘을 반짝여 고마움을 표했다. 봄 햇살을 받은 수천 마리의 나비가 주황빛 날개를 파랑이며 하늘로 항해를 시작했다. 하늘을 가득 채운 나비들이 푸른색을 배경으로 시를 짓고 바람을 따라 춤을 추었다. 제왕나비들은 물을 찾아 탐바로 곁의 촉촉한 땅에 모여들었다가 강이 갈라지듯 날아올랐다.”(43쪽)
이른 봄, 제왕나비가 집단 군집지인 멕시코 엘로사리오에서 백만 날개를 팔랑이면서 머나먼 캐나다를 향해서 여행을 시작한다. 주황색 바탕에 검은 줄무늬를 한 북아메리카의 대표 나비인 제왕나비는 주변 환경에 맞춰 체온이 변하는 냉혈 동물이다. 기온이 낮을수록 제왕나비의 체온은 낮아지고 활동성도 떨어져 섭씨 17.5도가 넘는 기온에서만 날 수 있다. 그래서 따뜻한 멕시코에서 겨울을 난 뒤 북쪽으로 날아가 캐나다에서 여름을 난 뒤 가을에 다시 멕시코로 돌아오는 여정을 반복한다.
제왕나비의 여정을 따라나서는 다이크먼의 교통편은 5년 전 중고 부품을 모아서 직접 조립한 자전거다. 벼룩시장에서나 보일 법하게 낡았고, 곳곳이 군데군데 녹슬었다. 그럼에도 그에게는 “도둑맞을 걱정 없는 믿음직한 교통수단이자, 소비 지상주의에 저항하는 선언이며, 모험의 세계로 들어가는 입장권”이었다. 자전거와 옆에 달린 가방에 여행에 필요한 수많은 물건을 바리바리 싣고서. 비옷, 세면용품, 냄비, 버너, 물통, 침낭, 일기, 책, 매트리스, 노트북, 충전기, 카메라, 핸드폰, 지갑, 여권, 지도, 선크림, 칫솔⋯.
이른 봄 동쪽으로 날아가는 제왕나비들은 멕시코의 중부와 동부를 가르며 남북으로 뻗은 시에라마드레 오리엔탈산맥을 기준으로 방향을 틀어 북쪽으로 향한다. 무리는 북쪽으로 이동하다가 미국 남부 텍사스로 넘어서면서 바람에 따라 넓게 퍼지며 여정을 이어간다. 암컷들은 이때 알을 낳기 위해서 우유빛 액상이 나오는 잡초 ‘밀크위드’를 찾아나서고, 찾아낸 밀크위드 잎에서 알을 낳는다. 암컷 한 마리당 보통 300~500개 정도를 낳고, 그렇게 태어난 다음 세대의 제왕나비도 부모가 하던 여행을 릴레이로 이어간다. 미국을 거쳐 캐나다로.
“매년 가을 제왕나비의 북쪽 서식지부터 남쪽을 향한 대이동이 시작된다. 거대한 무리의 앞쪽 나비들은 뒤에 오는 나비보다 한 달 정도 빠르다. 이 나비들은 남쪽으로 이동하면서 최근 어른벌레가 되어 날아갈 준비를 하는 어린 나비들을 만난다. 이렇게 새로운 무리가 들어오면서 남쪽으로 이동하는 물결은 점점 커진다. 나비의 이동은 매일 날아가는 속도, 기온 변화, 태양의 고도에 따라 빨라지기도 하고 느려지기도 한다.”(292쪽)
제왕나비들은 기온이 내려가는 겨울이 되기 전 다시 멕시코로 돌아오는 여정을 다시 시작한다. 이렇게 3~5세대에 걸쳐서 대륙을 종단한 릴레이 경주는 멕시코에서 끝난다. 이른바 ‘제왕나비의 대이동’이다.
제왕나비의 운명처럼, 다이크먼의 자전거 여행은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나비와 달리 땅위를 달려야 하기에 길을 찾아서 자주 돌아가야 하고, 끊긴 도로 때문에 한참 되돌아가기도 한다. 다리를 건너지 못해 차를 얻어 타기도 하고, 숙소를 잡지 못해 길가에서 텐트를 치고 노숙을 하기도 한다.
“손마디가 해애지고 이가 덜덜 떨렸다. 바퀴 바로 앞에 시선을 고정한 채 힘겹게 비포장 도로를 달렸다. 자전거는 좀처럼 속도가 나지 않고 돌투성이 길은 사정을 봐주지 않았다. 부드러운 길에 들어서서야 겨우 눈을 들어 먼 곳을 훔쳐볼 수 있었다.”(62쪽)
제왕나비를 따라서 멕시코, 미국, 캐나다 3국을 가로지르는 여정 속에서도 그는 위기를 맞은 제왕나비의 현실을 목도한다. 멕시코에 모인 제왕나비 군집은 해가 갈수록 줄고 있다. 1996년 20헥타르를 차지한 군집 규모는 2019년 2.83헥타르로 줄어들었다. 심지어 제왕나비 개체의 90퍼센트가 사라졌다고 보는 과학자도 있다. 제왕나비 애벌레의 주식인 밀크위드가 자생하는 땅이 주택과 대규모 상업지구가 무분별하게 들어서고 있다. 환경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기후 위기가 어떻게 지구를 휘감고 있는지를 직접 목도한다.
다이크먼은 여행 도중 오클라마호주 털사에서 북아메리카 이곳저곳에서 제왕나비의 위기를 전하는 대변인 역할을 하면서 제왕나비가 산란하는 밀크위드를 보급하는 샌디 슈윈, 제왕나비 애벌레를 길러서 주위에 보급하는 전직 교원 바브, 제왕나비의 날개에 스티거를 붙여 이동 경로를 추적하고 서식지 변화를 추적하는 연구원 등 수많은 이들도 만난다. 아울러 학교와 강당 등에서 제왕나비와 기후 위기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다이크먼은 이렇게 264일 동안 자전거를 이용해 제왕나비와 긴 여정을 함께 하면서 무려 1만 6417킬로미터를 달렸다.
“출발한 지 255일 만에 자전거를 세우고 장거리 왕복 여행의 마지막 구간을 걸었다. 고개를 뒤로 젖히고 제왕나비 군락을 살폈다. 수많은 제왕나비가 조용한 색깔로 숲을 뒤덮었다. 시선을 더 올려 내 여행 동지들의 무게로 휘어진 나뭇가지를 바라보았다. 그런 가지가 수없이 많았다. 우리는 도착했다.”(344쪽)
“웅크린 제왕나비는 마치 불가능한 문장의 마침표 같았다. 그들은 존재한다. 이 작은 생명체들은 대륙만큼 큰 불가능을 이기고 돌아왔다. 위험은 계속 늘어나겠지만 함께 위험에 맞설 군단 역시 늘어날 것이다. 나비, 인간, 이웃 생명체들이 모두 힘을 모은 이 군단은 함께할 때 강해진다는 걸 잘 알고 있다. 여러 제왕나비가 모여 대이동을 해내고, 짧은 거리가 모여 모험이 되고, 여러 정원이 모여 해결책을 내놓듯, 우리의 목소리가 모일 때 변화가 찾아올 것이다. 모험을 마다하지 않는 사람들, 해법을 찾은 사람들, 변화를 이끄는 사람들, 이동하는 나비들이 있는 한 우리의 공동 행동은 희망이 된다.”(345쪽)
김용출 선임기자 kimgija@segye.com, 사진=현암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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