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무조사를 늘려야 하는 까닭[김유찬의 실용재정](31)
국세청의 세무조사 건수는 2019년 1만6008건, 2020년 1만4190건, 2021년 1만4454건, 2022년 1만4174건으로 해마다 줄고 있다. 이는 모든 세목에서 이루어진 건수다. 법인기업을 중심으로 법인세 세무조사 건수를 살펴보면 2015년 5577건, 2017년 5147건, 2019년 4602건, 2021년 4073건으로 역시 계속 줄어드는 추세다. 국세통계연보가 제시하는 당해연도의 실제 활동하는 법인을 기준으로 세무조사 대상이 된 법인의 비율은 2015년 0.89%, 2017년 0.71%, 2019년 0.56%, 2021년 0.43%로 급속도로 낮아지고 있다.
법인 수는 늘어나는데 세무조사 건수는 줄어드니 비율이 가파르게 감소하는 것이다. 2021년의 경우 1000개의 기업이 있을 때 4.3개의 기업, 즉 200개의 기업 중에 1개의 기업도 제대로 세무조사 대상이 아니었던 셈이다. 세무조사에 선정될 확률이 이렇게 낮다면 기업이 세무조사를 두려워하겠는가. 세무조사를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그들이 실제로 획득한 소득을 세무신고서에 담아서 제출하는 것을 어떻게 담보하겠는가.
기업의 납세순응도 높이려면
그렇다. 세무조사는 그 자체로 국세청이 국가재정에 큰 규모의 추징세액을 제공하는 것은 아니다. 2021년의 경우 법인세 조사를 통한 부과세액은 3조9900억원 정도였다. 하지만 세무조사의 빈도수를 높여 법인들에 경각심을 주게 되면 법인의 세무신고 행태가 자연스럽게 성실하게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중요한 건 세무조사에 채택된 납세자들의 탈세 행위를 적발해 많은 추징세액을 거두는 것이 아니라 모든 법인납세자가 경각심을 가지게 해서 세무신고의 행태를 바꾸는 것이다.
2023년 정부의 세수입 여건이 좋지 않다. 기획재정부가 재추계한 올해 세수 전망치(341조4000억원)는 지난해 세수(395조9000억원)에 비추어 54조5000억원 적다. 내년 예산안을 보면 내년 세수는 367조4000억원으로 올해보다 26조원가량 늘어나는 것으로 잡혀 있다. 정부가 내년 명목성장률을 4.7%로 보고 있는데, 세수증가가 미미한 규모다. 여러 요인이 있겠으나 한가지 조심스럽게 고려할 사안은 윤석열 정부의 세법개정이 기업들의 행태에 영향을 끼쳤을 가능성이다. 기업친화적인 윤석열 정부의 2022년 세법개정 결과, 기업 입장에서는 적당히 줄여서 신고해도 국세청이 세게 나오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을 수도 있다. 이러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국세청 또한 정부의 국정기조에 맞춘다는 이유로 세무조사 건수 목표를 역대 최저치(1만3600건)로 낮춰 잡았다.
윤석열 정부의 세무조사 정책 기조는 같은 보수정부이며 세수결손의 어려움을 경험한 박근혜 정부 행태와도 비교가 된다. 박근혜 정부는 적극적인 증세를 통한 세수 확보에는 나서지 않았지만, 납세자들의 탈세 행위에 적극적으로 대처했다. 박근혜 정부는 2013년 1만8079건, 2014년 1만7033건, 2015년에도 1만7003건으로 1만7000건 이상의 수준을 유지하며 징수를 강화한 결과 15조원의 세수 확보 효과를 보며 2015년 세수결손에서 탈출했다.
세무조사 정책의 핵심은 기업에 대한 세무조사다. 개인의 근로소득은 어차피 유리지갑이며 개인들의 사업소득도 대체로 법인기업의 내용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간단하다. 개인들의 자산소득이나 상속과정에서의 탈세는 국세청이 상대적으로 쉽게 파악하는 사안이다. 기업의 경제활동은 그러나 복잡해 경력이 오래된 국세청 직원이 시간을 가지고 깊이 조사해야 내용 파악이 가능한 부분이 많다.
기업의 납세순응도 제고를 위해 우리 과세당국은 오랜 기간 간접적인 방식을 중시해왔다. 신용카드 사용에 대한 소득세 공제를 통해 기업의 매출액을 파악하는 방식이다. 그러한 방식은 그러나 소비자를 상대로 하는 서비스업종 사업자들의 매출액 양성화에 크게 기여했으나 다른 방식의 탈세에는 그다지 유효하지 못했다. 이제 전통적인 방식으로 돌아가는 게 바람직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세무조사 비중을 높이고, 탈세 적발 시 가산세 등 벌칙규정을 강화하는 방식을 통해 납세순응도를 제고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바꿔야 한다.
기업의 투자나 고용활성화를 위해 조세 입법으로 세 부담을 경감해주는 것은 가능한 정책수단이 될 수 있으나, 일정조건을 충족하는 기업에 대해 세무조사를 유예하는 것과 같이 세무행정의 수단인 세무조사를 정책수단으로 활용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세무조사는 경제상황에 따라 시기적으로 변하지 않고 항상 일정하게 적용되는, 어떤 납세자도 의도적으로 피해가기 어려운 제도로 자리 잡게 하는 것이 바람직하고 그래야만 제도적 공공재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한번 시작된 세무조사는 담당자가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일할 수 있도록 여유가 주어져야 한다. 현재 국세청은 세무조사 기간을 좁게 잡도록 하면서 조사기간 연장을 제한적으로만 허용하도록 하고 있다. 이는 납세자에게 세무조사의 심리적·경제적 부담을 덜어줘 기업활동에 전념하게 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는 취지이나, 동시에 세무조사 담당자들의 통상적인 업무를 어렵게 한다는 점에서 문제의 소지가 있다. 성실납세자에 대한 가장 좋은 납세서비스는 불성실 납세자에 대한 엄정한 세무조사다.
세무조사 대상 기업 늘려야
세무조사제도는 현재 낮은 세무조사 대상 비율로 인해 본연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 세무조사 대상 기업의 비율을 대폭 늘려야 한다. 200개의 기업 중에 하나의 기업이 아니라 10개 정도의 기업이 매년 세무조사의 대상이 돼야 한다. 그래야만 세무신고를 정확하게 해야겠다는 납세자들의 경각심을 확보할 수 있다.
정확하고 엄밀한 세무행정을 위해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는 일도 필요하다. 국세청에 금융거래정보에 대한 접근권을 허용해야 한다. 지하경제 양성화 수단으로 금융정보분석원(FIU)이 보유하고 있는 금융자료를 국세청이 100% 활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현재의 금융실명법은 과도한 비밀보장을 제공하는 측면이 있다. 과세당국에 금융정보 접근을 허용하는 일은 절대적 금융비밀주의가 철폐되고 있는 지금의 국제적 추세에도 부응한다.
금융정보는 정부의 여러 부처에서 다른 정책 목표를 위해 이미 확보하고 있다. 그러기에 그 정보를 과세당국과 공유하는 문제는 비교적 용이하다. 금융정보분석원에 제출하는 고액현금거래보고(CTR), 혐의거래보고(STR) 등의 자금세탁 관련 금융자료 등이 이에 해당한다. 외국의 국세청 중 이러한 금융자료에 제한없이 접근하는 나라도 적지 않다. 이들 금융자료를 국세청이 효율적으로 활용하면 실질적으로 큰 규모의 세수증가 효과가 가능하다고 본다. 과거 국세청은 정부와 국회에 고액거래나 혐의거래 등 금융정보분석원 금융정보를 요구했으나, 탈세 혐의가 있는 경우에만 정보를 받을 수 있도록 한 관련법 개정(2013년 11월)으로 어려워졌다. 세무당국이 조사에 활용 가능한 정보를 제한하는 일은 좋은 선택이 아니다.
김유찬 포용재정포럼 회장·전 한국조세재정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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