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주홍글씨Ⅱ]본질은 '금융중개'일 뿐인데…
압박 속에 서민금융 출연 확대 등 추가방안 고민
윤석열 정부는 지난해부터 은행에 메스를 댔다. 이자로 거두는 이익과 임직원들에게 나눠지는 성과급이 과하다는 게 핵심이었다. 예대금리차 공시를 강화한 것에서 시작해, 올 초에는 '은행권 경영·영업 관행·제도개선 태스크포스(TF)'도 출범시켰다. 하지만 은행을 향한 윤 대통령과 금융당국 수장들의 비판 수위는 오히려 강해졌다.
은행권에선 "이미 정부의 지침을 경영에 적극 반영하고 있다"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은행의 사회적 역할은 고려하지도 않고 비윤리적이고 폭리를 취하는 집단 대하듯 손가락질만 하는 것이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혁신 없는 이자이익 증대" 비판
최근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수조원에 달하는 은행의 이자이익이 "혁신을 기반으로 얻은 성과가 아니다"라고 꼬집었다. 반도체와 자동차 기업들이 기술 혁신 노력을 통해 성장하는 것과 달리 은행들은 금리 상승에 따른 이자이익 증대 효과만 누리고 있다는 점을 비판한 것이다. ▷관련기사: 이복현 "은행, 반도체·자동차만큼 혁신 노력했나"(11월6일)
이를 두고 은행권에선 "파격적인 혁신이 사실 상 불가능한 경영 환경이라는 점을 간과한 것 아니냐"는 항변이 나온다. 은행업은 정부 허가를 통해 영위할 수 있는 대표적인 규제산업이라는 것이다. 신사업 등을 위한 은행 자체 노력도 중요하지만 꽉 막힌 금융 규제를 푸는 것이 혁신의 전제조건이라는 주장이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지난해 취임과 함께 '금융의 BTS'를 강조하며 규제 개혁을 강조했다. 특히 은행에 신사업 진출 문을 열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하지만 김 위원장 취임 후 금융 환경 불확실성이 확대되며 당국의 정책은 규제 혁신보다는 금융 안정에 초점을 맞춰오고 있다. 지난해 말 '레고랜드 사태'로 촉발된 단기자금시장 불안, 올 3월 미국 SVB 사태(실리콘밸리은행 파산) 등이 금융시장 안정 위주 정책의 배경이 됐다.
이 영향으로 대표적인 규제 완화 방안인 은산분리 해제에 대한 논의도 사실상 중단된 상태다. 은행들도 신사업 확장보다는 자본확충 등 손실흡수능력을 강화에 힘을 쏟고 있다. 이는 금융당국이 우선적으로 강조하는 내용이기도 하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비금융 분야로 사업을 확장하고 싶어도 당국의 승인이 오래 걸리는 등 쉽지 않은 게 현실"이라며 "대내외적으로 금융 불안 우려가 커진 만큼 지금은 내실을 다지는 게 더 중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금리는 시장이 결정하는데" 한숨만…
금융당국은 은행들의 혁신 노력이 부족하다는 것뿐 아니라 이자이익을 늘리는 데만 몰두하고 있다는 점에도 비판의 날을 세운다.
실제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의 경우 올 3분기 누적 이자이익은 36조5984억원으로 역대 최대 실적을 기록했던 지난해(36조2051억원)보다도 1.1% 증가했다.
하지만 은행들은 이자이익 증대가 금리 상승 과정에서 '불가피한 결과'라는 점을 강조한다. 금리는 대내외 경제 환경이 반영된 시장에서 결정되는 것이고, 은행은 그에 맞춰 금융을 중개하는 역할에 불과하다는 게 은행권 종사자들의 말이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는 지난해 4월 1.25%이던 기준금리를 1.5% 인상하기 시작했고 올 1월까지 기준금리를 3.5%까지 끌어올렸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역시 정책금리를 5.25~5.5% 수준을 유지하는 고금리 정책을 펼치고 있다.
다른 시중은행 관계자는 "은행은 시장에서 형성된 금리를 기반으로 대출금리를 설정하는 것일 뿐이지 전체적인 시장금리를 결정하는 기관이 아니다"라며 "최근에는 대출 수요를 줄이기 위한 당국의 권고에 맞춰 대출금리를 올린 것인데 이자이익만 부각되고 있다"고 말했다.
금융당국 수장들은 오는 16일 5대 금융지주 회장들과 간담회를 준비하고 있다. 여기서 추가적인 상생금융 방안이 제시될 가능성이 높다. 이와 함께 내달 초 은행들의 출연금을 늘리는 내용의 서민금융 지원 확대 방안도 공개될 것으로 알려졌다.
이 관계자는 "코로나19 시기에도 금융당국의 소상공인 지원 같은 요청이 있을 때마다 적극적으로 참여해 왔다"며 "이미 상생금융 규모를 확대한 상황에서 당국이 추가적인 방안 마련을 압박하고 있다 보니 얼마나 더 출연해야 할지 은행으로서는 고민이 큰 부분"이라고 토로했다.
노명현 (kidman04@bizwat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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