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날씨예측과 슈퍼컴퓨터의 공생
인류는 18세기 영국에서 시작된 증기기관을 이용한 1차 산업혁명 이후, 기계산업과 과학을 이용하여 대량생산을 가능하게 한 2차 산업혁명, 전자·정보 기술이 주도하는 디지털 혁신을 이룬 제3차 산업혁명을 거쳐왔다. 그리고 근래에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은 3차 산업혁명을 기반으로 물리학, 디지털, 생물학적 영역의 경계가 무너져, 상호교류하고 융합하는 제4차 산업혁명의 시대가 도래할 것을 예측해 왔다.
우리 사회는 과거 산업혁명들을 거쳐온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빠른 속도로 4차 산업혁명에 진입하고 있다. 빅데이터, 딥러닝, 사물인터넷, 3D 프린팅, 클라우드, 블록체인, 양자컴퓨팅 같은 기술들이 더욱 정교해지고, 상호영향을 주고받으며 만들어낸 새로운 결과물들이 속속들이 탄생하고 있다.
자동차 분야의 4차 산업혁명으로는 컴퓨터, 자동차 등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융합된 자율주행 차량을 들 수 있다. 2010년 구글이 처음 무인 자동차를 선보인 이후, 업계는 앞다퉈 자율주행 기술 개발에 힘쓰고 있다. 자율주행 성능 개선을 위해서는 빅데이터 기술을 접목한 인공지능 학습이 필수적이다. 테슬라가 판매된 자동차로부터 계속해서 주행 데이터를 얻고 있다는 것은 이미 공공연하게 알려진 사실이다. 계속해서 수집된 많은 양의 자료를 저장하고, 빅데이터 처리와 딥러닝을 위해 고성능 컴퓨터가 필요한데, 이를 위해 테슬라는 빅데이터 딥러닝이 가능한 슈퍼컴퓨터를 제작하고 있다.
미래의 날씨를 예측하기 위한 소프트웨어인 '수치예보모델'을 사용하여 날씨를 예측하는 수치예보분야에서도 방대한 양의 데이터 처리와 계산을 위해 슈퍼컴퓨터를 활용하고 있다. 특히 수치예보모델이 전체 지구를 수평과 연직 방향으로 나눈 격자점에서 기상현상의 변화량을 계산하는 과정에서 수반된 엄청난 양의 계산을 위해 슈퍼컴퓨터는 매우 중요하다. 세계 각국에서는 수치예보모델의 예측 정확도를 향상하기 위해 관련 기술과 더욱 촘촘한 격자구조를 체택하고 있는데, 모델의 성능이 좋아질수록 계산량도 늘게 된다. 이에 따라 수치예보모델에 사용되는 슈퍼컴퓨터의 기술과 성능도 함께 발달하고 있다.
기상청도 수치예보모델의 성능에 따라 슈퍼컴퓨터의 성능을 계속해서 높여 나가고 있다. 1999년 슈퍼컴퓨터 1호기(실측성능 약 0.2테라플롭스)가 도입되고 슈퍼컴퓨터 기반의 수치예보모델을 예보 업무에 활용하기 시작한 이래로, 수치예보모델의 해상도가 높아지고 계산량이 늘면서 이를 수행하기 위한 슈퍼컴퓨터의 성능도 꾸준히 향상되고 있다. 현재 한국형수치예보모델이 운영되고 있는 슈퍼컴퓨터 5호기의 성능은 대략 5만 테라플롭스 정도로, 2023년 5월 기준 국내 슈퍼컴퓨터 순위 2위의 높은 수준의 성능을 보여주고 있다.
향후에는 기상과 기후, 해양, 환경을 하나의 모델에서 예측할 수 있는 대기-해양-빙권 통합 모델과 같은 고성능의 수치예보모델이 운영될 수 있다. 이를 위해 현재의 슈퍼컴퓨터 계산능력을 능가하는 기술이 필요하다. 양자역학적인 물리현상을 활용하여 강력한 연산 처리가 가능하여 기존의 슈퍼컴퓨터보다 1000배 이상 빠른 강력한 연산 처리능력을 지닌 양자컴퓨터 그 대안이 될 수 있다.
하지만 현재까지는 기상 분야에서 예측을 위한 양자컴퓨터의 활용은 아직 초기 연구단계이며, 알고리즘, 소프트웨어 및 하드웨어 개발을 위해 많은 작업과 노력이 필요하다. 다만 다른 4차 산업혁명 분야의 기하급수적인 발달과 진화에 비춰 볼 때, 양자컴퓨터와 고성능 수치예보모델이 융합·진화된 기술을 얻는 데에는 예상보다 훨씬 더 적은 시간이 들 것이다. 기상청은 새롭고 빠르게 변화하는 미래 기술을 기상정책에 능동적으로 적용하여, 세계 기상 기술을 선도하는 기술혁신 기관이 되도록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일 것이다. 유희동 기상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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