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일논단] 사람이 중심이 되는 세상

박성효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이사장 2023. 11. 9.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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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효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이사장

장기화 되는 경기침체로 주거·보건·교육·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사회 양극화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양극화 현상을 내버려 두면 삶을 포기하는 사회적 약자들이 늘어난다. 이는 곧 심각한 사회문제로 발전하게 된다. 최근 언론을 통해 빈번히 보도되고 있는 미국, 유럽 노숙자들의 상점 약탈 등이 그 사례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경우 높은 집값, 코로나19, 경기침체 등 복합적인 문제로 길거리로 내몰린 노숙자들이 상점을 약탈하기 시작했다. 결국 대형마트 '타깃', 약국 'CVS', 프랜차이즈 카페 '스타벅스' 등이 폐점한다는 소식이 전해지기도 했다. 이는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그 지역 주민들은 생필품을 구입하기 위해 훨씬 더 많은 돈과 시간을 들여 다른 동네 상점을 다녀야 한다. 즉, 사회 모두가 부담을 껴안게 되는 것이다.

최근의 이런 현상들을 보고 있으면 필자가 대전시장 시절 추진했던 '무지개 프로젝트'가 떠오른다. 무지개 프로젝트는 '모두가 잘 사는, 지속 가능한 도시를 만들 수는 없는가'하는 고민에서 시작했다. 실의에 찬 빈곤층에게 희망을 주는 동시에 주거와 교육, 자활, 문화, 공동체 의식 등 삶의 전 분야에 걸쳐 지원하기 위해 분야별로 일곱 가지 무지개 색을 붙여 진행했다.

도시 재개발을 진행하다 보면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문제가 있다. 재개발로 높아진 집값을 감당하지 못하고 원주민이 떠나버리는 것이다. 무지개 프로젝트는 기존 재개발 사업의 부작용을 피하기 위해 도시구조를 해체하지 않으면서 공동체를 복원하는 '리모델링' 방식을 택했다. 그리고 주민과 자원봉사자가 그 과정에 함께 참여해 역량과 리더십을 키워나가고, 파트너십을 구축해 나가는 '동네 거버넌스'로 운영하며 시간이 흘러 물리적인 시설은 노후화되더라도 주민들 스스로 가꾸고 참여할 수 있도록 주인의식을 높였다.

또 다른 특징은 선택과 집중이다. 시 행정은 범위가 넓고 전문적인 분야로 나눠져 있다 보니 특정 동네 주민 입장에서는 이해가 안되는 부분이 많을 수밖에 없다. 이에 선택과 집중 방식으로 관청과 행정부서, 관련 유관기관이 동시에 참여해 수평적 연대를 통해 추진했다.

프로젝트는 주거환경 개선부터 시작했다. 도배, 장판 등 세대별 개선에서 단지 조경, 도로 등 동네 전체 정주환경을 바꿨다. 도서관을 세우고 책걸상 교체, 급식실, 과학교실 등 학교시설을 개선해 제대로 교육받을 수 있는 여건을 만들었다. 특히 시 공무원과 협력기관 관계자로 구성된 무지개 튜터단과 대전외고, 과학고 학생들로 구성한 멘토단을 구성,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을 위해 무료 학습지도에 나섰다.

문화복지와 자활 지원도 이뤄졌다. 사회적으로 소외를 느끼지 않도록 찾아가는 공연, 공공미술 프로젝트로 문화생활을 영위하게 하고 노인복지관, 장애인 재활센터 같은 복지시설과 취업알선센터, 기술교육실 같은 자활 기능도 포함해 자생력을 기를 수 있는 기틀을 마련했다. 프로젝트가 진행되자 영구임대아파트 주민이 모여 마을신문 '판암골 소식'을 만들며 공동체 발전을 논의하고 교류하기 시작했다.

주거지가 안정되고 주민 간 공동체 의식이 높아지자 쓰레기로 넘쳐나던 동네는 깨끗해지고, 주민 화합과 나눔을 위해 마련한 참여행사에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합창단을 구성, 출연했다. 빈곤지역 학생들이 학습에 대한 동기를 얻어 자신의 진롱 대해 자신감을 갖는 등 교육지원이 성과를 이루기도 했다.

벤치마킹하려는 곳도 많았다. 서울·부산 등 전국 15개 시·도를 비롯해 스톡홀롬, 리스본, 파리 등 외국에서도 연락이 왔다. 미국 시애틀의 국제지역벤치마킹대회(IBRC), 프랑스 파리에서 개최된 세계사회복지대회(ICSW)에서 우수사례로 뽑혔고 2008년 대한민국의 미래를 이끌어 갈 뉴거버넌스 리더십 메달을 받기도 했다. 중앙정부에서도 높은 관심을 보여 프로젝트 담당 직원이 보건복지가족부(현 보건복지부) 직원을 대상으로 특강을 진행하기도 했다.

프로젝트는 '나눔과 소통을 통한 인본주의 정책'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이 프로젝트는 달동네를 재개발하는 단순한 사업이 아니었다. 사회에서 배제된 약자들이 심리적·사회적으로 배제를 극복하고 희망을 되찾을 수 있도록 지원하는, 사람을 위한 사업이었다.

사회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다. 이럴 때 일수록 눈에 보이는 부분만 지원하는 물리적인 약자 정책에서 벗어나 모두를 포용할 수 있는 사람 중심의 정책을 펼쳐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박성효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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