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균의 투자레슨]가치투자의 정석
그레이엄은 또다른 두 가지 중요한 개념을 제시했는데, ‘미스터 마켓(Mr.market)’과 ‘안전마진(safty margin)’이 그것들이다. ‘미스터 마켓’은 시장이 늘 합리적으로 움직이는 것은 아니라는 주장이다. 미스터 마켓이라는 가상의 인물은 어떤 때는 내게 터무니 없이 비싼 가격에 주식을 사겠다고 제안하고, 어떤 때는 아주 낮은 가격에 팔겠다는 제안을 하는 일관성이 없는 존재이다. 그레이엄은 불특정 다수의 대중이 모여 시장을 구성하고, 이들은 욕심과 공포라는 감정에 휘둘리는 불완전한 인간들이기 때문에 시장에서 결정되는 가격에 늘 합리성이 투영돼 있는 것은 아니라는 의견을 제시했다. 이런 관점은 1980년대 이후 시장의 전능함을 강하게 설파했던 ‘합리적 기대 이론’이나 ‘효율적 시장 가설’ 등 주류 경제학의 입장과 대척점에 서는 주장이었다. 반면 경제학에 심리학이 접목되면서 영향력이 커지고 있는 ‘행동 경제학’의 성과와는 조응하는 측면이 있다.
그레이엄의 시각으로는 조울증 환자와 같이 움직이는 주가를 맞추려고 노력하는 것은 무망한 일이다. 지난 10월에 한국 주식시장은 코스피 지수가 7%, 코스닥이 12% 넘는 조정을 받았다. 만신창이가 될 정도의 하락세가 나타나던 와중에 최근 한시적 공매도 금지 조치로 코스피는 134포인트 급등했다가, 다음 날 58포인트가 하락했다. 단기 변동성이 유별나게 높기는 했지만, 이런 시장의 행보를 어떻게 예측할 수 있다는 말인가. 그레이엄은 가늠하기 힘든 주가가 아닌 투자 대상에 대해 깊이있는 이해가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의 말대로 ‘철저한 분석’을 통해 기업의 적정 가치에 대한 확고한 의견을 가지고 있으면, 미스터마켓을 이용할 수 있다. 시장이 울증에 빠져 과도하게 하락하면 주식 매수의 기회가 생기고, 반대로 조증에 빠져 강하게 오르면 유리한 가격에 주식을 팔 기회를 잡을 수 있는 것이다.
가치투자자들은 투자의 핵심이 주가의 등락에 대한 예측이 아닌, 기업의 적정가치를 잘 추정하는 데 있다고 본다. 그렇다면 적정가치를 어떻게 추정해야 할까? 구체적인 방법론은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가치투자자들은 나름의 방식으로 철저하게 분석한 적정가치 조차 ‘확실한 답’이 될 수는 없다고 본다. 주가 전망을 비롯해 인간의 행동이 결부된 사회과학적 예측은 자연과학에서와 같은 인과율이 작동하지 않는다. 많은 가정들을 바탕으로 추론해 볼 따름이다. ‘안전마진’은 최선을 다한 분석을 했음에도 나의 분석에 오류가 있을 수 있다는 데서 나온 개념이다. 스스로 추정한 적정 가치가 1만원인 가상의 기업의 예를 생각해 보자. 내가 계산한 가치가 1만원이지만, 이 수치는 100%의 확실성을 담보하기 힘든 미래에 대한 가정에 기반하고 있다. 이 기업의 주가가 8000~9000원에 형성돼 있다면, 이는 가치투자자에게 좋은 투자 대상이 아니다. 나의 분석 오류로 실은 적정가치가 8000원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반면 적정 가치를 1만원으로 추정한 기업의 주가가 5000원이라면 적극적인 투자를 고려해 볼 수 있다. 내 적정가치 산정에 다소의 오류가 있더라도, 현재 주가와의 차이가 크기 때문에 크게 낭패를 볼 가능성이 낮기 때문이다.
가치투자는 ‘앎’에 천착하지만, 그럼에도 내가 모르는 영역이 존재하고, 나의 앎에도 한계가 있다는 겸손의 철학이 내재돼 있다. 주가의 움직임은 알 수 없는 영역이라 범위를 좁혀 투자 대상에 대한 깊이있는 앎을 추구하지만, 그 마저도 확실하지는 않기 때문에 안전마진을 고려하는 것이다.
가치투자의 관점에서 보면 투자자는 생각은 많이 하고, 행동은 적게 해야한다. 내가 잘 아는 기업을, 좋은 가격에 사야하기 때문이다. 잘 알기 위해서는 깊이 있는 학습이 필요하고, 안전마진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좋은 가격이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그레이엄의 제자인 워런 버핏은 투자자들이 너무도 부주의하게 투자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버핏은 ‘내 인생에 주식을 매수할 수 있는 기회가 20번으로 제한돼 있다’는 마음을 가지고 신중하게 주식을 사야 한다고 말했다. 가치투자자의 관점에서 보면 ‘아무 것도 안하는 것도 투자’이다. 모르는 종목을 사는 것은 투기이고, 안전마진이 확보되지 않은 종목을 사는 것은 투자의 승률을 현저히 낮춘다. 시장에는 정보가 너무 많고, 그 정보는 대부분 소음인 경우가 많다. 워런 버핏이 왁자지껄한 월스트리트가 아닌 조용한 시골도시 오마하에서 투자를 하고 있는 이유도 부주의한 행동을 유발하는 과도한 자극을 피하기 위함이었다고 본다.
가치투자자는 밸류에이션이 높은 성장주들을 어떻게 볼까? 이들 기업이 가치투자의 대상이 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가치투자의 기본은 ‘앎’이다. 투자 대상에 대한 깊은 지식이 있다면 밸류에이션이 높은 성장주들도 가치투자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성장주 투자의 아버지로 불리는 필립 피셔는 밸류에이션이 높은 성장주 투자로 큰 부를 일군 사람이다. 피셔는 그레이엄과 동시대 인물이지만, 투자의 방식은 전혀 달랐다. 그레이엄은 담배꽁초 주식으로 불릴 정도로 싼 주식에 천착했고, 필립 피셔는 모토롤라와 텍사스 인스트루먼트 등과 같은 당대의 성장주들에 투자해 부를 쌓았다. 필립 피셔가 쓴 ‘보수적인 투자자는 마음이 편하다’라는 책은 매우 흥미롭다. 밸류에이션이 높은 성장주 투자가가 ‘보수적’이라니. 결국은 깊이있는 앎이 본질이다. 피셔도 앎에 천착했다. 투자 대상 기업에 대해서는 정말 샅샅이 분석했다. 내부자들의 인터뷰, 경쟁사들에 대한 조사, 마케팅 전략 등등. 가치에 대한 확고한 분석과 믿음이 있었으니, 변동성 높은 주가의 중단기 등락에 연연하지 않았던 것이다. 핵심은 ‘앎’이고, 때를 기다리는 ‘인내심’이다.
송길호 (khsong@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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