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워서) 머리가 터질까?"…영 찰스 3세, 김치 생일선물에 농담
한인들 만나고 한국 음식·문화 살펴봐…"대통령 만나면 한국 문화 더 많이 알게 될 것"
(런던=연합뉴스) 최윤정 특파원 = 영국 찰스 3세 국왕이 8일(현지시간) 뉴몰든 한인타운을 방문해 김치를 선물 받고선 "(먹으면 매워서) 머리가 터질까? (머리가) 남아 있을까?"라고 농담을 던졌다.
찰스 3세는 75세 생일(11월 14일)을 앞두고 선물로 김치와 김치 요리책을 받고 걱정하는 듯한 표정을 짓고는 웃으며 이처럼 말했다. 찰스 3세는 매운 음식을 즐기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찰스 3세는 윤석열 대통령 국빈 방문을 앞두고 이날 런던 남서부 외곽 뉴몰든 한인타운을 방문해서 한인 사회를 둘러보고 한국 문화 등을 감상하며 한국에 관한 이해를 키웠다.
뉴몰든에서 찰스 3세 국왕을 맞이한 윤여철 주영한국대사는 "국왕이 김치 선물을 받고 '배추(cabbage)로 만든 것이죠'라고 물어서 '발효된 것'이라고 했더니 어떤 맛일지 궁금해하는 표정이었다"고 말했다.
이날 선물한 김치는 이하연 대한민국김치협회장이 한국에서 담가 인편으로 전날 공수한 것이다. 김치 한 포기를 작은 항아리에 담아 보자기로 쌌다.
찰스 3세에게 김치를 건넨 한영문화교류(KBCE) 설립자 장정은씨는 "식성에 맞춰서 고춧가루를 절반만 넣고 새우젓과 마늘은 끓여서 냄새를 줄였다"며 "포기김치를 썰어 먹기 어려운 것을 감안해서 한 입 먹을 분량으로 잘라 김치 잎으로 싼 뒤 미나리로 묶었다"고 설명했다.
김치 요리책은 뉴몰든 지역에서 전해지는 한국, 북한, 중국 연변의 김치 비법을 모은 것으로, KBCE가 영국복권기금 지원으로 제작했다.
찰스 3세가 환경보호를 강조하는 점을 고려해서 포장은 보자기로 했다.
이날 차가운 가을비가 쏟아지는 날씨에도 한인타운 중심가엔 수백명이 모여서 찰스 3세를 기다렸고, 오후 1시 50분께 벤틀리 차량이 등장하자 큰 환호가 나왔다.
찰스 3세는 직접 우산을 들고 지지자들에게 가서 거의 5분간 인사를 나누고선 행사장인 뉴몰든 감리교회로 들어섰다.
스피커에서 K팝 음악이 신나게 흘러나오고 한복을 입은 한글학교 어린이들이 양국 국기를 흔들며 맞았다.
찰스 3세는 입구에서 지역 박물관의 한영 수교 140주년 기념 전시를 둘러보고 김치를 선물로 받았다.
이어 한인 단체 대표들과 인사를 나누며 활동 내용에 관해 설명을 들었다.
찰스 3세는 노인회 가입 연령이 몇살이냐고 묻고는 65세라고 하자 자신은 기준을 훨씬 넘겼다고 말하며 웃었다.
탈북민인 이정희 재영탈북민총연합회 회장과 영국 의회의 북한 관련 초당파 모임에서 일하는 티모시 조씨에게는 북한에서 탈출해 영국에 정착한 과정과 가족이 남아있는지 등을 자세히 물으며 무척 힘들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찰스 3세는 뉴몰든 지역 한인 합창단의 '아름다운 나라'와 한인 무용가의 공연을 몰입한 표정으로 감상했다.
그는 무용가가 공연에 사용한 부채를 건네며 펴보라고 제안하자 시도해봤지만 잘 안되자 껄껄 웃기도 했다.
윤 대사는 "손목에 스냅을 주라고 조언했는데 반대 방향으로 주면서 부채가 안 펴지자 재밌어했다"고 전했다.
찰스 3세는 이어 한인들이 준비한 한식 생일상에 관한 설명을 들었다.
윤 대사는 "김치 선물에 이어 생일상에도 여러 종류 김치가 등장하자 국왕이 인상적으로 여긴 듯 '한국인에게 김치가 모든 것이구나'라고 말하는 것 같은 표정이었다"고 말했다.
국왕을 안내한 킹스턴구의 한인 구의원 박옥진씨는 찰스 3세가 '구절판'이 채식이냐, 한식에 해산물이 많이 들어가서 건강에 좋냐, 수정과 재료는 무엇이냐 등을 물었고, 한 번 시식해보라는 권유에는 나중에 해보겠다고 답했다고 전했다.
찰스 3세는 합창단원들에게는 영국에 온 지 얼마나 됐는지, 한국에 가끔 가보는지 묻고선 1992년 방한 때 기억을 떠올렸는지 "정말 멀다. 진 빠진다"라고 말했다.
한 참석자는 찰스 3세가 뉴몰든에 한인타운이 형성된 배경을 궁금해하며 예전에 삼성이 있었기 때문이냐고 물어서 교육 환경 때문일 것 같다고 하자 '역시 한국인은 교육에 관심이 많지'라는 표정으로 끄덕였다고 전했다.
찰스 3세는 이어 교회 옆 한국 카페에 가서 빙수를 먹는 청년들과 만나서는 '이게 빙수냐, 종류가 여러 가지냐, 한 번에 다 먹을 수 있냐. 한 번에 못 먹을 것 같다'고 말했다고 카페를 운영하는 김종순 JS홀딩스 대표가 전했다.
또 스티커 기계 등을 살펴보고선 얼그레이 케이크를 선물로 받았다. 찰스 3세는 얼그레이 차를 즐기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 대표는 "국왕이 떠날 때 '한국 문화에 관해 많이 알게 됐기를 바란다'고 인사를 건네자 국왕이 '윤 대통령을 만나면 한국 문화에 관해 더 많이 알게 될 것이다'라고 답했다"고 말했다.
찰스 3세는 이후 2차선 도로 길 건너 전쟁 기념비 앞에서는 피터 풀러브 등 한국전 참전 용사 등을 만났다. 브라이언 패릿 준장은 한국전이 '잊힌 전쟁'이 되지 않도록 이렇게 와줘서 고맙다고 말했다.
행사 후 비가 그치자 찰스 3세는 예정된 시간을 넘겨 가며 지지자들과 인사를 나눴다.
태극기를 들고 온 한 교민은 "뉴몰든에 온 것을 환영한다"고 말했다.
merciel@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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