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담과 이브도 한민족?···친일·파시즘·제국주의·이승만과도 이어지는 ‘유사 또는 사이비 역사학’
“아담과 이브도 소호족의 한 갈래였으리라고 필자는 확신한다.” 문정창(1899~1980)이 이 1979년 낸 <(한국~슈메르) 이스라엘의 역사>에 쓴 문장이다. 문정창은 한국인과 수메르인이 다 같이 소호금천씨(小昊金天氏)의 후예로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곧 소호씨국 즉 동방의 것이라고 주장했다. 소호금천씨는 신라김씨(경주김씨)의 유래로 알려진 성이다.
기경량(가톨릭대학 국사학과 조교수)은 ‘한국 사이비 역사학의 성격과 그 형태’에서 “한민족을 근원에 놓고 세계 문명의 성립을 재구성하려는 시도”라고 썼다. 기경량은 이 논문을 서강대 트랜스내셔널인문학연구소 주최로 지난 1~3일 열린 국제학술대회 ‘민족적 과대망상과 만들어진 고대’에서 발표했다. 이 국제학술대회 참가한 한국인 학자들은 고거 유사 또는 사이비 역사학의 전파와 최근 ‘전라도 천년사’에 대한 공격 등을 두고 여러 비판적 의견을 냈다.
기경량은 문정창을 “아시아 대륙 전체를 배경으로 한 거대한 역사·민족적 공동체를 상정한 투란주의를 계승한 이”라고 본다. 헝가리 등의 투란주의는 “우랄산맥과 알타이산맥 사이에 있는 이란 북동부 투란 평원에서 시작된 민족 집단을 상정”한다.
문정창은 최동(1896~1973)과 더불어 “극단적 민족주의를 사상적 배경으로 하는 한국 사이비 역사학의 체계화 작업을 수행”한 사람이기도 하다. 기경량은 두 사람이 친일파라는 점을 지적하며 이렇게 썼다. “이들은 일본 제국주의 체제에 순응하고 복무하였던 이들이었기에 일제의 침략주의적 역사관의 사고 구조를 내면화한 자들이었다. 그렇기에 해방 이후 별다른 문제의식 없이 제국주의적 역사관을 한국 고대사에 투영하는 형태로 전환할 수 있었을 것이다.”
문정창은 1964년 <근세 일본의 조선 침탈사>를, 1965년 <군국 일본 조선 점령 36년사>(상)를 내놓았다. 이문영(파란미디어 편집주간)은 ‘한국 대중 작품에 깃든 유사역사학’이란 글에서 “문정창 자신이 일제 식민지 시기 고위 관료였다는 점을 생각하면 참으로 기묘한 일이었다. 물론 문정창은 위 책들에서 자신의 과거는 전혀 밝히지 않았으며, 오히려 일제의 만행을 파헤쳐야 할 역사가들이 할 일은 하지 않고 일본의 주장과 같은 소리를 하며 스스로를 욕보이는 학설(自辱之說)을 내놓고 있다고 비난했다”고 적었다. 이문영은 “역사학계를 기득권으로 놓고 자신들은 외부의 고결한 산림지사처럼 행동하는 이 전략은 매우 효과적이었다. 우리나라의 유사역사학은 역사학계의 반론 자체를 무력화시키는데 아주 효과적인 방법을 찾아냈던 것”이라고 했다.
안정준(서울시립대 국사학과 교수)도 ‘2000년대 한·중 역사 갈등과 학계의 대응 과정에 대한 성찰’에서 중국의 동북공정으로 촉발된 역사 왜곡에 대한 사회적 ‘공분’이 민족주의를 자처하는 이들에게 하나의 큰 기회이기도 했다며 이렇게 말했다. “2010년대에 이덕일 등 몇몇 역사저술가와 이를 신봉하는 단체들은 신채호·정인보 등의 근대 민족주의 사학자, 그리고 자신들의 주장에 동조하는 일반인 다수를 ‘민족주의’ 세력으로 내세우는 가운데, 이와 배치되는 역사적 해석을 내리는 연구자들을 ‘식민사학’으로 매도하면서 동북공정의 논리에 동조하는 ‘매국(賣國)’의 역사학이라고 비난하였다.”
문정창은 ‘우리국사찾기협의회’ 부회장이다. 1975년 만든 단체다. 이문영(파란미디어 편집주간)은 “국사교과서는 국정이었던 만큼 그 교과서만 장악하면 모든 국민을 자기들의 역사관으로 세뇌시킬 수 있기 때문”에 이 단체를 설립했다고 본다. 이 단체의 주장을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단군은 신화적 존재가 아니라 실재한 역사 인물이다” “고조선은 동으로 연해주, 북으로 흑룡강, 서로는 바이칼 호수, 남으로는 양쯔강 일대까지의 중국 동부 지역의 대강역을 다스렸다” “한사군은 평양을 비롯한 한반도에 있지 않았다” “식민사관, 중화사관의 ‘날조 조선사’와 일제 침략도구인 ‘변조 조선사’를 발본색원한다”.
이 단체 회장이 초대 문교부 장관 안호상이다. 이승만 독재 체제를 사상적으로 뒷받침한 ‘일민주의’를 구성한 인물이다. 전진성(부산교육대 사회교육과 교수)은 <정신분열 상태의 민족들: (탈)식민지 한국에서 재연된 독일 ‘원민족사(Volksgeschichte)’>에서 ‘일민’이라는 용어가 소위 ‘단군 민족주의자’들이 사용하던 용어라고 지적한다. “단군에서 시작되는 단일민족의 역사에 대한 그(안호상)의 논설은 통상적인 쇼비니즘을 넘어 파시즘으로 치달았다. 한민족이 배달 한배임(倍達桓因)과 배달 한배웅(倍達桓雄)과 단군한배검(檀君王儉)의 자손으로서 혈연의 동일성을 지닌다는 그의 발언은 역사학적으로, 물론 철학적으로도 전혀 수긍하기 힘든 주장이다. 그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한민족이 고대 동아시아 전역을 지배했으며 심지어 공자도 배달민족이고 ‘의리를 무겁게, 죽음을 가볍게’ 여긴다는 신라의 화랑도는 국가를 위해 기꺼이 개인을 희생하는 일민주의 정신의 발로라고 역설한다”고 했다.
전진성은 안호상의 독일 예나 대학 스승인 법학자 오토 쾰로이터 나치 법조인이었다는 점 등을 들며 “안호상이 1920년대 독일을 풍미하던 원(原)민족 사상으로부터 일정한 영향을 받았음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한겨레와 한백성은 한핏줄로 되었음으로 해서 자연 산물이다’는 그의 주장에서는 원민족 사상 특유의 ‘역사의 자연화’ 경향을 엿볼 수 있는데, 이러한 경향은 일본 파시즘의 자취가 짙은 양우정의 인종주의적 가족-국가론에서도 엿보인다는 점에 비추어 볼 때 원민족 이념의 국제적 파급력 및 글로벌 파시즘과의 연관성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제기한다”고 했다. 이런 점 등을 들며 “일민주의가 결국 이승만 대통령을 ‘국부’로, 즉 대한민국이라는 가족국가의 아버지로 떠받들어 영구집권을 획책하는 논리로 전락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고 했다.
https://m.khan.co.kr/culture/scholarship-heritage/article/202309180700001
전진성은 “오염되지 않은 불변의 실체로서의 ‘원민족’에 대한 독일인들의 동경은 서구 제국주의의 공세에 시달리던 비서구권의 민족들에게 이념적 출구를 제공했다“고 말한다. 그는 “일제 식민지 한국에서 독일에 버금가는 강한 종족 민족주의적 정체성이 등장했다면 이는 단지 우연은 아닐 것이다. 국가와 민족의 일치라는 근대 정치의 원리에 위반되는 유사한 여건이 지구 반대편의 두 곳에서 민족에 대한 종족적 관념을 부추겼다. 국권 상실의 위기 상황에 처한 한반도에서 민족은 국가를 대신하는 최상의 가치이자 초역사적 실체로 떠올랐다”고 했다.
전진성은 “그것은 ‘백인종’에 맞선 ‘황인종’의 연합이라는 인종화된 아시아 연대론으로, 구한말 지식인들에게 큰 호소력을 지녔다. 이보다 다소 늦게 수입된 개념인 ‘민족’은 바로 이 새로운 정체성과의 역동적 대면의 과정에서 한국의 담론장에 뿌리내리게 된다”고 했다.
‘우리국사찾기협의회’의 또 다른 부회장이 이유립이다. 이유립은 1979년 한문으로 쓴 <환단고기>를 펴낸다. 임승국이 1986년 낸 게 한글 번역본 <한단고기>(‘환’을 ‘한’으로 표기)다.
“‘다수결이라고 하는 것은 수학적 진리일 뿐이다. 책임을 질 사람이 대중의 치마 폭 속에 숨어버린다. 다수결은 대가리 숫자주의이니 두수주의(頭數主義)일 뿐이다’라고 했습니다. 이러한 두수주의 원칙으로 사학이나 국사를 결정할 수 없습니다.” 임승국은 1981년 11월 열린 국사교과서 공청회에서 히틀러의 ‘두수주의’를 인용하며 이 말을 했다.
이문영은 삼국뿐만 아니라 고려도 중국에 있었다는 이중재 등의 주장, 한국 문명을 세게 5대 문명 중 하나로 제시한 신용하의 주장, 아메리카 인디언의 조상이 아메리카로 이주한 한민족이고, 이들이 곧 아스테카 문명의 주인공이라는 손성태의 주장 등을 살핀다. 이문영은 “
이러한 주장의 근거는 신용하와 마찬가지로 멕시코 원주민의 언어와 한국어에 비슷한 점이 많다는 점, 그밖에 민속놀이, 의복, 문양 등에 비슷한 점이 많다는 점 등이다. 이 역시 강박과 확증 편향에 사로잡힌 황당한 주장이지만, 2017년 한국의 공영 방송 KBS에서 손성태의 주장을 반영하여 2회에 걸친 특집 다큐멘터리를 제작해 방영한 바 있다”(1월 27일~28일, ‘멕시코 한류, 천년의 흔적을 찾아서’ 2부작)고 했다.
학술대회 참가자들은 ‘유사 또는 사이비 역사학’이 대중과 제도권 학문에 미치는 영향도 지적했다.
기경량은 인하대 고조선연구소가 2013~2014년한국연구재단과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진흥사업단에서 수십 억 원에 달하는 대규모 연구 과제를 수주한 사례도 예로 들었다. 이 연구소는 고구려 수도 평양과 고려의 서경이 한반도가 아닌 지금의 중국 요양 일대라는 주장 등을 담은 결과물을 냈다.
https://m.khan.co.kr/culture/scholarship-heritage/article/202305211454001
https://m.khan.co.kr/culture/scholarship-heritage/article/202305311114011
기경량은 “한국에는 쇼비니즘과 결합한 거짓 역사가 유통·소비되고 있다”며 “사이비 역사학은 ‘닫혀 있는 사고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고 말한다. “사이비 역사학 추종자들이 제시하는 역사상은 최종적이며 확정적이다. 그들이 지식을 다루는 태도는 근본적으로 연역적이기에, 자신들이 선호하는 역사상에 부합하지 않는 명백한 반증 자료의 존재에 대해서도 철저하게 무시하고 수용을 거부하는 태도를 보인다.”
역사적 사실의 판정 문제를 ‘선과 악’의 문제, ‘정의와 불의’의 문제로 치환하여 인식하는 문제도 지적한다. “제도권 역사학계에서 통설화한 역사상은 우리 민족을 폄훼하고 식민지 지배를 뒷받침하려는 목적에서 왜곡·조작된 것이라 인식한다. 자연히 그 대척점에 있는 자신들의 역사 연구를 일종의 학문적 독립운동이자 불의에 대한 저항이라 규정한다”고 했다. “(역사학자의 주장과 의견의 자의적·악의적 왜곡·편집, 가짜 역사서 활용 등은) 스스로를 거대 기득권 세력과 맞서는 저항 세력으로 인식하기에, ‘올바르고 찬란한 역사’의 복원과 ‘선’과 ‘정의’의 승리를 위해서라면 그 어떤 방식도 정당화”한다.
기경량은 ‘전라도 천년사’ 중단 요구 등을 두고 “사이비 역사학은 제도권 학문의 외피를 어느 정도 획득하는 데 성공하였다. 사이비 역사학계는 보수와 진보를 가리지 않고 여야의 수많은 정치인들과 교감하고 있으며, 역사학계의 연구 프로젝트를 연거푸 폐기시킬 정도로 강한 대중적 영향력과 동원력을 확보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사이비 역사학이 한국 사회에서 강한 힘을 얻게 된 데는 한국사학계의 책임도 상당 부분 있다. 해방 이후 한국사학계는 식민주의 사학의 극복을 과제로 내세웠는데, 그 과정에서 민족주의에 편승하여 생존을 꾀하였던 면이 있었다. 민족주의에 기반한 역사 연구와 역사 교육이 사이비 역사학 같은 과대망상적 역사관에 저항할 수 있는 지적 면역력을 약화시켰다”고 했다“
이문영은 최인호의 <잃어버린 왕국>, <퇴마록> 등 대중문화로 침투한 유사역사학 문제를 분석한다. “유사역사학의 주장은 자민족 우선주의로 강력한 민족주의로 무장되어 있다. 유사역사학은 자신들이 주장하는 과거의 영토를 회복해야 한다고 주장하거나 그런 가치관을 갖도록 유도한다. 유사역사학에 기반한 창작물은 이러한 사상 확산에 기여하기 때문에 위험하다”고 했다.
안정준(서울시립대 국사학과 교수)은 2003년 12월 9일 한국사 17개 학회의 동북공정 역사 왜곡에 대한 공동성명서의 “고구려는 만주와 한반도 중북부를 활동무대로 삼아 고조선에서 삼국을 거쳐 통일신라·발해로 이어지는 한국사의 거대한 물줄기를 형성한 것이다” 같은 대목을 인용한다. “고구려는 700여 년의 역사 동안 만주와 한반도의 정치체를 모두 통일한 적도 없으며, 그 이후에도 그런 국가는 없었다. 고조선 이래로 발해에 이르기까지 만주와 한반도 일대에 있었던 여러 정치체나 국가들이 모두 ‘한국사의 거대한 물줄기를 형성한 것’이라는 언급은 실제 역사상이라기보다는, 그렇게 ‘한국사’를 기술하고자 했던 근현대 한국인들의 의도가 강하게 투영된 결과”라고 했다.
안정준은 “이른바 ‘사이비역사학’은 기존의 민족주의 정서 이외에도 새롭게 부각되는 ‘국가주의’ 정서에 부응하여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으며, 오히려 시대 분위기에 발맞춰 ‘재생산’되는 모습을 보인다”고 했다. “국가기관, 혹은 국책기관에 반복적으로 민원을 넣고, 국회의원 등을 포섭한 감사 요청 등을 통해 자신들의 영향력을 과시하는 한편, 해당 사업들을 계속 방해하는 공작을 지속해왔다. 또한 이러한 낡은 정서에 부응하여 현재 학계의 논의를 ‘식민사학’이라는 프레임에 가둬 공격하는 논리가 만들어지고 있으며, 심지어 학계에서 논의되지도 않은 허상을 만들어 공격하는 일종의 ‘허수아비 치기’가 벌어지는 것이 현재의 상황”이라고 했다.
이정빈(충북대 역사교육과 부교수)은 ‘북한의 동명왕릉 발굴·개건과 평양 정통론의 탄생’을 발표했다. 그는 “1950년대 후반 이후 북한 역사학계는 남북국시대론을 제기하며 신라 삼국통일의 의의를 수정ㆍ축소하였고, 1970년대 후반 이후 고구려 중심의 삼국시대론을 정립하며 신라의 삼국통일을 부정하였다. 그리고 2000년대 후반 이후 북한에서는 고조선-고구려-고려-조선을 정통국가로 설정하고, 정통국가 중심의 한국사 체계를 수립하였다“고 정리했다. 단군릉 발굴 등을 통해 ”평양 중심의 한국사 인식은 세계사적ㆍ초역사적으로 확장되었다. 평양 중심의 고대사 인식이 경화된 것이다. 비록 남북한은 단군에서 시작한 단일혈통의 단일민족이라고 하지만, 단군에서 시작된 민족사의 정통성은 북한에 있다고 본 셈”이라고 했다.
김종목 기자 jom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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