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12년을 기다린 축제, 거래소가 조금만 배려했더라면

배동주 기자 2023. 11. 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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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설립부터 상장까지의 소요 기간은 평균 12.5년이다.

상장을 추진하는 기업들은 보통 기관 투자자 수요예측 이후 일반 청약을 진행하는 단계에서 상장 주관사와 상장일을 정해 한국거래소에 확정을 요청한다.

상장기념식 순서가 밀린 기업은 장 시작 이후 주가가 빠지는 것을 내내 바라보면서 상장을 기념하게 될 수도 있다.

거래소가 상장 기업을 고객으로 대했다면 이같이 결정할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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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설립부터 상장까지의 소요 기간은 평균 12.5년이다. 업력이 12.5년 쌓였다고 상장할 수 있는 것은 물론 아니다. 훨씬 더 많은 기업이 상장 근처도 가지 못하고 주저앉는다. 상장한다는 것은 사업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올랐다는 의미다. 상장 기업 타이틀은 그 자체로 기업 신뢰도를 높인다. 많은 기업이 상장을 목표로 하는 이유다.

상장은 그 문턱마저 높다. 회계와 내부통제 현황 등에서 금융감독원 등의 깐깐한 심사를 넘어서야 한다. 이후 수요예측과 청약에서 성장성을 입증해 투자자 러브콜까지 받아야 최종 상장에 닿을 수 있다. 운(運)도 필수다.

덕분에 최종 상장을 이룬 기업들은 한국거래소 승인 후 매매거래 첫날, 상장을 자축하는 상장기념식을 ‘꼭’ 연다. 한 엔터테인먼트사의 상장기념식에는 소속 가수가 나와 한바탕 축제를 벌였다. 최근 로봇 대장주로 주목받은 두산로보틱스는 상장일 대북을 로봇이 울리기도 했다.

그런데 자축의 시간을 제대로 못 갖게 된 기업이 있다. 4개 기업의 동시 상장 때문이다. 이들이 모두 같은 날 상장하는 이례적인 일정이 잡혔다. 일반상장 기업 4곳이 한날 동시에 상장하는 것은 기업공개(IPO) 시장이 20조원을 넘어선 2021년의 초호황 당시에도 없었다.

4곳 기업은 큐로셀, 비아이매트릭스, 컨텍, 메가터치다. 이들 역시 상장에 닿기까지 평균 12년 가까운 시간을 썼다. 하지만 이들은 상장기념식에서 이렇다 할 행사는 고사하고 각 사 대표가 인사말을 전하고, 대북을 치고, 사진을 찍으면 끝나버리는 부족한 시간만 갖게 됐다.

한국거래소가 10일 ‘글로벌 ETP 컨퍼런스 서울’이란 행사를 이유로 상장기념식이 열리는 한국거래소 홍보관 사용을 막았기 때문이다. 행사 자체는 1층 컨퍼런스홀에서 열지만, 2층 홍보관에서 영상공유 등 내부 행사를 예정했다는 이유로 상장을 승인한 기업들의 일정을 9일 하루로 몰았다.

상장을 추진하는 기업들은 보통 기관 투자자 수요예측 이후 일반 청약을 진행하는 단계에서 상장 주관사와 상장일을 정해 한국거래소에 확정을 요청한다. 대부분 기업의 안대로 정해지지만, 이번엔 달랐던 것으로 확인됐다. 10일을 예정한 기업엔 ‘묻지마 조정’을 통보했다.

‘글로벌 ETP 컨퍼런스 서울’ 행사도 중요하다. 상장 기념식을 위해 원래 잡혀 있던 행사를 바꾸라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쏠림 현상은 사전에 막을 수 있었다. 11월은 반기 실적을 들고 증시 입성에 도전하는 회사가 많아 어려울 수 있다고는 하지만, 사실 조정하려면 얼마든지 할 수 있었다.

한국거래소가 부랴부랴 내놓은 대안은 회의실이었다. 상장기념식을 꼭 해야겠다면 대회의실을 내어주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한국거래소는 “회사 측이 9일 진행을 택했다”면서 “13일 상장도 가능하다고 했으나, 상장일이 너무 늦어지는 부담 등으로 거절했다”고 입장을 전했다. 단 13일에도 스팩(SPAC·기업인수목적회사)을 포함한 3개 기업이 상장한다. 4개 기업 입장에서는 굳이 13일로 늦출 이유도 없었다.

한국거래소의 소통 과정에는 12년의 세월을 견뎌 상장에 닿은 기업들에 대한 배려가 빠져 있다. 4개 기업 동시 상장으로 이들 기업이 겪게 될 매수 수급 분산 우려도 작지 않다. 상장기념식 순서가 밀린 기업은 장 시작 이후 주가가 빠지는 것을 내내 바라보면서 상장을 기념하게 될 수도 있다.

한국거래소는 공공기관이 아니다. 30개 금융투자업자가 86.1% 지분을 가진 민간기업이다. 하지만 민간기업임에도 경쟁은 하지 않는다. 거래소가 상장 기업을 고객으로 대했다면 이같이 결정할 수 있었을까. 영상 공유 내부 행사를 홍보관이 아니라 대회의실에서 진행할 수는 없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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