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리에의 노래’ 이와이 슌지 감독 “내 인생의 동력이 된 한국, 송강호 배두나와 작업 꿈 꿔”[SS인터뷰]
[스포츠서울 | 함상범 기자]쓸쓸한 길거리 버스킹 가수 키리에(아이나 디 엔드 분) 앞에 화려한 옷차림의 한 여성이 발길을 멈춘다. 술에 취한 잇코(히로세 스즈 분)다. 키리에의 열창에 감동한 잇코는 급격히 호기심을 갖더니 매니저가 되기로 자처한다.
잇코가 반가운 마음에 계속 말을 거는데, 키리에는 쪽지로 답한다. 노래할 때를 제외하곤 목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아서다. 잇코는 정처 없이 지내는 키리에와 함께 살자고 한다.
고등학교 동창인 두 사람은 묘한 인연으로 얽혀있다. 잇코의 과외교사 나츠히코(마쓰무라 호쿠토 분)가 키리에 언니의 약혼자였던 것. 동일본 지진으로 키리에는 언니를, 나츠히코는 약혼녀을 잃었다. 이후 두 사람 모두 다소 피폐한 삶을 살고 있다.
이와이 슌지 감독의 신작 ‘키리에의 노래’는 말을 못하는 키리에와 아슬아슬한 범죄를 저지르는 잇코, 안정적인 삶을 잃고 방황중인 나츠히코를 통해 2011년 동일본 지진 후 현실에 떠밀려 살아가는 세 젊은이의 상처와 결핍을 담담히 그려낸다.
이와이 슌지 감독은 “오사카에 말을 안 해서 ‘안해’라고 불리는 여자가 있었다. 거기서 단편적인 아이디어를 얻었고, 그 설정에서 이야기가 덧붙여졌다”며 “처음에는 노래를 잘 못하는 주인공이 있었다. 말을 못 한다는 건 지진을 겪으면서 생각한 아이디어다. 두 아이디어가 겹쳐지면서 키리에가 만들어졌다”고 말했다.
이와이 슌지 감독은 한국의 영화 팬들에게 익히 잘 알려진 감독이다. 명대사 “오겡끼데스까”로 유명한 ‘러브레터’와 ‘4월 이야기’, ‘릴리 슈슈의 모든 것’ 등은 수많은 한국 팬들이 인생작으로 꼽곤 한다.
아름다운 풍광 속에 담긴 청춘의 불안, 끊어질 듯 은은하게 이어지는 관계와 자유로운 카메라 워크, 한 번 들으면 잊을 수 없는 음악은 이와이 슌지 감독만의 인장이다. 여러 시간이 교차하는 가운데서도 이야기가 한 축으로 잘 꿰진다. ‘키리에의 노래’도 마찬가지다.
“‘키리에의 노래’를 제작하면서 전작을 의식하진 않았어요. 동일본 대지진 이후 단편소설에서 시작해 여러 가지 아이디어가 결합하면서 형태를 갖춰나가는 중에 지금과 같은 결과가 나왔어요. 이렇게 나올 거라고는 생각 못했어요.”
당초 ‘키리에의 노래’는 노래를 잘 하지 못하는 여성과 매니저가 일이 뜻대로 풀리지 않으면서 벌어지는 이야기였다. 노래를 못하는 배우를 찾던 중에 아이나 디 엔드가 캐스팅되면서, 주인공의 음악 실력이 바뀌었고, 내용도 달라졌다.
“아이나의 재능이 특별해서 설계가 많이 바뀌었어요. 노래 잘하는 인물로 바뀐 게 크죠. 원래는 잇코가 가수가 되는 이야기였는데, 잇코는 단념하고 키리에가 가수의 길로 가는 것으로 바뀌었어요. 아이나는 무대를 봤을 때 엄청난 탄력이 있어요. 그런 실력이라면 연기도 잘 할 것이라 생각했어요. ‘고등학생의 철없는 모습도 잘 할까’ 걱정했는데, 첫 촬영 때 문제가 없을 거라고 느꼈어요.”
올해 한국 영화계의 화두는 일본 애니메이션의 인기다. 올초 ‘슬램덩크’를 시작으로 ‘스즈메의 문단속’, 최근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까지, 일본 애니메이션이 한국 극장가를 점령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반대로 한국 콘텐츠 산업은 OTT 플랫폼을 통해 글로벌 확장을 이어가고 있다. ‘오징어 게임’을 시작으로, ‘지옥’, ‘D.P.’, ‘지금 우리 학교는’, ‘더 글로리’ 등 국내 작품이 글로벌 팬들을 흡수하고 있다.
“영화를 시작했을 무렵부터 한국 영화 성장과 함께 했어요. 한국 콘텐츠에 관심이 많아요. ‘오징어 게임’부터 특히 진화해 오고 있다고 생각해요. 영화의 문화가 있고, 만화의 문화가 있는데 한국은 융합된 이미지고 일본은 분리가 된 것 같아요. 일본은 애니메이션 예산과 실사 영화 예산 차이가 커요.”
이와이 슌지 감독은 한국 배우들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다. 그는 한국 배우들, 특히 송강호 배두나와 협업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4월 이야기’로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 받아 한국에 처음 왔었어요. 그 이후에 ‘러브레터’가 정식 상영을 했고, 열광해준 팬들이 있었어요. 제 인생에 강력한 힘을 받았죠. 배두나와 작업해 본적이 있어요. 또 한국 배우와 기회가 된다면, 송강호, 배두나와 하고 싶어요.”
미디어 산업은 지속적으로 발전하고 있다. 플랫폼이 다변화되는 가운데 영상 기술도 매년 혁신적인 발전을 이어가고 있다. AI가 인간의 업무를 꽤 대체하고 있다. 자본의 규모도 더 커지고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많은 것들이 좁혀지지 않을까 생각해요. 할리우드가 막대한 자본을 투입해 만든 기술을 개인 노트북에서 실현하는 일도 조만간 생길 것 같아요. 저는 늘 제가 보고 싶은, 스스로 실망하지 않는 작품을 만들어왔어요. 그때마다 제 마음을 이해하는 한국 팬들이 있었어요. 기술이 변하든 시대가 변하든, 늘 그랬던 것처럼 실망시켜드리지 않는 좋은 작품을 만들겠습니다.”
intellybeast@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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