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의 장막'을 무너뜨린 '말실수'…냉전 종식→獨 통일 [뉴스속오늘]
[편집자주] 뉴스를 통해 우리를 웃기고 울렸던 어제의 오늘을 다시 만나봅니다.
"언제부터 국경 개방이 시행됩니까?"
"즉시, 지체없이.(Sofort, unverzuglich)"
1989년 11월 9일, 영원할 것만 같았던 '철의 장막' 베를린 장벽이 붕괴됐다.
이는 당시 동독의 신임 중앙 위원회 정보 담당 서기인 샤보프스키가 한 사소한 말실수에서 비롯된 일이었다. 그러나 이 말실수는 세계의 변화를 이끌었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3주 뒤 몰타 회담에서 냉전 종식이 선언됐으며, 이듬해 10월 독일의 재통일이 이뤄졌다.
베를린 장벽은 1961년 처음 축조됐다. 동베를린의 서쪽 경계선에 존재하던 이 장벽은, 독일 분단과 냉전 시대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구조물 중 하나였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1950년까지 수백만명에 달하는 동독(독일민주공화국)인이 서독으로 탈주했다. 동서독 분단이 고착된 후에도 이탈자의 수는 줄어들지 않았다.
서베를린은 동독 주민들이 서독 및 서방 세계로 탈출하는 주요 경로였다. 이에 동독 입장에서는 서베를린으로 향하는 길을 막아야만 했고, 1961년 8월 13일 한밤중에 서베를린과 접한 모든 국경을 봉쇄하고 기습적으로 베를린 장벽을 구축했다.
베를린 장벽에는 서베를린 방향의 콘크리트 장벽부터 동베를린 방향의 철조망까지 약 60~70m에 달하는 이른바 '죽음의 지대'(Death Zone)라 불리는 민간인 통제 군사 구역이 설정돼 있었다.
'죽음의 지대'에는 동독인들의 탈출을 막기 위해 지뢰, 철조망, 도랑, 감시탑 등이 세워졌다. 감시탑은 무려 116개소였으며 벙커는 20개소에 달했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서베를린으로 탈출을 시도하는 사람들은 여전했다. 5000여명은 탈출에 성공했으나 200명가량은 장벽을 넘는 도중 사살된 것으로 알려졌다.
서독으로의 탈출 시도 혐의로 동독에서 처벌받은 사람은 6만명가량이며, 평균 4년 동안 감옥에서 복역했다.
동독인들의 서독 탈출 시도는 이어졌고, 여행의 자유가 상당히 확대되면서 1989년 체코슬로바키아와 헝가리를 경유해 서측으로 빠져나가는 동독인의 수가 급증했다.
이에 대처하고자 동독 정부는 1989년 11월 9일, '외국으로의 사적 여행은 이유의 제시 없이 신청할 수 있다'는 결정을 내렸다.
해당 내용을 발표할 기자회견을 담당한 인물은 샤보프스키였다. 본래 샤보프스키는 동서독 간 여행의 허가증 발급 간소화 및 여권 발급 간소화만 알릴 예정이었다.
그러나 방금 휴가를 마치고 돌아온 샤보프스키는 관련 내용을 완벽하게 숙지하지 못한 채 기자회견장에 들어섰다. 그 결과 그는 "언제부터 국경 개방이 시행되느냐"는 한 이탈리아 기자의 질문에 "즉시, 지체없이"라고 답했다.
이러한 소식이 전해지자 동독 시민들은 베를린 장벽 부근의 동·서독 출입 지역으로 몰려들었다. 국경 수비대는 이들에게 문을 개방했고, 동독 시민들은 서베를린으로 넘어갔다.
동독 시민들은 베를린 장벽 위에 올라가 "아무도 우리를 막을 수 없다"고 소리치며 춤을 추고 노래를 불렀다. 이뿐만 아니라 이들은 망치와 삽으로 벽을 부수기 시작했고, 영원할 것만 같았던 베를린 장벽은 무너졌다.
베를린 장벽 붕괴 후, 같은 해 12월 2~3일 이틀 동안 지중해 몰타에서 미국의 조지 H. W. 부시 대통령과 소련 공산당 서기장 고르바초프가 정상회담을 진행했다.
회담을 마친 후 두 정상은 공동기자회견에서 "동서가 냉전 체제에서 새로운 협력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고 선언했다. 아울러 핵무기 감축 등 군축협정 체결을 위한 논의에 진전을 보았으며, 지역분쟁 해결원칙에 합의했다고 밝혔다.
특히 고르바초프가 "우리는 더 이상 적이 아니다"라고 말하면서 냉전이 종식되기 시작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냉전 체제 아래서 연합국에 의해 강제로 분단됐던 독일은 1990년 10월 3일 하나의 국가로 통일됐다. 같은 해 12월 2일에는 동·서독총선이 실시됐고, 기독교민주당과 자유당 연정이 집권했다.
차유채 기자 jejuflower@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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