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요금 현실화 대신 한전 쥐어짜기…"정치가 정하는 전기요금 결정 구조 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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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8일 산업용(대용량) 전기요금만 킬로와트시(㎾h)당 평균 10.6원 올리기로 하면서 국내 최대 에너지 공기업 한전의 천문학적 부채 해결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평가가 잇따르고 있다.
한전의 적자 규모가 47조 원을 넘겼는데도 큰 선거를 앞두고 여론을 의식한 정부·여당의 입김이 요금을 좌지우지하는 틀을 뜯어고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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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전 쥐어짜며 수십조 적자 상황 버티기
에너지 원가 반영 안 된 전기료는 그대로
정부가 8일 산업용(대용량) 전기요금만 킬로와트시(㎾h)당 평균 10.6원 올리기로 하면서 국내 최대 에너지 공기업 한전의 천문학적 부채 해결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평가가 잇따르고 있다. 한전의 적자 규모가 47조 원을 넘겼는데도 큰 선거를 앞두고 여론을 의식한 정부·여당의 입김이 요금을 좌지우지하는 틀을 뜯어고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절박한 위기의식"…한전, 몸집 줄이며 재무 개선 안간힘
이날 한전의 '경영 위기 극복을 위한 자구대책'에 따르면 이 회사는 △조직 혁신 △인력 효율화 △자산 매각 등을 통해 재무 개선에 나서겠다고 발표했다. 본사 조직을 20% 줄여 2001년 발전사 분사 이후 최대 규모 조직 개편에 나서는 한편 희망퇴직을 받는다. 또 공공기관 혁신 계획에 따라 1월 감축한 정원에 대한 초과 현원 488명을 연말까지 줄이고 디지털 서비스 확대와 설비 관리 자동화 등을 통해 2026년까지 약 700명을 감축한다는 계획이다.
서울 노원구 공릉동에 있는 인재개발원 부지(64만㎡)를 팔고 한전KDN 보유 지분 20%를 국내 증시 상장 후 내놓는다. 필리핀 칼라타간 태양광 사업 보유 지분도 38% 매각한다.
"책임져야 할 정부 온데간데없이 전력산업 공공성 훼손"
문제는 이런 대책들이 한전이 처한 재무 위기의 근본적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점이다. 한전의 적자가 전력을 비싼 값에 사들여 싼값에 파는 '역마진 구조'에서 비롯한 만큼 원가를 반영한 전기요금 현실화 없이는 재무 개선 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허윤지 에너지경제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지난해 기준으로 보자면 전기를 100원에 사서 70원도 안 되게 팔 만큼 원가 반영이 제대로 안 됐다"며 "전기를 팔면 팔수록 손해 보는 지금 구조가 바뀌지 않은 채 한전 채권 발행에 따른 이자까지 고려하면 적자 감축 폭은 크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부와 여당 국민의힘의 입김에 따라 전기요금이 결정 나는 체계를 손봐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전은 올해 안에 56.1원을 올려야 한다고 목표를 제시했지만 결국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게 됐다. 국제 에너지 가격이 오르면 전기요금 원가에도 이것이 반영돼야 하지만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여론을 의식한 정부·여당이 이를 반대했기 때문이다.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 창의융합대학장은 "독립 조직이 아닌 대통령실과 여당에서 전기요금 인상안을 사실상 결정하는 상황은 후진적"이라며 "전력 공급 안정성을 훼손하고 미래를 위한 투자도 막고 있다"고 꼬집었다. 손양훈 인천대 경제학과 교수는 "국제 에너지 가격이 크게 요동치는 상황에서 현재의 요금 결정 구조는 계속될 수 없다"며 "정부·여당으로서도 자신들의 요금 결정 권한이 부메랑이 돼 곤란한 상황일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전 등 8개 한전 그룹사 노동조합들이 속한 전국전력산업노동조합연맹(전력연맹)은 이날 서울 용산구 대통령 집무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한전의 자구책을 비판했다. 최철호 전력연맹 위원장은 "전기요금을 정치로부터 놓아야 지금 사용한 전기요금을 미래세대에 떠넘기지 않을 것"이라며 "전력산업에 비전문가 이해 관계자들이 지나치게 개입하고 공기업에 정책 실패의 책임을 떠넘기는 고리를 끊어 달라"고 호소했다. 이들은 성명서에서 "정부는 공적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 온 한전과 자회사에 모든 책임을 전가하며 전기요금 인상을 조건으로 하는 뼈를 깎는 자구안을 종용했다"며 "한전의 누적 적자 200조는 정부가 서민 물가 안정을 내세우며 정치 셈법으로 전기요금을 통제해 빚어진 결과"라고 강조했다.
나주예 기자 juy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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