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다를 것 같더니 역시나? 폭염 대비 법안 첫발도 못 뗐다

정지용 2023. 11. 9. 04:3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여야 모두 “폭염 대책 마련” 공약했지만
여태껏 상임위 소위원회조차 통과 못 해
더위 때 반짝 관심, 선선해졌지만 뒷전 반복
22일 법안 소위 '마지막 기회' 시각도
서울 한낮 기온이 35도까지 치솟으며 무더운 날씨를 이어간 지난 8월 서울 시내 한 공사현장에서 건설노동자가 물을 마시고 있다. 연합뉴스

“기후 재난으로부터 노동자를 보호해야 한다.”

전국이 폭염으로 들끓던 지난 8월 여야는 한목소리로 이렇게 외쳤다. 박광온 당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더위가 오기 전에 폭염 대비 법안을 처리했어야 했는데 못 해서 송구하다. 8월 중에는 처리하겠다”고 했다.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행정부의 행정 조치를 우선 검토하고, 법 개정이 필요한 사항은 국회 상임위(환경노동위원회)를 통해 의견을 모으겠다”고 했다.

그러나 속도를 낼 것 같던 입법 절차는 아직 첫발도 떼지 못했다. 8일 한국일보가 국회 회의록을 살펴본 결과 폭염 대비 법안(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법률심사소위원회(법안소위)조차 통과하지 못했다. 법안소위는 8월 임시국회와 9월 정기국회 때 각각 한 차례씩 열렸고, 내용은 법안을 한 번 읽어보는(1회독) 수준에서 마무리됐다. “이 속도라면 올해도 폭염 대비 법안 마련은 어렵다”는 우려가 나온다.

폭염 대비 법안 관련 여야 의원 발언. 박구원 기자

"폭염으로 죽어 나가는 사람 없어야 한다"고 했지만...

국회에서 법안은 상임위 법안소위 심사→상임위 전체회의 심사→법제사법위원회 심사→본회의 심의를 거쳐 제정된다. 상임위 법안소위 심사는 ①전문위원 검토보고 ②정부 의견 청취 ③축조심사(의안을 한 조항씩 낭독하며 의결) ④법률안 의결 절차를 밟는다. 현재 환노위에서 폭염 대비 법안은 고용노동부 차관으로부터 정부 의견을 들은 ②번 단계까지 왔다. 국회 환노위 관계자는 “법안소위는 크게 법안 1회독과 의원들의 법안 심사로 나눌 수 있는데, 실질적인 법안 심사는 이뤄지지 않은 셈”이라고 했다.

더위가 절정이던 8월에는 의원들도 의욕을 보였다. 8월 22일 법안소위 회의록을 보면 환노위 여당 간사인 임이자 국민의힘 의원은 “윤석열 정부에서는 폭염으로 죽어 나가는 사람이 없도록 (고용부가) 각별히 신경 써 주기 바란”며 “고용부가 전향적으로 (법안을) 검토해 달라”고 했다. 야당 간사인 이수진 민주당 의원은 “50인 미만 작은 사업장에서는 폭염 대비를 거의 안 하고 있다”며 “저희가 현장에 맞는 법안을 의결하도록 고용부가 자료를 성실하게 보내 달라”고 했다.

여야가 논의 중인 폭염 대비 법안은 △폭염ㆍ한파 시 지방자치단체장 혹은 고용부 장관이 사업주에게 작업 중지를 명령할 수 있도록 하고 △사업주가 폭염 예방 조치를 의무적으로 시행하도록 법제화하는 게 핵심이다. 현행 산안법도 ‘산업재해가 발생할 급박한 위험이 있을 때는 작업을 중지시키고 근로자를 대피시키는 등 안전 및 보건에 관한 조치를 취한다’고 규정하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강제력이 없어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비판이 비등하자 국회가 손질에 나선 것이다.

이틀째 폭염특보가 내려진 6월 19일 코스트코 하남점 야외주차장에서 냉방기기 없이 일하던 중 사망한 김동호(30)씨. SBS 보도 캡처

'올해도 법안 통과 불가능' vs '마지막 가능성 남아있어'

적극적인 법안소위 분위기는 9월 들어 시들해졌다. 의원들이 9월 20일 법안소위에 할애한 시간은 57분에 불과했다. 양당이 이재명 민주당 대표 체포 동의안 처리 문제로 “내부 회의를 해야 한다”며 정회를 요청했기 때문이다. 이은주 정의당 의원이 “지난번에도 폭염법 개정이 정말 중요한 의제로 등장했었다. 환노위에서 사실 제대로 다루지 못했는데 이렇게 하면 안 된다”고 문제를 제기했지만 통하지 않았다. 이날 정회된 회의는 지금까지 다시 열리지 않았다.

국회에서는 "올해에는 다를 것 같더니 역시 마찬가지"라는 뒷말이 나온다. 폭염 대비 법안은 여름이면 반짝 관심을 모았다가 날씨가 선선해지면 뒷전으로 밀리는 일이 2018년부터 반복됐다. 올해도 지난 6월 폭염 속에서 카트를 정리하다 쓰러진 코스트코 직원 김동호(29)씨의 비극적 죽음으로 다시 주목을 받았다가 힘이 빠진 분위기다. 거대 양당이 내년 총선 준비로 분주한 상황에서 이번 정기국회가 끝나는 12월까지 폭염 대비 법안을 통과시키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전망이 적지 않다.

다만 아직 가능성이 남았다는 시각도 있다. 국회 환노위 관계자는 "오는 22일 환노위 법안소위가 예정돼 있는데 안건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며 "여야 간사가 마음만 먹으면 폭염 대비 법안을 올려 통과시킬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했다. 이은주 의원은 한국일보에 "여야 모두 폭염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국민에 약속한 상황"이라며 "이제라도 억울한 죽음이 다시 생기지 않도록 법안을 통과시켜야 한다"고 했다.

정지용 기자 cdragon25@hankookilbo.com

Copyright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